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학습보다 共有로 지식 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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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의 착각 / 스티븐 슬로먼, 필립 페른백 지음, 문희경 옮김 / 세종서적

인간은 본래 많이 아는 존재 아냐
평생 배울수 있는 지식 1GB 불과
집단 지식 넘는 개인사고 불가능

도구발명 등 협동·공감으로 해결
개인은 자신의 무지함 인식하고
타인과 연결해야 지적으로 진보

‘사람들한테 과제를 하나 내준다. 그런 후 스스로 얼마나 과제를 잘 처리했는지 평가하도록 한다. 실력이 좋은 사람과 실력이 나쁜 사람 중 누가 더 자신이 과제를 잘했다고 생각했을까.’

결과는 상식을 뒤엎는다. 과제를 잘 처리한 실력자는 자신의 성과를 전반적으로 과소평가하고, 실력이 모자란 사람은 자신이 잘한다고 여겼다. 2500년 전,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이미 통찰한 바 있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 지혜를 사랑하는 자는 자신이 잘 모른다고 생각하고 무지한 자는 자신이 잘 안다고 여긴다. 실력 부족에는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이중의 무지가 포함되니까 말이다.

미국의 인지과학자 스티븐 슬로먼과 필립 페른벡은 어떤 사실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를 ‘지식의 착각’이라고 말한다. 가령, 사람들은 지퍼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퍼가 어떤 원리로 맞물리는지를 이야기해 달라고 하면 제대로 답할 사람이 드물다. 마찬가지로 수세식 변기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자전거 바퀴가 어떻게 연동해 움직이는지 등도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온갖 물건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모른다. 이들에 대해 잘 아는 이들은 따로 있고, 우리는 다만 익숙하게 사용하기에 잘 안다고 착각할 뿐이다. 아이들의 끝없는 ‘왜’라는 질문에 사람들이 흔히 화를 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힘드니까 말이다. 소크라테스의 질문을 받은 소피스트들도 마찬가지였다.

플루토늄 핵을 둘러싼 베릴륨으로 만들어진 두 반구의 사이를 막는 위험한 실험에서, 핵물리학자인 루이스 슬로틴은 일자 드라이버를 사용해서 두 반구를 떼어내려다 방사능 유출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슬로틴은 아마 드라이버로도 괜찮다고 믿었을 것이다. 이처럼 ‘지식의 착각’은 때로는 목숨까지 빼앗는 등 재앙을 불러온다. 그런데도 주변에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인간이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현자보다 더 흔한 것 같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에 따르면, ‘지식의 착각’은 인간 지능의 한 속성에 가깝다. 인간은 공감하고 협동해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진화해 온 까닭에 자기 머릿속에 있는 지식과 공동체가 보유한 지식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내가 알든, 네가 알든, 책에 있든, 인터넷에 있든 상관없이, ‘우리’가 아는 것은 곧 내가 아는 것과 같다고 부지불식 중에 생각하는 것이다. 공동 목표를 이룩하기 위해 인지노동을 적절히 분배하는 것, 즉 자신이 아는 바를 모두 꺼내놓고 협업하는 ‘뇌의 공동체’를 이룬 것이야말로 인류 진화의 가장 큰 원동력이다. 이는 다른 동물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인간은 본래부터 혼자 생각하게 돼 있지 않다.

개인의 기억 용량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생각하면 이 사실이 분명해진다. 1980년대에 인지과학의 선구자인 토머스 랜다우어는 ‘인간은 얼마나 알 수 있는 걸까’라는 질문에 대답하려고 했다. 랜다우어에 따르면, 인간이 70년을 살면서 학습을 통해 보유할 수 있는 정보는 기껏해야 1기가바이트(GB)에 불과했다. 손톱만 한 크기에 수십 GB를 저장할 수 있는 컴퓨터 메모리를 생각할 때, 인간은 형편없는 지식저장장치인 셈이다. 인간 개개인은 태생적으로 많은 지식을 가지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인간의 진화적 장점은 보유 지식의 용량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지식과 외부에 있는 기억을 서로 연결해 갖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기능’에 달려 있다.

인간은 누구라도 혼자서는 충분히 알 수 없다. 우리는 집단으로 생각한다. 지식은 천재의 내부에 있지 않고 늘 지식 공동체의 형태로 존재한다. 인간은 진공 상태에서 홀로 일하는 게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나 동료와 함께 회의하고 공동으로 작업하면서 주어진 과업을 처리한다. 요즘에는 집단지성이나 인공지능도 한몫하는 중이다. 도구를 발명하고 질병을 치료하고 건물을 건설하는 등 모든 일에서 인간은 집단을 이뤄 함께 생각할 수 있을 때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문제 해결을 주로 외부 지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면 ‘지식의 착각’도 피할 수 없는 일인가?

저자들은 개인이 보유한 지식의 양을 늘리는 것으로 이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 대신에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하도록 무지를 가르치고, 또래와 함께 상호작용하는 공동체 학습을 통해 정보를 보유하는 힘을 기르는 동시에 바깥에서 들어오는 정보에 휘둘리지 않고 건강한 방식으로 소비하도록 문해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또 사회적으로는 정보가 부족하더라도 똑똑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알아듣기 좋은 말로 지식을 충실하게 설명하고, 쉽게 실행할 수 있는 단순한 결정규칙을 제시하며, 적시에 필요한 교육을 실행해야 한다. 무엇보다 나중에 후회할 결정을 하기 전에 자신의 지식을 돌아보고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습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374쪽, 1만8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