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김정은 ‘파격’에 本質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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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학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수석으로 한 대북 특사단이 5일 평양 도착 3시간 만에 김정은을 면담하고 만찬을 같이했다. 이 자리에서 김정은은 남북 긴장 완화와 교류 협력 발전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김정일과의 면담 계획을 밝히지 않아 우리 대표단을 애타게 했던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파격이다. 그러나 이런 ‘환대’에 감격해 ‘본질(本質)과 실질’을 잊어 버려선 절대로 안 된다.

지난해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보리는 대북 제재 결의안 제2375호를 채택해 석유제품의 대북 수출을 제한했고, 북한산 섬유제품의 수입도 금지했다. 북한의 해외 식당들이 문을 닫았고, 해외 노동자들이 북한으로 돌아가고 있다. 제재로 인해 김정은의 통치자금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11월 북한의 화성-15형 장거리미사일 발사 이후 미국의 군사 옵션 선택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중국에서도 한반도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가 강력한 제재를 피하려는 목적임을 알 수 있다.

김정은은 천안함 폭침을 주도한 김영철과 함께 김여정을 서울로 보냄으로써 극적인 평화 이미지를 연출했다. 문재인 정부는 특사 방북을 통해 미·북 대화를 위한 중매 역할을 하겠다고 나섰다. 천안함 폭침과 핵 개발에 면죄부를 주면서 북핵 문제를 ‘강 건너 불구경’하는 모양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북한의 우선적인 핵 폐기를 전제로 미·북 대화를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이나, 북한은 적어도 한·미 연합훈련의 중단 또는 축소를 전제로 핵 동결 또는 미사일 모라토리엄이 가능하다는 이른바 쌍중단을 주장한다. 우리 특사단에는 핵 폐기라는 말을 꺼내지도 말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이렇듯 김정은은 핵 폐기에 전혀 관심이 없다. 대신 문 정부가 솔깃해하는 수뇌회동 즉, 정상회담 카드를 내민 것이다. 남북대화에 문 정부를 끌어들여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 제재를 무너뜨리고, 한·미 관계를 이간질하며, 남남갈등을 조장해 우리 사회에 혼란을 부추기고, 핵무력 완성 시간을 벌려는 목적이다. 문 정부는 이러한 김정은 꼼수에 말려들어선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과거 정부와는 상당히 다르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유럽과 중동의 안정화 및 대(對)테러전에 집중함으로써 북핵 문제는 미국 대외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뒷전에 밀려 있었다. 지금 유럽과 중동은 상대적으로 안정됐고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도전도 약해졌다. 반면, 북한의 핵과 장거리미사일이 미 본토를 직접 위협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안보전략서, 핵 태세 검토 보고서, 국방전략 보고서, 2018년 의회연설 등을 통해 북한의 핵·미사일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임을 천명했다. 강력한 한·미 공조를 바탕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김정은은 대북 제재를 와해시키고 한·미 관계를 이간하기 위해 정상회담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남북대화에 올인할 가능성이 크다. 문 정부는 대북 압박으로 궁지에 몰린 김정은에게 기사회생의 기회를 줘선 안 된다. 비핵화는 말도 꺼내지 못하고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나 축소를 약속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북핵 문제는 우리가 당사자인데도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중매자 역할을 하는 것은 ‘코리아 패싱’을 자초할 순진한 구상에 불과하다. 강력한 한·미 공조를 바탕으로 지속적이며 일관성 있는 대북 압박만이 북핵 폐기를 관철하는 최선의 방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