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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김회평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8년 03월 05일(月)
‘규제의 덫’에 빠진 근로시간 단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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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평 논설위원

근로자 위한다는 週 52시간제
‘저녁 굶는 삶’‘알바 뛰는 저녁’
청와대 게시판엔 반발이 주류

현장 외면한 국가 강제는 규제
勞使에 유연 근무 선택권 주고
임금체계·파견법도 개혁해야


오는 7월부터 단계적으로 실시되는 근로시간 단축은 명분이 뚜렷한 정책이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시대 조류가 된 지금 세계적 과로국 오명을 씻고, 저녁 있는 삶을 누리게 하자는 데 선뜻 반대하긴 어렵다. 국내 법정 근로시간이 1989년 주(週) 48시간→ 44시간, 2003년 44시간→ 40시간으로 각각 4시간씩 줄어든 데 이은 중대 전환점이다. 주 40시간 골격은 바뀌지 않았어도 허용 근로시간이 주 68시간→ 52시간으로 한꺼번에 16시간이 급감하는 것이어서 파급력은 더 클 수 있다. 그래도 경제계가 근로시간 단축이란 큰 틀에 진작 동의한 것은 명분을 외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수혜층으로 꼽히는 노동계로서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근로시간 단축 관련 글이 100건 넘게 올라왔는데, 내용이 의외다. 대부분 근로자들이 쓴 것으로 보이는 글이 반대 일색이고, 촛불 들고 나서겠다는 강경파도 적잖다. 저녁 있는 삶은 좋은데 굶는 저녁, 알바 뛰는 저녁이 될 거라는 이유에서다. 과로를 줄인다는 명분 뒤엔 소득 감소라는 불편한 현실이 도사리고 있다. 정부는 전체 근로자 1인당 월평균 급여가 35만1000원, 연간으로는 421만2000원 줄어들 거라고 추산했다. 그러나 연장근로 수당에 소득의 30∼40%를 기대온 중소 제조업 종사자의 타격은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

이들을 고용하는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청 중소기업의 생존을 결정짓는 건 납기와 단가다. 주문량이 폭주할 때는 생산라인을 풀가동해야 납기를 겨우 맞출 수 있는데, 주 52시간으로 못 박으면 일감을 놓치고 신용도 잃는다. 중소기업은 올해 최저임금 폭탄을 맞아 생산단가가 크게 오른 터에, 2년도 채 안 남은 근로시간 시한폭탄은 매출 감소를 예고한다. 지금도 인력난을 겪는 금형·주물·주조 등 뿌리산업에선 근로시간 단축으로 월급봉투까지 얄팍해지면 더더욱 오려 하지 않을 것이다. 충격이 상대적으로 덜한 대기업도 에어컨·아이스크림처럼 계절 수요가 뚜렷한 업종이나 제품 출시 전 몇 달 총력근무에 나서는 연구·개발(R&D) 직종에서는 난감한 처지에 놓여 있다.

명분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이해당사자인 노·사 모두가 불만을 터뜨리는 정책이라면 재고의 소지가 있다. 규제가 다른 것이 아니다. 국가가 시시콜콜 끼어들어 산업 현장의 역동성을 죽이는 것이다. 항상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우지만, 현장에선 족쇄가 되는 것이 규제다. 근로시간 단축도 노사 합의로 운용할 수 있는 부분까지 법제화를 통해 국가가 강제한다는 점에서 규제다.

프랑스가 2000년 도입한 주 35시간제는 당초 기대와 달리 기업 비용만 늘고 실업률도 높아지는 ‘프랑스병(病)’의 근원이 됐다. 독일 자동차업계도 주 35시간이 기본이다. 그러나 양국의 근로시간 단축은 정부 강제와 노사 자율로 출발점이 달랐다. 독일도 원래 유럽에선 근로시간이 긴 축에 속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 자동차산업이 위기에 직면하자 노사가 근무시간을 줄여 임금을 낮추는 대신 일자리를 유지하는 타협을 이뤘다. 더 나아가 연간 단위로 바쁠 땐 많이 일하고 일감이 적을 땐 휴가로 보상받는 근로시간 계좌제를 시행 중이다. BMW는 인근 공장들끼리 수시로 인력을 주고받는 브리딩(breathing) 시스템, 곧 ‘숨 쉬는 고용’도 도입했다. 시공간을 아우르는 유연한 근무로 독일은 이제 연 근로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짧다.

최장 과로국의 주범이 만성적인 초과근로라는 점에서 이를 제어하는 조치는 필요하다. 그러나 주요국처럼 1년, 혹은 6개월 단위로 평균 근로시간을 정하는 식이 아니라 1주 52시간으로 완강하게 묶으면 탈이 날 수밖에 없다. 사문화된 탄력근로제를 대폭 확대하는 것이 노사 양측에 숨통을 틔워줄 수 있다. 차제에 초과근로수당에 목매는 관행도 손봐야 근로시간 단축 효과가 커진다. 연공급과 변칙적인 수당 비중을 낮추고 직무·성과급 위주로 임금체계를 개편하면 초과근로 유혹은 줄고, 비정규직 급여 차별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원활한 인력이동을 막는 경직적 파견법도 손질하되 당장 인력난이 심한 뿌리산업부터 제약을 풀어야 한다.

근로시간 단축이 규제, 곧 노사 모두에 족쇄가 되지 않게 하려면 이와 얽힌 노동시장 전반의 경직적 요소를 함께 제거해야 한다. 그걸 한마디로 줄이면 노동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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