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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게재 일자 : 2018년 03월 17일(土)
“가정 망가질까봐” 외칠 수 없는 미투…주부들 냉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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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시스】세계여성의 날인 8일 오전 서울 세종로 광화문 광장 인근에서 한국여성의 전화 관계자들이 성폭력 저항운동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상징하는 하얀 장미를 시민에게 나눠주고 있다. 2018.03.08.
“애인하자는 경찰, 나한테 안겨 몸 더듬거려”
“청소년 때 2번 성추행 당해…가해자는 친척”
남편·시댁 반응 불안…“폭로해도 해결 안 돼”
“힘들게 쌓은 가정 울타리 무너질까 두려워”
가부장적 구조 고착화…“남성 성 인식 후진적”



사회 전반에 걸쳐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확산되고 있지만 주부들은 속앓이만 하고 있다.

미투 운동에 동참하고 싶어도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허물어질까 봐 극도로 두려워하는 것이다. 섣불리 피해자라고 고백했다가 가족과 남편으로부터 2차 피해를 당할 수 있다. 또 성범죄 피해자라는 사실을 이제와서 밝힌다 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는 체념이 침묵으로 이어지고 있다.

주부 A(31)씨는 요즘 터져 나오는 ‘미투’ 운동을 보며 피해자들의 용기에 감탄하고는 한다. 그러면서도 7년 전 성추행을 당했던 ‘그날 일’을 밝힐 경우 가족들이 알게 될까 봐 두렵다고 했다.

A씨는 2011년 사회 초년생 시절 업무상 만났던 경찰과 저녁을 먹었다. 유부남인 그는 A씨에게 “남자친구는 있니”라고 묻더니 급기야 “처음 본 순간부터 마음에 들었다. 애인하자”고 제안했다. A씨가 거절하자 경찰은 “주말이라도 나랑 만나서 놀아달라”며 “대답을 하지 않으면 집에 보내지 않겠다”고 겁을 줬다.

A씨는 “당시 내 나이는 24살이었고 경찰관의 나이는 50살이었다”며 “확실히 노(No)라고 말하기에는 업무상 얽혀 있어 매우 무서웠다”고 털어놨다. 이어 “경찰은 밥을 먹은 후에도 억지로 노래방에 데리고 가더니 블루스를 추자고 했다”며 “거절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는 나를 안고 몸을 더듬었다”고 떠올렸다.

A씨는 “과거 성추행을 당한 사실이 있지만 남편이나 가족에게 밝히지 못했다”며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면 시부모님과 남편에게 ‘평소 어떻게 행동하고 다닌 거냐’는 핀잔을 들을 것 같아 무섭다”고 고백했다.

그는 “친구들도 이미 지난 일을 남편에게 뭐하러 말하느냐고 말리더라”면서 “친구와 얘기하고 나니 그동안 힘들게 쌓아왔던 가정이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에 끝까지 입을 다물기로 했다”고 말했다.

결혼 3년 차 주부 B(34)씨는 청소년 시절 두 차례 성추행을 당했다. B씨가 자는 방에 몰래 들어와 B씨의 옷 안으로 손을 넣고 신체를 만졌다는 것이다. B씨보다 10살 많은 가해자는 집 근처에 사는 가까운 친척이었다. B씨는 가족 행사 때마다 마주치는 가해자 때문에 끔찍한 기억이 떠오른다.

B씨는 “이번 기회에 용기를 내 폭로할까도 고민했지만 가족들이 충격을 받을까 봐 말할 수 없었다”며 “남편이나 시부모님의 반응도 두려웠다. 긁어 부스럼 될 것 같아 마음을 접었다”고 밝혔다.

대기업에 재직 중인 워킹맘 C(29)씨는 “최근 회식 때 상사가 허리를 감싸고 허벅지를 만지길래 ‘그만 하세요’라고 말했다가 분위기가 안 좋아졌다”며 “분위기를 바꿔서 간 노래방에서도 상사가 ‘블루스’를 요구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상황을 직접 눈으로 목격한 남자 동료들도 가만히 있는데 가족이라고 해결해 줄 수 있겠느냐”며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괜히 말해서 남편이나 시부모님 눈치를 보면서 회사에 다니고 싶지 않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이런 사례는 끝이 없다. 수면 위에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주부 이모(33)씨는 “남편에게 ‘내가 과거 성폭행을 당했으면 어떨 것 같냐’고 물었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면서 “주부들이 과거 성범죄에 노출됐던 사실을 가족에게 고백하고 싶다가도 가족의 시선이나 반응이 두려워 대부분 주저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모(36)씨는 “지난해 여름 아내가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말하더라”며 “저녁밥을 먹는데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지 않아 ‘평소 짧은 치마 좀 입지 말라’고 했다가 핀잔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분명히 가해자가 잘못했는데 나도 모르게 아내를 탓했다”고 했다.

주부들이 성폭력 피해 경험을 주변에 알리기 망설이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경우 가부장적인 구조가 워낙 일반화하고 고착화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성폭력 피해를 스스로 밝히는 것조차 큰 용기가 필요한데 그 중에서도 가정을 가진 기혼 여성의 경우 자기 삶이 송두리째 망가질 수 있는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은 “피해자가 성범죄 사실을 고백하면 남성들은 ‘여성으로서 정조를 잃게 행동했다’고 생각한다”며 “여성이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도 “오랜 세월 가부장적인 교육으로 남성들의 성 인식이 선진화되지 못했다”며 “성범죄 피해자를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본다”라고 진단했다.

임 교수는 “주부들은 피해 사실을 가족에게 밝혀도 도와주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사전에 알아서 체념했을 것”이라며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접근할 수 있도록 가족들이 도와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뉴시스>

<저작권자ⓒ '한국언론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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