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권의 멘털 노트>‘이 정도면 컨시드 주겠지?’… 고수는 이 나약한 마음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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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브도 전략이다

초반엔 다소 멀어도 후한 선심
어느 순간에 기브 안주면 당황
기분 상해서 퍼팅 실패 가능성
성공하더라도 샷 리듬 흔들려

2015년 美·유럽女골프 대항전
앨리슨리 퍼트 홀 50㎝ 멈추자
컨시드 생각하고 볼 집어 들어

페테르센 “준 적 없다” 이의제기
승리했지만 ‘꼼수’ 질타에 사과

주말골퍼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기브(컨시드)’일지 모른다. 쇼트게임이나 퍼팅으로 기브 거리에 붙는다면 라운드가 즐겁고 재미날 수밖에. 골프는 홀아웃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주말 골퍼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기브를 애용한다. 주말 골프에서 통상적으로 알려진 기브 거리는 ‘그립을 뺀 퍼터 길이’ 정도. 하지만 기브 거리는 사람, 라운드의 중요성, 내기의 정도, 공의 위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이것으로 인해 생각지도 못한 해프닝들이 발생한다. 기브 거리는 받고 싶은 사람과 주고 싶은 사람 간에 차이가 있으므로 더욱 그렇다.

퍼팅 후 홀로부터 애매한 거리에 공이 멈췄을 때, 기브를 받고 싶은 사람은 “어, 영어가 안 들리네!”라고 말한다. 동반자는 큰 소리로 “마크!”를 외치며 응수한다. 기브를 주느니 마느니 하면서 동반자들끼리 티격태격한다. 주말 골프에서의 기브는 골프의 재미를 배가시키기도 한다.

백미는 내기나 중요한 라운드에서 기브를 상대방의 심리를 흔들기 위한 고도의 심리전에 활용할 때다. 내기에 능숙한 골퍼나 로 캐퍼들이 상대방을 흔들기 위해 기브를 전략적으로 사용한다. 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방법은 초반에는 다소 멀다고 느껴지는 거리에도 기브를 준다. 후하게 선심을 쓰며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 준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기브를 주지 않는다. 기브를 기대했던 동반자는 순간적으로 당황한다. ‘어, 기브를 안 줘? 기브 거리인데….’ 이것이 고도의 전략인지를 알아차리지 못한 골퍼는 슬그머니 기분이 나빠진다. 퍼팅에 실패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설령 그 퍼팅을 성공했다고 치더라도 이후의 샷 리듬이 흐트러질 수도 있다. 이 전략은 대인관계에서 호감을 증가시키는 원리를 이용한 방법이다. 처음에 까다롭고 까칠한 행동으로 호감이 가지 않던 사람이 나중에 친절하고 후덕하게 행동하면 기대 이상으로 그 사람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된다. 반대로 초반에 좋은 호감을 주었던 사람이 나중에 까다롭고 까칠하게 행동하면 나쁜 감정을 가지게 된다. 기브를 가지고 동반자의 마음을 흔든 전략이 바로 이 두 번째 방법에 해당한다. 아주 간단해 보이지만 매우 효과적일 때가 많다.

프로선수들 역시, 매치플레이 때 상대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 기브를 놓고 교묘하게 전략으로 사용한다. 기브가 논란이 됐던 사례도 많았다. 대표적으로 2015년 미국과 유럽의 여자골프 대항전인 솔하임컵에서였다. 유럽 대표는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과 찰리 헐(영국)이었고, 상대는 미국 대표로 나선 한국계 앨리슨 리(사진)와 브리타니 린시컴이었다. 두 팀은 16번 홀까지 비기고 있었다.

17번 홀에서 페테르센-헐 조가 먼저 파로 이 홀을 마친 가운데, 앨리슨의 버디 퍼트가 홀 약 50㎝ 부근에서 멈췄다. 앨리슨은 당연히 컨시드를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무심코 공을 집어 들었다. 그러나 페테르센이 “컨시드를 준 적이 없다”고 이의를 제기해 결국 앨리슨이 벌타를 받았다. 결국 마음이 흔들린 미국 팀은 18번 홀에서도 지면서 유럽의 페테르센-헐 조에게 2홀 차로 패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미국팀을 자극했고, 다음날 싱글 매치에서 미국 팀이 대승을 거두고 역전승을 일궈냈다. 또 많은 팬으로부터 ‘꼼수’라고 질타를 받은 페테르센은 사과까지 해야 했다. 분명 기브를 받지 않고 무심코 공을 집어 든 앨리슨이 잘못했다. 하지만 팬들은 페테르센이 이기기 위해 너무 과하게 기브 전략을 구사했다고 봤다.

주말 골프에서도 이런 문제로 친한 동반자와도 서로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하지만 기브를 심리전에 활용하는 골퍼를 탓할 수는 없다. 이기기 위한 나름의 전략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치열한 경쟁의 시대에 살고 있다. 경쟁의 시대에서는 상대방의 조그만 빈틈도 파고들 준비가 되어 있다. 한순간의 방심도 금물이다. 나에게 호의를 베푼다고 해서 마냥 기분 좋아할 일도 느슨해질 일도 아니다. 기분 좋게 넋을 놓고 있다가 갑자기 상대방이 조여 오면 꼼짝없이 당한다.

경쟁적인 관계를 즐기면서 틈을 주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 누군가가 우리들의 자리를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심리학 박사·연우심리개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