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남북회담用 ‘당근’은 美北회담엔 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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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 前 駐유엔 대사

문재인-김정은 및 트럼프-김정은 간의 정상회담 소식으로 한국과 미국은 물론 베이징과 도쿄를 비롯해 온 세계가 들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은 충동적·즉흥적이었다기보다는 2016년 후보 시절 ‘햄버거’ 발언이나 지난 1·10 문 대통령과의 정상 통화 때 미·북 간 대화를 희망한다고 한 발언에 비춰 예전부터 머릿속에 있던 생각을 참모들과 상의 없이 혼자 결정했을 것으로 보인다. 외교의 일반 관행에 따르면 고위 실무급에서의 논의가 상향식으로 선행돼야 했겠지만, 이번엔 그 과정이 반대였을 뿐이다.

국내에서는 기대와 낙관이 비관적 전망보다 앞서지만, 미국 분위기는 유보적이다. 지난 20년 이상 북한의 협상 행태에 속은 경험 결과, 미·북 정상회담이 비핵화 달성의 좋은 기회라는 점은 일부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 도사린 위험에 대한 의구심과 신중론이 주조를 이룬다. 행정부·의회·전문가 그룹 모두 마찬가지다.

김정은에게 이번 결정의 주요인은 무엇보다도 마음속에 파고든 절박감이라고 본다. 강력한 다층적 제재에 의한 압박과 미국의 군사행동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젊은 독재자를 움직이게 한 동력이다. 2300만 주민의 통치자로서 이대로 가다간 또 다른 고난의 행군, 미국의 타격, 또는 불안정에 의한 급변사태 등 어느 하나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공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직은 여기까지다. 그런데,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정상 차원의 실패는 더 큰 재앙을 부른다. 2개의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개최된다는 전제 아래 새겨야 할 몇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 확고한 비핵화 목표의 공유, 즉 북한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CVID)다. 이들 중 과거 경험에 비춰 가장 중요한 것이 검증이다. 1992년 1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결과 구성된 남북핵통제 공동위원회의 활동은 사찰에 관한 북한의 무리한 고집으로 파탄을 맞았다. 2008년 12월 마지막으로 열린 6자회담도 북한이 제출한 핵 활동 일지와 시설에 대한 검증을 거부해 결렬됐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유예는 지난번 방북 특사단 면담 때 김정은의 말 한마디로 확인된 듯하다. 그러나 그의 말 한마디로 파기될 수도 있다. 신뢰는커녕 불신 수준이 최악인 북한의 말은 그 내용이 비핵화든 남북관계든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둘째, 한·미 동맹과 공조의 중요성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성격상 협상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비핵화를 위한 큰 틀의 합의 여부가 성공의 가늠자다. 다만, 어떤 일이 있어도 한·미 동맹은 북한과의 협상 대상이 돼선 위험하다. 이는 결렬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지켜야 할 원칙이다. 또한, 2개의 정상회담이 1개월여 간격을 두고 열리는 만큼 둘 사이의 의제 조율과 개최 전략에 관한 한·미 간 긴밀한 사전 협의가 중요하다. 김정은으로선 비핵화 의제는 트럼프와 마주 앉아 풀고 싶겠지만, 우리와 논의에 소극적일 경우 앞으로 선례가 될 위험이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남북회담이 선행하는 상황에서 인도주의적 사업을 뛰어넘는 당근 제시가 미·북 회담에 독(毒)이 될 수도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셋째, 정부와 국민 모두 과도한 기대와 착시 가능성을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핵에 관한 북한의 근본적 입장은 아직 변한 게 없다. 비핵화가 선대의 유훈이라는 말은 10여 년 전 김정일에게서도 들었다. 산전수전 다 겪고 나서 또 속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