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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이현종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8년 03월 07일(水)
‘착한 정부’ 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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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올림픽 北核에 가린 경제 위기
글로벌 무역 전쟁 파고 높아
카드 대란과 외환위기 연상

無能力 장관, 복지부동 공무원
발표하는 정책마다 혼선 불러
위기를 위기로 못 느끼는 한국


한·일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오! 필승 코리아’에 들떠 있던 2002년. 집과 거리는 월드컵 4강 신화에 들뜬 분위기였고, 정치권은 연말 대선에 관심이 쏠려 있었다. 정부는 7.2%라는 높은 성장률 등 준수한 경제지표에 현혹돼 내수 진작을 위해 신용카드 사용을 적극 권장했다. 현금서비스 한도를 폐지하고 신용카드 소득공제도도 도입, 당시 경제인구 한 명이 가진 카드는 4장이 넘어 총 1억400만 장이었다. 거리에선 신용에 관계없이 누구나 카드를 발급해주는 호객 행위가 기승을 부렸고, 월드컵과 대선 분위기까지 겹치면서 사람들은 흥청망청 소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3년 들어 돌려막기에 한계를 느낀 시점에 ‘카드 대란’이 시작됐고, 매월 10만 명씩 신용불량자가 쏟아져 그해 말에는 110만 명에 달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던 외환위기 사태도 마찬가지지만, 지표와 인기에 취해 있던 정부가 경고등을 제대로 보지 않고 있다가 벌어진 참사의 결과였다. 경제전문가들은 지금의 사회 분위기와 정부의 대응 수준을 보면 위기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올 초 한 언론사가 경제전문가 48명에게 물어본 결과 68%가 ‘향후 5년 내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평창동계올림픽대회가 끝나기가 무섭게 북핵 문제가 다시 뜨거운 이슈가 됐다. ‘위기의 3월’이라는 전망대로 이번 달 안에 미·북 대화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으면 한반도는 위기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특사 파견 등 청와대와 정부의 모든 관심이 북핵 문제에 집중돼 있는 와중에 정작 세계는 ‘글로벌 무역전쟁’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내수시장이 협소해 무역으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로선 북핵에 버금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예견된 일이지만 진짜 걱정되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대처 능력이다.

최근 청와대 관계자들은 사석(私席)에서 일부 장관에 대한 불만을 여과 없이 털어놓았다. 각종 정책 혼선을 빚은 A 장관은 “정말 사람 잘못 봤다”고 할 정도로 실망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교수 출신 B 장관은 공식회의에서 쟁점이 뭔지도 모르고 장황설을 풀어 놓더라고 한다. 정치인 출신 C 장관은 속았다고 할 정도로 기본적인 자질이 안 된다고 했다. 장관이야 그렇다 해도 공무원들이 받쳐 주면 기본은 하는데, 요즘 정부 세종청사 분위기는 더 걱정스럽다. ‘적폐 청산’ 분위기 탓에 일을 기획하고 실행하려는 공무원을 찾기 어렵다. 전임 정부에서 잘나갔다는 이유로 적폐로 몰린 동료·선배들을 보면 이 정권이 지나면 또 적폐로 몰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북핵 외교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할 외교부만 해도 부서 전체가 적폐 취급을 받고 있어 사기(士氣)가 말이 아니다. 이번 특사단에 끼이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김여정 방남 이후 각국 대사에게 결과를 설명하는 것도 주무 부서인 외교부가 아닌 통일부 차관이 맡았다. 강경화 장관은 북핵 외교의 핵심에서 벗어나 주변부만 맴돌고 있다. 북핵 외교 경험이 없는 강 장관을 임명할 때부터 “우리가 하면 된다”고 했던 청와대 관계자의 말이 현실이 되고 있다. 외교부에 있어야 할 통상교섭본부가 산업통상자원부로 가면서 아직 내부 인사도 마무리 안 돼 무역전쟁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 강남 집값 폭등, 재건축 연한 논란,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정책 혼선은 문 정부의 잘못된 정책 노선에 공무원의 복지부동이 겹치면서 나타난 것이다.

이런 위기의 근본은 국정 운영의 효율성과 정책의 현실성을 꼼꼼히 살피지 않은 청와대의 책임이 크다. ‘착한 정부 콤플렉스’에 빠져 지지층 환심만 사고, 정작 필요한 개혁은 손도 대지 못했다. 성장과 고용의 주역인 기업이 ‘적폐’ 취급받으며 숨만 죽이고 있으니 활력이 살아날 리 없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지지율 하락을 감수하면서 ‘프랑스병(病)’인 노동개혁을 과감히 추진, 글로벌 기업 투자를 끌어들이고 고용을 창출하는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신진 세력이 지배 세력 자리를 빼앗으려는 위험이 있을 때 전쟁과 같은 위기가 발생한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처럼 미·중 각축으로 국제 질서의 판이 바뀌고 있다. 대한민국은 천천히 뜨거워지는 물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 처지가 돼 가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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