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은 노비제 확대한 왕… ‘성군’ 고정관념은 환상”

  • 문화일보
  • 입력 2018-03-15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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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최흥식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 문화제 기자회견에서 여는 말을 하고 있다.2018.2.6


- 이영훈 前서울대교수 ‘세종은 과연…’서 주장 논란 일듯

“기생제 확충·사대주의 강화
본질적으로 反과학·反근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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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을 끔찍이 사랑했던 성군(聖君) 세종(재위 1418∼1450)에 대한 고정관념은 환상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일제강점기에서 근대 발전의 단초를 찾는 ‘식민지근대화론’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이영훈(사진)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번 주 펴낸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백년동안)란 책에서 이런 주장을 폈다. ‘세종실록’을 비롯한 다양한 사료를 경제사적 관점에서 꼼꼼히 살폈다는 이 전 교수는 “세종 재위기에 ‘노비제 확대’ ‘기생제 확충’ ‘사대주의 강화’ 등이 이뤄졌다”면서 “세종은 양반의 나라 조선왕조의 성군일지 몰라도, 그 같은 환상은 본질적으로 반개인적, 반과학적, 반근대적”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예상된다.

조선 경제사뿐 아니라 ‘조선 노비제’ 연구에 정통한 이 전 교수에 따르면, 17세기 중엽 조선의 인구 약 1200만 명 중 30∼40%가 노비 신분이었다. 심지어 1663년에 만들어진 한성부 호적을 보면 73%가 노비였다. 노비 인구가 크게 팽창한 데에는 세종의 역할이 컸다. 노비가 주인을 고소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박탈한 노비고소금지법(奴婢告訴禁止法, 1422년)은 노비를 주인의 완전한 사유재산으로 만들어 그 가격을 고려 때보다 5∼6배 올려놓았다. 태종 때만 해도 노비 인구 억제를 위해 노비와 양인의 결혼을 금지했지만, 비(婢)가 양인 남자와 결혼해 낳은 자식은 양인 신분으로 삼았다. 세종 때 만들어진 종모법(從母法, 1432년)은 노비제의 기틀을 놓은 법으로, 노비와 양인의 결혼을 방임하면서도 노비와 양인 남자의 소생을 노비 신분으로 돌려 재산으로서 노비의 양산을 가져왔다.

기생제 역시 마찬가지다. 세종은 1431년 관비가 양인 남성과 낳은 자식 중 딸은 기생, 아들은 관노로 삼자는 형조의 건의를 수락했다. 또 1437년에는 국경지대의 군사를 위로할 목적으로 기생을 두라는 지시도 내렸다. 저자는 “세계사에서 한국사가 지닌 개성적 특질을 상징하는 기생제는 사실상 세종이 만들었다”면서 “세종에게 노비와 기생은 피가 천하고 성적으로 난잡해 소생의 부계를 인정할 수 없는 금수와 같은 존재였다”고 비판한다. 또 세종은 하늘에 올리는 제사인 천제(天祭)를 중국 천자의 예에 속한다며 스스로 폐지해 국가 체제를 제후국으로 정비했고, 사대주의가 더욱 강화됐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세종이 성군으로 자리 잡은 이유에 대해 이 전 교수는 “역사학의 가장 중요한 분야인 경제사 연구를 방임하고 정치사와 문화사 연구로 경도된 가운데 유교 국가 나름의 민본주의와 합리성을 관념적으로 부각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가 2016년 인터넷 매체에서 했던 강의를 토대로 쓰인 이번 책은 앞으로 12권의 ‘이영훈 교수의 환상의 나라’ 시리즈로 이어질 예정이다. 그중에 친일파 문제를 다룬 ‘나라는 누가 팔았는가’, 위안부 문제를 다룬 ‘위안소의 여인들’ 등도 포함돼 논란이 예상된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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