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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북리뷰 게재 일자 : 2018년 03월 09일(金)
내 몸에 남은 ‘모든 폭력’에 맞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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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록산 게이는 내 몸이 어떻게 보여야 한다는 것에 대한 비합리적인 기준에 저항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고 했다. 우리 모두 다른 사람들의 몸의 현실을 좀 더 배려해야 한다고, 이런 배움의 순간을 허락한 내 몸에 감사한다고 했다. 사이행성 제공

- 헝거:몸과 허기에 대한 고백 /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페미니스트의 자전적 에세이
열 두 살에 당한 집단 性폭행
자기 몸 혐오… 먹고 또 먹어
한때 몸무게 261㎏의 거구로

가해자의 처벌이나 용서 아닌
폭력이 지나간 삶에 대한 고백
부끄러움 아닌 말해야 하는 것

사회가 만든 ‘몸에 대한 억압’
탈출할 방법 찾고자 하는 고민


“이 책은 내 몸, 내 허기에 관한 책이며 궁극적으로는, 사라지고 싶고 다 놓아버리고 싶으면서도 그와 동시에 너무나도 많은 것을 원하는, 간절히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고 이해받고 싶은 사람에 관한 책이다. 비록 그 과정이 한없이 느려터지긴 했으나, 마침내 자신을 보여주고 이해받는 것이 가능함을 배우게 된 한 사람에 관한 책이다.”(24쪽)

이 책 ‘헝거’는 펜 문학상을 받은 페미니스트 문화비평가이자 소설가이며 에세이스트인 록산 게이의 자전적 에세이다. 지난해 출간돼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고 그해 각종 ‘올해의 책’을 휩쓴 책은 그 뒤 ‘미투(Me Too)’ 운동 속 더 절절한 주목을 받았다. 저자가 자신이 쓴 책 중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막막했던 책이라고 한 ‘헝거’에서 그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열두 살 때, 자신이 사랑했다고 생각했던 소년과 그의 친구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그 뒤 몸집이 커지면 남성의 폭력으로부터 안전해질 거라 믿어 ‘먹고 또 먹어’ 거구가 된 자신의 ‘몸의 역사’를 써 내려 갔다. 이 역사는 고통의 역사이며, 상처의 역사이며, 스스로에 대한 혐오의 역사이지만 결국 수치와 혐오를 딛고 일어서려는 용기의 역사이기도 하다. 게이는 자신의 경험을 돌아보며 많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몸에 대해, 몸에 대한 시선에 대해, 몸에 가해진 타인의 폭력에 대해, 그 폭력이 개인의 몸과 영혼에 남긴 고통스러운 상처에 대해, 그 상처에 대한 우리의 시선에 대해 그리고 상처의 치유에 대해.

책에서 그는 자신의 삶은 성폭행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 이전에 그는 아이티계 미국 중산층,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자라던 똑똑하고, 순진한 가톨릭 소녀였다. 하지만 그는 하루아침에 스스로에 대한 혐오의 구렁텅이로 떨어졌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자신이 점점 싫어졌고 스스로 인간보다 못한 존재로 여겼다. 부모가 생각하는 착한 딸이 되려고 죽기 살기로 노력했지만 언제나 죄책감이 그를 집어삼켰다.

그가 탈출구로 삼은 것은 바로 음식이었다. 외로웠고, 겁먹었고, 위로받고 싶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것을 어떻게 요구해야 할지 몰랐던 그는 음식에서 위로를 받았다. 음식은 맛있었고,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가족들은 무언가를 눈치채고, 캐물었지만 그는 털어놓지 않았다. 가족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의 머릿속에 자신에 대한 끔찍한 이미지가 남길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는 한때 키 190㎝, 몸무게 261㎏까지 나갔고, 위절제술을 생각하기도 했다. 자신에 대한 혐오로 먹고, 뚱뚱해진 자신의 몸에 치를 떨고, 이 때문에 또 먹었다. 예일대 재학 시절, 온라인 게시판에서 만난 40대 남자를 따라 1년간 피닉스에서 살며, 폰섹스 회사에서 일하기도 했던 그는 고통 속에서 결국 자기 글을 쓰는 작가로 성장했다.

하지만 책은 이 모든 고통을 뚫고 작가로 성공했다는 그런 성공담이 아니다. 가해자를 고발해 정당한 벌을 받게 한 정의의 이야기도 아니다. 그는 가족들의 추궁에도 그가 누구인지 털어놓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해자를 용서해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는 범상찮은 용서의 서사도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음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났다는 자기 치유의 이야기도 아니다. 그저 폭력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몰아갔는지를 돌아볼 뿐이다.

“굳이 내 이야기를 공유하려는 이유는 폭력의 역사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써내려갔다. “나 자신과 내 몸이 살아온 인생을 직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꾸역꾸역 한 자씩 써 내려 간 이유는 나와 당신에게 필요한 작업이라 느꼈기 때문이다. 내 몸에 대한 고백록이 사람들이 그다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진실일 수도 있다. 나 또한 듣기 불편할 때도 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말하건대, 나는 여기에 내 심장을 펼쳐 보였고, 여기에 연약하고 상처받고 지독하게 인간적인 나를 자유롭게 풀어놓았다. 그리고 자유가 주는 해방감을 한껏 즐기고 있다. 바로 여기에 내가 무엇에 허기졌는지, 그리고 내 진실이 나로 하여금 무엇을 창조하게 했는지가 있다.” 그는 성폭력과 혐오의 시선이 자신에게 가한 고통을 남김없이 증언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계속 말해야 하는 것이라고,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말해야 하고, 더 들어야 한다고 했다.

육체에 가해진 폭력의 기억과 정면 대치하면서 그는 뚱뚱한 사람으로 살아가며 알게 된 몸에 대한 왜곡된 시선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여성이 무슨 말과 행동을 하든지 몸은 어느 순간 공공의 입에 오르내리는 대상이 되고, 자기 관리라는 것도 초초하게 자기 몸을 감시하면서 자신을 억제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특히 작가로 명성을 얻은 뒤에도 눈부신 성취가 아닌, ‘뚱뚱하다’는 외연이 타인에게 가장 중요한 사실임을 깨닫고 자신을 포함해 이 사회가 몸에 대해 지나친 억압을 하고 있음도 지적한다. 그는 몸을 우리(cage), 스스로가 만든 우리라고 했다. 자신은 지금도 어떻게든 이 우리에서 탈출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이 우리에서 나가는 방법을 알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따라서 책은 아직 최종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과정 위에 있다. 그 길은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게이의 고통스러운 고백의 기록은 직접 증언을 통해 진실을 문학적으로 드러내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목소리 소설’(novel of vocal)과 닮았다. 용감한 고백을 통해 자기 자신으로 귀환하려는 거칠고, 열정적이면서도 지적이고 우아한 그의 ‘목소리’는 숭고하고 아름다운 광채를 발한다. 자신과 타인을 억압하는 모든 이들,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우리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340쪽, 1만 58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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