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색화 열기에 숨죽였던 구상화의 반격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케이옥션 경매에 출품된 김환기의 초기 구상 계열 작품인 ‘매화와 달과 백자’. 1950년대에 유화로 제작됐으며 크기는 55×38㎝다. 케이옥션 제공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왼쪽부터 김환기, 이중섭, 천경자, 장욱진 .

8년만에 등장 이중섭의 소 그림
작가 최고가 47억원 낙찰 주목

김환기 전면점화로 유명하지만
애호가는 초기 구상계열作 선호
경매출품 8점 중 단색화 1점뿐

“韓 미술에 대한 관심 다양해져”
화단은 구상화 약진에 긍정적

최근 국내 미술시장의 주요 화두 가운데 하나가 ‘단색화 거품론’이다.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단색화 전이 열린 이후 ‘단색화=한국적 추상’으로 국내외 화단의 조명을 받은 단색화는 몇 년 사이 수십 배씩 가격이 급등하며 미술시장을 선도해나갔다.

그러나 지난해 경매 낙찰 성적을 보면 ‘단색화 거품론’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단색화 작가로 분류되는 김환기, 정상화, 박서보, 이우환, 윤형근, 하종현 등 6명의 경매 낙찰액은 총 530억 원으로 단색화 바람이 뜨거웠던 2015년(692억 원)보다 23%나 줄었다.

이처럼 ‘단색화’ 열기가 주춤한 사이, 미술 시장에서는 근현대 화가들의 구상 계열 작품에 미술애호가들의 관심이 새롭게 쏠리고 있다.

지난 7일 열렸던 서울옥션 경매에서는 시장에 8년 만에 나온 이중섭(1916~1956)의 소 그림이 작가 최고가인 47억 원에 낙찰됐다. 이로써 이중섭은 국내 근현대 작가 중 김환기 다음으로 최고가 기록을 갖게 됐다. 이날 경매에서는 김환기의 1957년 작으로 구상 계열 작품인 ‘영원의 노래(Les Chants Eternels)’도 30억 원에 새 주인을 찾아 주목을 받기도 했다.

21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 본사에서 열리기로 예정된 케이옥션 경매에도 근현대 화가들의 구상 작품이 대거 등장한다.

이번 경매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김환기의 작품 8점 가운데 ‘단색화 붐’에 힘입어 뜨겁게 조명을 받은 ‘전면점화’는 한 점에 불과하고 모두 구상계열 작품이라는 점이다. 이 중 최고가는 1965년 뉴욕에서 제작된 ‘남동풍 24-Ⅷ-65’로 추정가 9억~20억 원에 출품됐다. 물감을 얇게 발라 올라가면서 아래 색채가 비쳐 보이게 채색한 것이 특징이다.

우리 것을 향한 애정을 단순한 형태와 색채로 보여준 1950년대 작 ‘매화와 달과 백자’(추정가 5억5000만~12억 원), 달 아래 색점을 줄지어 찍은 1967년 작 ‘달’(4억~6억 원), 종이에 펜과 수채로 그린 ‘새’(2700만 원) 등 여러 작품이 나왔다. 김환기는 뉴욕시대의 전면점화로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지만 미술 애호가들 가운데 상당수는 오히려 전통적 조형미에 자연과의 조화를 잘 살려낸 초기 구상계열의 작품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매에는 이중섭의 작품도 2점 출품되는데 그 중 앞뒤 양면에 그려진 양면화 ‘큰 게와 아이들’ ‘닭과 게’(2억~5억 원)가 눈에 띈다. 또 천경자의 ‘꽃과 여인’(3억~6억 원), 장욱진의 ‘풍경’(7000만~1억2000만 원)도 각각 출품됐다. 최근 미술시장에서 이처럼 근현대 작가들의 구상 작품이 다시 조명받는 사실을 화단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술사학자인 이태호 명지대 초빙교수는 “그동안 국내 화단이 지나치게 단색화 일변도여서 김환기 이전 한국 미술사가 공백의 위기에 처할 상황에 몰렸다”며 “한국미술에 대한 관심을 보다 다양화해 소림 조석진, 심전 안중식, 소정 변관식, 청전 이상범, 해강 김규진 등의 근대 화가들까지 재조명하는 동시에 현대의 젊은 작가들도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