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相生, 새로운 시작>‘사회적 가치’를 회계장부에 반영… 한국기업 최초의 시도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해 12월 ‘카이스트 사회적 기업가 MBA’ 과정 학생들과 간담회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SK그룹 제공

- ④ SK그룹의 사회 공헌

핵심 경영평가 요소로 적용
‘뉴SK’ 기틀 확립에 총력전
빈곤·실업·환경 등 사회문제
해결 기여도 평가기준도 정립

올 ‘사회적기업연구원’ 설립
SPC제도 더욱 정교하게 손질

#1. 강도욱 휠리펀트 대표는 아프리카 가나의 3개 오지 마을에 자전거를 대여해 주고 이익을 얻는다. 교통수단이 없어 일터와 학교 등을 매일 몇 시간씩 걸어 다니던 이들에게 자전거가 생기자 학생 성적은 59%, 주민 소득은 25%나 급증했다. 박중열 제리백 대표는 자체 제작한 가방이 한 개 팔릴 때마다 아프리카 우간다 아이들에게 ‘물통 가방’을 하나씩 기부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신준영 캐어유 대표는 정보기술(IT)과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실버 콘텐츠’를 만든다. 하루 5분 스마트폰이나 PC로 다양한 게임 등을 즐기며 치매를 예방하는 인지재활 프로그램 ‘엔브레인’과 ‘정신건강테스트’ 애플리케이션 등이 대표상품이다. SK그룹이 2012년 사회적 기업가 양성을 위해 세계 최초로 카이스트와 공동으로 개설한 ‘사회적 기업가 경영학 석사(MBA)’의 올해 졸업생들이 하고 있는 일들이다. 카이스트 MBA 과정은 2년 전액 장학금을 제공하며 사회적기업 창업에 목표를 둔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인재 사관학교로 자리 잡았다.

#2. SK동탄 드림주유소에는 모든 셀프 주유기 옆에 검은 가죽가방이 전시돼 있다. 주유하던 고객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가방에 집중된다. 직접 메볼 수도 있고, 가방을 사려는 손님들의 주문도 최근 한 달 새 1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곳에 전시된 가방은 사회적기업 모어댄이 만든 컨티뉴가방이다. 사회적기업이란 장애인이나 노인 등 취약계층을 우선 고용하고, 자원재생 등 사회적 목적을 우선으로 두고 영업하는 기업을 가리킨다. 모어댄이 만드는 가방은 자동차를 만들고 남은 자투리 가죽이나 폐차량에서 나오는 가죽시트를 재활용했다. 가방 전시 아이디어는 SK동탄 드림주유소를 운영하는 조영문 ㈜대양석유 회장이 직접 냈다고 한다.

SK이노베이션이 후원하는 컨티뉴가방이 네이버 해피빈을 통해 목표 모금액의 14배를 후원받으며 성공적으로 펀딩을 마쳤다. 펀딩을 시작한 지 40일 만에 4342만 원을 모금했다. 당초 목표 대비 1447%에 해당하는 결과다. 모어댄은 지난 1월 25일 ‘폐차 가죽으로 희망을 재단하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네이버 해피빈에서 소개됐다. 모어댄의 업사이클링 브랜드 컨티뉴는 방탄소년단 리더 RM이 백팩을 착용하고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려 주목받았다. 특히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8일 연세대에서 열린 ‘글로벌 지속가능 발전포럼’에서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컨티뉴 백팩을 들고 사회적 성공 사례로 언급한 바 있다.

‘사회적 가치’라는 단어로 요즘 주목받는 SK그룹은 대한민국 기업 사회공헌사를 새로 쓰고 있다. 다른 기업들이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길이다. 최 회장은 그룹의 정관을 바꿔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회계 장부에 함께 표시하는 ‘더블보텀라인(Double Bottom Line)’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기업 가운데 사회적 가치를 회계시스템에 반영하고 핵심 경영평가 요소로 적용한 전례는 아직까지 없다.

SK그룹은 올 상반기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을 연구하는 재단인 ‘사회적기업연구원’을 설립한다. 재단은 그동안 SK그룹 내부에서 진행하던 ‘사회성과인센티브(SPC)’ 제도를 정교하게 가다듬기 위한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SPC란 사회적기업이 만든 사회적 가치를 객관적으로 측정해 그 가치에 비례해 보상해 주는 방식을 말한다. SK는 2016년 44개 사회적기업에 30억 원, 지난해 93개 기업에 약 50억 원의 SPC를 지급한 바 있다. 올해부턴 서울시의 소셜벤처 지원에 SK그룹이 사용하는 SPC 제도가 사용된다. 민간이 아닌 정부에서 이를 도입한 것은 처음이다.

‘더블보텀라인’의 실행 주체인 SK 그룹 내 사회공헌위원회(사공위)의 위상도 강화되고 있다. 특히 SK 사공위는 단순한 사회공헌 전담조직을 뛰어넘어 올해부터 계열사 경영평가의 핵심 요소가 될 ‘사회적 가치 측정기준’을 마련하는 등 최태원 회장이 구상하는 ‘뉴SK’의 기틀을 확립하는 중책을 담당하게 된다. 빈곤, 실업, 환경 등 다양한 사회문제 해결의 기여도를 정량 평가하는 기준을 정립해 올해부터 계열사들의 경영평가에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방승배 기자 bs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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