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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뉴스와 시각 게재 일자 : 2018년 03월 08일(木)
文대통령, 이것만은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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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민 정치부 선임기자

핵 무력 완성을 부르짖던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단과 만나 “비핵화가 선대의 유훈”이라고 하니 반가운 한편 어리둥절하다. 김정은이 쏟아낸 ‘말’로만 미뤄 본다면 기대감도 없진 않다. 비핵화를 의제로 미국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겠다고 했다.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을 할 의지가 있다고 밝힌 것도 평가할 대목이다. 북한이 달라진 걸까. 그건 글쎄∼다. 김정은은 비핵화로 가는 길목에 여러 조건을 내걸었다. ‘군사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 보장’은 역사적 경험으로 보면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동맹 파기’의 동의어였다. ‘선대의 유훈’이란 북이 핵 개발도 하기 전인 1991년 할아버지 김일성이 동의한 ‘한반도비핵화선언’을 말한 것인데, 한반도 남쪽 주한미군의 전술핵을 겨냥한 것이었다. 김정은의 ‘비핵화’란 결국 ‘조선반도의 비핵화’와 맞닿아 있다.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포기를 요구하는 근거가 될 것이다.

문 대통령은 대북 제재 국면에 열리게 될 남·북 정상회담과 미·북 대화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로 만들어가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합의문만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다. 과거에도 역사적 합의는 많았다. ‘제네바 합의’(1994년)는 핵 동결 대가로 미국이 경수로와 중유를 제공한다는 것이었지만, 북의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핵 개발 사실이 드러나면서 2002년에 무효화됐다. ‘9·19 공동성명’(2005년)은 핵 포기 및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 등을 조건으로 6자회담 당사국이 경수로를 제공한다는 거였는데, 북의 1차 핵실험(2006년)으로 휴지 조각이 됐다. ‘2·13 합의’(2007년)는 북의 검증 가능한 단계별 핵 폐기 조치에 상응해 서방사회가 경제·에너지 지원을 한다는 것이지만, 이 역시 북의 2차 핵실험(2009년)으로 깨졌다.

북이 ‘핵 동결’과 ‘핵 폐기’를 의제로 국제사회와 대화하고 합의해 지원을 받아내고는 뒤로 핵 개발을 계속해 온 사례는 차고 넘친다. 문 대통령의 특사단이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김정은의 말에 들떠 있다면 좀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제네바 합의 이후 4반세기 동안 국제사회가 속은 결과는 대한민국과 일본을 건너 미 본토까지 겨누는 북핵 고도화다. 남과 거래를 시작한 북은 이제 트럼프 행정부와 흥정하려 할 것이다.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북으로부터 ‘ICBM 포기’를 받아내 본토를 핵 공격 공포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면 북의 나머지 핵은 인정해도 괜찮다는 논리에 현혹될 가능성이 있다. 핵을 가진 북, 인질이 된 남. 최악의 시나리오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서 이것만은 기억해야 한다. 대화의 목표는 비핵화다. 제재를 통해 협상을 이끈다. 합의문에는 단계별로 촘촘하게 비핵화 이행계획을 담는다. 북이 합의를 실천하면 단계에 맞게 제재를 완화하고 지원한다. 합의 불이행 시 확실히 보복한다. 북의 합의 이행을 선(先), 국제사회의 보상을 후(後)로 하는 ‘행동 대 행동’이다. 이게 역사적 합의들 속에 담겼던 미완(未完)의 비핵화 프로젝트를 실천하는 길이다. 이번에도 속으면 북은 핵 무력을 완성할 것이다. 그럼 대한민국은 “남쪽을 향해 핵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김정은의 자비심에 기대어 연명해야 할지도 모른다. minski@
e-mail 허민 기자 / 정치부 / 부장 허민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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