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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명작의 공간 게재 일자 : 2018년 03월 09일(金)
‘거기 언제나 그대로’… 아내 같은 山의 품에서 詩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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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산(삼각산)의 백운봉(왼쪽)과 인수봉. 산을 좋아한 이성부 시인은 “왜 삼각산을 오르는가”는 질문에, “산이 거기 있어서 오른다”고 했던 세계적인 산악인 조지 맬러리의 말처럼 “서울 사람들이 사는 가까이에 그 산이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시인 이성부의 작품산실… 서울 ‘북한산’

봄 -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산은 상처 입은 시인을 그 넉넉한 품에 품었고, 시인은 보답이라도 하듯 다시금 되찾은 자신의 언어로 그 산을 노래한다. 이성부는 결코 산을 먼발치에서 바라다보지 않는다. 가까이에서 온몸으로 “산을 겪는다.” 시인은 산과 한 몸이 됐고, 육체적 고통과 처절한 인내를 거쳐 마침내 산봉우리에 이르러 느끼는 신선한 충만감과 자기 극복의 체험을 고스란히 시로 옮겼다. 이성부의 ‘산시(山詩)’를 ‘산행시(山行詩)’라고 불러야 하는 이유다.

이성부가 처음부터 산시를 썼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를 전후해 사회 비판적 참여시의 흐름을 주도한 시인이었다. 청년 시인 이성부는 먼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어두운 현실을 직시한다. 개인과 사회의 밀접한 불행이 사회와 무관하지 않다는 인식 아래, 이 가혹한 현실에서 소외된 채 살아가는 수많은 이웃과의 긴밀한 연대성을 확인하고 공감의 폭을 확장한다. 개인의 고통과 공동체의 시련은 다른 것이 결코 아니다.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울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벼’) 시인이 시를 쓴다는 건 모든 살아 있는 것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것이다.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꺾일 줄 모르는 불굴의 의지로 사랑과 미래의 희망을 노래하던 시인이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돌연 깊은 회의와 절망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1980년 5월 고향 광주가 군화에 짓밟히고 피를 흘렸을 때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나는 싸우지도 않았고 피 흘리지도 않았다./ 죽음을 그토록 노래했음에도 죽지 않았다./ 나는 그것들을 멀리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비겁하게도 나는 살아남아서/ 불을 밝힐 수가 없었다. 화살이 되지도 못했다./ 고향이 꿈틀거리고 있었을 때/ 고향이 모두 무너지고 있었을 때/ 아니 고향이 새로 태어나고 있었을 때/ 나는 아무것도 손쓸 수가 없었다.”(‘유배시집 5’) 거기에 제도권의 언론사 기자로 군사정권에 기사 검열을 받으러 다녀야 했으니, 그 노여움과 서러움에 자신이 나날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간다고 느꼈다. “붓과 칼이 그 행하는 바 다를진대/ 어이하여 오늘은 함께 섞이느냐.(‘유배시집 2’) 누구보다 정직했던 시인은 결국 ‘시작(詩作)의 쓸모 없음’과 ‘모든 말과 문자로 쓰인 것’에 대한 깊은 불신과 혐오를 고백하면서 스스로 붓을 꺾고, 귀양살이를 자청한다.

세상과 동떨어져 홀로 외롭게 지내던 시인에게 산(山)이 문득 다가왔다. “어느 날 나에게 산이 왔다. 내가 산으로 간 것이 아니다. 산이 나에게로 왔다.”(시집 ‘지리산’의 ‘시인의 말’) 그러자 교복 호주머니에 건빵 한두 봉지 찔러 넣고 고향 광주의 무등산에 즐겁게 오르내렸던 오래된 추억이 문득 떠올랐다. 다른 많은 사람처럼 “어른이 되고 고향을 떠나 살게 되고 세사(世事)에 시달리면서부터” 그도 산행의 즐거움을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상처투성이 시인은 이 옛 친구에게 자신의 고통스러운 속내를 털어놓으며, 그 널따란 품에 안겼다. 하지만 서두르지는 않는다. 우선은 북한산을 그리고 서울 근교의 산들을 차례로 오르기 시작하고, 차츰 전국의 더 높고 험한 산을 선택한다. “내 책장에 꽂혀진 아직 안 읽은 책들을/ 한 권 뽑아 천천히 읽어가듯이/ 안 가본 산을 물어물어 찾아가 오르는 것은/ 아직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사랑의 속살을 찾아서/ 거기 가지런히 꽂혀진 안 읽은 책들을 차분하게 펼치듯/ 이렇게 낯선 적요 속으로 들어가 안기는 일이/ 나에게는 가슴 설레는 공부가 되기 때문이다.”(‘안 가본 산’)

