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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이용식 논설주간 게재 일자 : 2018년 03월 14일(水)
믿지 말고 검증하라(Distrust, and veri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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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 논설주간

레이건 “Trust, but verify”
소련과의 핵 협상 때 기본원칙
이란核에 맞서 ‘검증 또 검증’

南北 정상회담도 核에 집중해야
핵시설·무기 ‘무제한 조사’필수
나쁜 합의 땐 ‘데드 엔드’ 봉착


핵무기 협상은 원래 어렵다. 한 방에 상대국을 제압할 수 있는 ‘절대무기’여서 보유하려는 측도, 막으려는 측도 필사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핵무기 최초 보유국이면서 여전히 핵 최강국이고, 실전에 사용해본 유일한 나라인 데다 ‘세계 경찰’ 역할까지 한다. 당연히 핵 협상 경험도 압도적으로 많다. 가장 상징적인 것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제네바(1985년)·레이캬비크(1986년) 회담이다. 레이건 대통령은 스타워스 등 군비 경쟁과 경제 압박을 병행하면서 협상을 밀어붙인 끝에 핵무기 감축과 냉전 종식의 길을 열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 속담인 ‘믿으라, 그러나 검증하라’(Trust, but verify)를 수시로 인용했고, 또 관철했다.

최근에 타결된 것은 2015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의 이란 핵 협상이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레이건의 말을 원용해 ‘검증하라, 또 검증하라’(Verify, and verify)고 했다. 직전 국무장관인 힐러리 클린턴은 ‘믿지 말고 검증하라’(Distrust, and verify)고 충고했다. 레이건 시기에 비해 핵무기 보유는 쉬워졌고, 비확산 노력은 그만큼 어려워진 데 따른 변화일 것이다.

25년 전인 1993년 3월 12일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했고, 1차 북핵 위기가 발생했다. 여기엔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북한의 교묘한 전술에 따라 ‘핵’ 갑을관계가 뒤바뀌게 된다. 핵무력 열세였던 북한은 1991년 12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통해 주한미군 핵탄두 전면 철수 등 ‘남한 비핵화’를 달성했다. 그리고 자체 핵무기 개발에 본격 착수해 이 순간까지 멈추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런 북한에 대해 ‘채찍’보다 ‘당근’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핵실험을 6차례나 감행하고 장거리미사일 기술까지 확보했다. 북한 위협이 미국 본토까지 미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략적 인내’를 포기했다.

그런데, 극적으로 협상 테이블이 마련됐다. 청와대 설명처럼 ‘문재인 대통령의 축적된 노력과 김정은의 숙성된 고민’의 합작품은 아니다. 북핵 제재가 티핑포인트를 넘었다는 것이 근본 배경이고, 다음으로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김정은 3자의 단기 전략이 접점을 찾은 덕분이다. 경위야 어쨌든, 남·북 및 미·북 정상회담 과제는 복잡하지 않다. 북핵 폐기를 강제할 장치를 만드는 일이다. 로드맵은 이미 마련돼 있다. 1994년 10월 21일 발표된 미·북 제네바 합의에는 핵 프로그램의 단계적 폐기와 상응한 보상, 상호 연락사무소 개설과 수교까지 적시돼 있다. 2차 핵위기 뒤 2005년 9·19 합의는 주권 존중과 평화적 공존, 관계 정상화를 향한 ‘행동 대 행동’ 방안까지 담고 있다.

문제는 북한의 카드다. 이것도 뻔하다. 과거 여러 차례 선보였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적대시 정책 포기는 한·미 연합훈련 중단,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동맹 해체다. 한반도 비핵화는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제공 중단, 핵 탑재 전략무기의 한반도 진입 금지 및 이를 감시할 장치를 의미한다. 이런 공세적 입장을 취하면서도 핵시설 사찰에 대해선 응하는 시늉만 할 것이다. 2010년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에게 그랬던 것처럼, ‘핵보유국’을 과시할 일부만 자랑삼아 공개하고 정작 중요한 시설은 숨길 수도 있다.

또다시 북한에 속아선 안 된다. 여론조사에서 ‘북한을 못 믿겠다’는 응답이 64%였다.(지난 9일 리얼미터·CBS) 국민은 냉철한데, 정작 현 정권이 들뜬 것 같아 걱정이다. 문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북핵 폐기를 미·북 문제로 떠넘기지 말고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 핵 문제는 제쳐놓고 허황한 큰 그림에 집착하면 김정은 술책에 휘둘리게 된다. 북한 주장을 단계마다 철저히 검증하고, 합의에 대해서는 반드시 실행되도록 해야 한다. 나쁜 합의보다는 합의하지 않거나 다음으로 미루는 게 낫다.

여러 차례 북한에 당한 뼈아픈 대가로 이제는 함정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 제네바 합의와 9·19 합의 모두 북한의 의심 시설 조사 거부로 좌초했다. 다시는 속지 않기 위해 투명하고 제한 없는 검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더라도 핵시설과 핵무기를 모두 찾아내 사찰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비핵화 ‘완성’ 없는 평화·통일은 신기루다. 본질에 집중하지 않으면 정상회담은 돌파구가 아니라 ‘데드 엔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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