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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후여담 게재 일자 : 2018년 03월 14일(水)
회색 코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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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평 논설위원

국가 지도자 집무실 서가에 꽂힌 책은 그의 최근 관심사를 엿볼 수 있는 단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018년 신년사를 발표한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 집무실에서 카메라에 잡힌 책 중 하나가 ‘회색 코뿔소가 온다(The Gray Rhino)’였다. 회색 코뿔소는 미국 위기관리 전문가인 미셸 부커 세계정책연구소장이 2013년 다보스포럼에서 처음 소개한 개념이다. 발생 가능성과 파급력이 큰 데도 간과하는 위험을 뜻한다. 전례 없던 양상과 강도로 닥치는 ‘검은 백조(Black Swan)’와 비교된다. 중국어 번역판(‘灰犀牛’)은 지난해 출간됐다.

회색 코뿔소는 중국의 최근 경제 상황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급부상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르바오가 지난해 7월 1면에 “경제에서 회색 코뿔소도 경계해야 한다”는 칼럼을 실은 건 시진핑이 국가 부채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직후였다. 외국 언론들도 고성장에 가려진 막대한 부채, 불투명한 금융, 자본 유출, 부동산 거품 등을 중국에 닥칠 회색 코뿔소라고 보도했다. 중국은 얼마 전 업계 3위 안방보험과 최대 민영 석유기업인 화신에너지의 경영권을 박탈했다. 민영기업의 경영권을 접수하는 건 중국에서도 이례적인데, 지난 8일 당국이 공개적으로 “블랙스완을 못 날게 하고, 회색 코뿔소가 돌진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서방에선 ‘시황제’ 체제와 결부시키는 분위기다. 독재로 회귀한 중국이 반(反)시장 정책을 거듭한다면 세계 경제에도 위협 요인이 된다. 회색 코뿔소를 막겠다는 시진핑이 타국엔 회색 코뿔소가 되는 아이러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한 신년 인터뷰에서 “한국경제로선 단기적으로 일자리, 중장기적으로 저출산 문제가 회색 코뿔소”라고 짚었다. 정부는 저출산을 해결하겠다고 2006∼2017년 122조 원을 퍼부었으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05명으로 역대 최저였다. 미구에 닥칠 재앙은 뚜렷한데도, 정부 내에서 이젠 위기감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현실부정은 회색 코뿔소의 초기 특징이다.

당장은 ‘일자리 코뿔소’가 위험하다. 일자리는 기업의 혁신과 역동성이 만든다. 그러나 많은 기업은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줄줄이 예고된 시한폭탄 앞에서 생존 자체를 걱정하는 중이다. 외부에서 찾아온 위협이 아니다. 지금 정부가 작정하고 불러낸 회색 코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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