1980년대가 저물어갈 무렵, 이성부는 자신의 산행일기를 품에 안고 문단으로 되돌아왔다. 시집 ‘빈 산 뒤에 두고’(1989)가 바로 그것이다. 시인은 그간에 오직 산에만 건넸던 속내 이야기를 이제 우리에게도 담담하게 말한다. 자신이 산행을 통해 어떻게 그 절망과 슬픔을 삭히고, 고통스러운 상처를 치유했는지도 설명한다. 문학과 세상 형편으로부터의 유일한 도피처가 됐던 산이 어느 사이엔가 자신을 다시 이 세상으로 복귀할 수 있게 도와주었음을 알린다. 그리고 자신이 ‘시를 떠나서’ 저 높은 산 위에서 ‘시가 사는 마을’을 얼마나 내려다보며 그리워했는지를 고백한다. 이성부는 이전보다 더욱 강건하고 한결 넉넉하고 너그러워진 언어로 새로운 출발을 알린다.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이제부터가 큰 사랑 만나러 가는 길이다./ 더 어려운 바위 벼랑과 비바람 맞을지라도/ 더 안 보이는 안개에 묻힐지라도/ 우리가 어찌 우리를 그만둘 수 있겠는가/ 우리 앞이 모두 길인 것을…”(‘우리 앞이 모두 길이다’)

시인은 그저 현실도피가 아닌 늘 새로운 깨달음과 자기 성찰을 위한 산행을 이제 시작한다. 평범한 걷기 산행에서 더 어렵고 위험한 곳으로, 더 먼 데 산으로 그의 발길을 옮겼다. “산을 가자./ 우리를 모래처럼 부숴버리기 위해 가자./ 산에 오르는 일은/ 새롭게 산을 만나러 가는 일/ 만나서 나를 험하게 다스리는 일/ 더 넓은 우리 하늘/ 우리가 차지하러 가고/ 우리가 우리를 무너뜨려/ 거듭 태어나게 하는 일!/ 산을 가자./ 먼발치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서 몸 비비러 가자./ 온몸으로 온몸으로/ 우리 부서지기 위해서 가자.”(‘산’ 전문)

그리고 산에서 돌아오면 마치 산행일기를 기록하듯이, 그 산을 주제로 시를 썼다. “큰 산에서 돌아와/ 책상머리에 앉으면/ 문득 솔바람 소리 함께 따라와서/ 내 종이 위를 굴러 떨어진다.”(‘야간 산행’) 산은 그렇게 시의 공간이 됐고, 산행과 시 쓰기는 하나의 작업이 됐다.

전국의 명산을 두루 찾아다녔던 이성부이지만, 북한산은 그에게 유독 각별했다. “가까이에 있는 산은/ 항상 아내 같다./ 바라보기만 해도 내 것이다.// 오르면 오를수록 재미있는 산/ 더 많이 변화를 감추고 있는 산/ 가까이에서 더 모르는 산/ 그래서 아내 같다./ 거기 언제나 그대로 있으므로/ 마음이 놓인다.”(‘삼각산’) 인수봉과 만경봉 등의 암벽을 타기 위해 나이 쉰 줄에 처음 바위 타기를 익혔다. 북한산을 이런저런 산길로 한 달에 세 번 이상씩 오르내릴 정도였으니, 25년 동안 북한산을 1000여 번 등반한 셈이다. 이때 암벽 등반의 체험을 기록한 것이 그의 여섯 번째 시집 ‘야간 산행’(1996)이다. 또한 북한산의 구석구석을 소개하는 글들을 묶은 ‘삼각산 이야기’는 2002년에 출간한 이성부의 첫 번째 산문집 ‘산길’의 제2부에 해당한다. 그 알찬 내용은 전문 산악 서적 못지않다.

