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근로자 위해서도 화급한 탄력근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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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18-03-12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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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태 KAIST 교수·경영학

국회는 최근 연장근로 시간을 주 12시간으로 단축하는 노동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기업으로서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사업하기 어렵게 하는 규제 충격을 잇달아 받고 있다. 이 법안의 통과 배경에는, 우리나라의 근로자들이 과도한 연장근로로 ‘저녁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인식과 함께 법원에서 다툼이 되고 있는 휴일 연장근로에 대한 초과 임금이 150%냐 200%냐 하는 분쟁이 깔려 있다. 이 법안이 초과 임금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거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지만, 앞으로 우리 경제에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하는 만큼 많은 역효과가 우려된다.

과도한 장시간 근로의 근거로 제시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연평균 근로시간 2위라는 통계는 시간제 근로자의 비중이 작은 데서 오는 현상이지만 지나치게 오해되고 있다.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월등하게 높은 싱가포르, 홍콩 등의 연평균 근로시간이 우리보다 훨씬 길고, 우리나라는 연평균 근로시간을 OECD 회원국 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줄여온 나라라는 사실도 무시되고 있다. 연장근로가 빈번한 구조적 원인은 임시직이나 파견직 고용에 대한 규제로 일이 소수의 정규직에 몰릴 수밖에 없다는 점과 연장근로에 대한 높은 할증률 때문인데도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그대로 둔 채 획일적 규제로 결과를 맞추겠다는 전형적인 규제 만능주의의 반복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조치가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일자리를 늘리는, 방향 전환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 정반대다. 우리나라는 현재 노동시간당 국내총생산(GDP) 생산성이 퇴보하고 있다. 최근 10만 명 이상 고용이 축소된 조선산업, 금호타이어의 매각, 한국GM 군산공장 ‘폐쇄’에서 보듯이 우리의 질 좋은 대기업 고용이 급속도로 축소되고 있는데, 근로시간을 줄인다는 것은 근로자들의 임금 축소로 귀결되고, 대기업 또는 공공부문과 영세·중소기업의 근로 여건 격차의 확대로 그간 지적돼 온 노동시장의 분절화가 더욱 확대되는 부작용도 예상된다.

생산성이 늘지 않는데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저녁이 있는 삶이 아니라 정반대가 된다. 소득이 줄어든 근로자들이 야간이나 주말의 자투리 보조 일자리를 찾아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로 취약계층이 일하는 자리에 정규직들이 진입하게 되면 취약계층이 노동시장에서 밀려나는 건 이미 다른 나라에서 증명된 사실이다.

일본은 연장근로에 대한 규제가 월 100시간인 데 비해 우리는 주당 12시간으로 월 48시간밖에 안 된다. 이 점만 비교해도 이번 입법이 경제 현실을 무시한 선택임을 알 수 있다. 일감의 변동성에 대해 고용의 유연성이 없을 때 연장근로가 발생한다. 따라서 월 100시간에 비해 주 12시간은 일감의 변동에 대해 기업이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을 지나치게 제약할 수밖에 없고, 일감에 대한 자기 통제력이 약한 협력업체나 영세기업들에 부담이 과중해지는 건 명약관화하다.

보완 대책이 없다면 기업들의 생산 공장 해외 이전이나 시설 자동화로 일자리가 줄거나, 한계기업의 도산과 폐업의 부작용이 예상된다. 그러나 국회는 이를 보완해줄 계절별·업종별 특성을 반영한 ‘탄력근무제’ 도입에 실패했다. 노동계의 반발을 우려한 여당의 인기 영합적 태도 때문이다. 탄력근무제 도입과 고용시장의 유연성 도입 등 보완책을 서두르지 않으면, 저녁이 있는 삶이 아니라 저녁 먹을 시간도 돈도 없는 세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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