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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살며 생각하며 게재 일자 : 2018년 03월 09일(金)
한국문학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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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복 소설가,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자본·권력 성공기준 자리매김
인간중심 인문 분야 뒷전으로

산업화시대 인간성 상실 위기
문학은 인생 살찌우는 자양분

무한경쟁 접고 숨고르기 할 때
문학의 힘과 가치를 바로 알자


인심이 예전 같지 않다. 모두가 자기 이익만을 챙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하기야, 자기 이익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예로부터 아전인수(我田引水)란 말이 있다. 자기 논에 물을 댄다는 말이다. 그렇다. 자기 논에 물 대는 것은 당연하지만, 자기 논에 댈 물을 포기하면서까지 남의 논에 물을 대는 경우는 없다.

문제의 본질은 정도(程度)의 차이에 있다. 자기 이익을 챙겨도 어느 정도껏 챙겨야지, 욕심이 지나치면 각종 부작용을 낳게 마련이다. 칼이나 낫 같은 연장도 너무 많이 갈면 날이 넘어 도르르 말린다. 메기가 아무리 큰 입을 가졌다 한들 한꺼번에 한강 물을 다 마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역시 인간의 욕망에는 한계가 없는 것 같다.

필자는 1951년에 태어났다. 그때 우리나라는 근대화에 뒤진 후진국이었다. 더구나 전쟁 중이었다. 경제적으로 여간 곤궁한 것이 아니었다. 듣기조차 거북한 후진국이라는 표현 대신 한때는 개발도상국이라는, 조금은 어색하면서도 약간은 고상하게 느껴지는 용어가 등장했다. 그러다가 중진국 수준을 거쳐 민주화 이후에는 당당히 선진국 문턱으로 들어섰다.

그동안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언제부턴가 후진국이니 개발도상국이니 중진국이니 하는 표현들은 우리에게서 멀어졌다. 그런 호칭은 이제 우리나라가 아니라, 아직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뒤처진 남의 나라에 해당하는 이름이 되었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는 빈곤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물론 우리 국민 중에도 병고에 시달리는 계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가 절대빈곤에 시달렸던 시절에 비하면 우리는 지금 과분한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 주위를 돌아보면 한평생 헐벗고 굶주리며 죽을 둥 살 둥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나서 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한다.

사실 지난 시절 우리는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달려왔다. 무엇이든 ‘빨리빨리’ ‘얼른얼른’ 밀어붙였다. 많은 사람이 권력과 자본을 향해 질주(疾走)했다. 그 결과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그 가운데서 가장 심각한 것으로 인간성 상실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인간성의 핵심은 인정(人情)이다.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정, 즉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마음이 전제돼야 한다. 지금보다 훨씬 궁핍했던 1950년대나 1960년대를 돌아보면 비록 가진 것은 없을지라도 인정만은 훈훈했다.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이웃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물론, 최소한 이웃의 불행 앞에서 뜨거운 눈물 한 방울쯤은 흘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그런 인정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 반면, 남이야 죽든 말든 나 한 사람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이기주의까지 맞물리면서 우리 사회는 몹시 야박하고 살벌해졌다. 사람마다 여차하면 일전을 불사(不辭)할 기세로 서슬이 시퍼렇다. 정도를 크게 벗어난 과당경쟁이 이런 사태를 불러왔고, 급기야는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 고약한 풍조까지 나타났다. 이만저만 안타까운 일이 아니다.

경쟁도 경쟁 나름이다. 선의의 경쟁이 아닌, 누군가를 해치는 경쟁은 동물의 세계에서 전개되는 약육강식 또는 정글의 법칙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경쟁이 치열해지면 치열해질수록 인정은 메마르게 마련이다. 이와 함께 인간성이 퇴화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는 인간사회가 험악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 권력과 자본이 성공의 기준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인간 중심의 인문 관련 분야는 설 자리를 잃고 뒷전으로 밀려났다. 각 대학에서 인문 관련 학과가 퇴조했고, 문화예술 분야도 속절없이 뒷걸음질 쳤다. 그중에서도 문학은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쳐 거의 빈사 상태에 이르렀다.

산업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문학의 위기를 예고했다. 그때 다른 한편에서는 그 예고가 기우로 끝나기를 간절히 기대했다. 하지만 그 달갑잖은 예고는 어김없이 적중하면서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왔다. 우리는 지금 그 가혹한 현실의 한복판에서 허덕이고 있다.

문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문학과 인생은 동전의 양면처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문학은 인생, 즉 인간 본연에 대한 성찰의 담론이다. 인간이 있기에 문학이 있고, 문학이 있기에 인간이 더욱 인간다워질 수 있다. 정신적 산물인 문학이야말로 인생의 내면과 진면목을 살찌우는 최고의 자양분인 것이다.

하지만 학교와 직장 등 사회 모든 부문에서 무한경쟁이 회오리치는 동안 세상 사람들이 문학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다. 사실은 문학작품을 읽을 시간조차 없었다. 출판사들이 문학 서적 출판을 기피하고 전국 각지의 서점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줄줄이 문을 닫았다. 이 같은 현상은 현재진행형이다. 따라서 문학은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고, 인간성 황폐화도 심각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인간성 회복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때가 되었다. 괴테가 말하기를,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다. 문학을 모르고서는 참된 인생이 무엇인지를 헤아릴 길이 없다. 권력도 자본도 인생을 위한 것이지, 인간이 기껏 권력과 자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무한경쟁을 접고 숨 고르기를 하면서 인정 넘치는 행복한 세상으로 나아갈 수만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필자는 문학의 힘과 가치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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