“왜 삼각산을 오르는가”는 질문에 “서울 사람들이 사는 가까이에 그 산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시인은 대답한다. 산악인 조지 맬러리(George Mallory)의 그 유명한 말과 같은 뜻이리라.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 그냥 그 산에 올라가는 것이다. 북한산 산행을 마치고 자신이 살던 마포구 중동 근처 모래내 시장통에서, 사람들 사이에 끼여 어김없이 ‘하산주(下山酒)’를 들이켰다는 시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냥 시인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산이 북한산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슬쩍 든다. 하지만 같은 산을 몇 번이고 오를 경우에도 산은 계절과 기후에 따라 매번 새로운 느낌이 들게 해준다.

이 무렵부터 이성부의 시는 과거와 사뭇 달라졌다. 이제 산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인이 됐다. “사회적 삶이나 서민 정서의 표현이 반드시 산이라는 매체를 통해 주관화되어 간다.”(‘산 속으로 뻗은 시의 길’) 심지어 산 자체를 주제로 삼으면서도, 자연현상으로서의 정서뿐만 아니라 거기에 사람들의 삶을 보태고 자신의 고통을 얹는다. 산과 시와 삶은 시인에게 하나의 동의어가 됐다.

이성부는 1990년대 중반부터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했다. 한 달에 한두 차례 주말을 이용해 토막산행을 시도한 탓에 2004년 6월에야 마칠 수 있었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을 조산(祖山)으로 삼고, 남쪽으로 뻗어 내려와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형세가 큰 산줄기를 말한다. 백두대간 종주란 한마디로 우리나라 땅의 척추라 할 수 있는 산마루를 이어 밟는 산행이다. 조선 영조 때 실학자인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이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지리서 ‘산경표(山經表)’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모든 산은 1대간(大幹), 1정간(正幹), 13정맥(正脈)으로 이어져 있다. 따라서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산 능선으로만 걸어가면 단 한 번도 물을 건너지 않고 갈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재 남한 쪽에서는 지리산에서 출발해 설악산 넘어 진부령까지만 갈 수 있다. 시인도 백두대간의 길이 끊기는 향로봉 전승비 앞에서 “군부대 담장 위 엉클어진 철조망”을 바라보며 한탄한다. “아 사람이 가야 산천초목이 가고 짐승이 가고/이어진 마음의 끈도 따라가는 것을”(‘발길 돌리다’)

시집 ‘지리산’(2001)과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2005)는 바로 이 백두대간을 구간 종주하며 얻게 된 시편들이다. 백두대간을 걷는다는 것은 곧 우리의 역사와 삶의 터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를 성찰하고 확인하는 일이다. 서시(序詩) ‘산경표 공부’를 제외하고, 모두 ‘내가 걷는 백두대간’이라는 부제가 붙고 일련번호가 매겨진 165편으로 이뤄진 연작시다. 이 산행 체험과 백두대간 주변의 역사·문화·사람의 삶을 자신의 시로 정리해 보겠다는 시인의 뜻이 충실히 반영돼 있다. 이 연작시는 이성부가 우리 산에 바치는 찬가(讚歌)이며, 우리네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헌정(獻呈)이다.

올해의 첫 계절이 온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봄은 온다. 남녘에서는 이른 꽃망울이 이미 터졌다는 소식에 벌써 마음은 새삼 들뜨고 괜스레 바빠진다. 산에 오를 채비를 서두르자. ‘우리 앞이 모두 길’이니 어느 산이든 상관없다. 그저 더 높은 곳에 올라 저 멀리서 다가오는 봄을 마중하자. 그러고는 마침내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봄을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리라.

글·사진=박광수 불문학자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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