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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8년 03월 20일(火)
고요·평화도 넘어선 ‘관조적 시선’… 절제된 자유로 이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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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의 인물화 ‘아고스티나, 이탈리아 여자’. 무엇인가를 응시하는 인물의 표정은 명확히 표현하기 어려운 긴 여운을 남긴다. 각자에게 깃든 사적이고 내밀한 사연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자료 사진

■ 문광훈의 미학 에세이 - ⑮ 코로의 인물화와 풍경화

‘아고스티나…’에 그려진 그녀
무얼 응시하고 무슨 생각할까
억지가 아닌 자연스러운 파문

‘만돌린을 든…’ 의 그녀 역시
삶에 깃든 애환과 우수 남겨

‘작은 새 둥지’ 등 풍경화들은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외면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되찾아줘

삶을 응시하는 표현적 시도에
‘말할 수 없는 것’ 도 가늠된다


코로 그림의 정취 있는 분위기는 풍경화에만 있지 않다. 그의 인물화에도 잘 드러난다. 지난 회에서 나는 풍경화를 외면 풍경과 내면 풍경으로 나누고, 코로의 그림은 ‘내면적 풍경화’에 가깝다고 적었다. 내면적 풍경화에서 사물이 화가의 감정을 담는다면 이 감정이 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게 인물화다. 인물화 속의 사람은 내향적이고 내밀한, 그래서 좀 더 속 깊은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고개 숙이거나 응시하거나

코로는 말년에 인물화를 많이 그렸다. 이 인물화에는 풍경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차분하고 가라앉은 분위기가 감돈다. 코로의 인물화는 하나같이 조용하게 느껴진다. 어떤 여운과 자취가 남아 있다고나 할까? 그의 그림은 오랫동안 보면 볼수록 더욱더, 사람의 마음에 이런저런 파문(波紋)을 일으킨다. 물결의 이랑에는 무늬가 그려져 있다. 파문은 물결의 무늬고 물무늬다. 이렇게 환기된 감정의 물무늬에는 여러 뉘앙스가 담겨 있다. 감정의 스펙트럼이라고나 할까? 그 감정은 처음에 부지불식간에 일어났다가 알 수 없이 착잡한 마음으로 이어지고, 지난날의 어떤 추억과 맞물리면서 애수나 회한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어떤 안타까움은 깊은 슬픔이 될 때도 있다. 내게 ‘아고스티나(Agostina), 이탈리아 여자’(1866)는 그러했다.

그녀는, 깎아놓은 돌 선반에 손을 얹은 채 가만히 서 있다. 그녀의 옷차림은 이국적이다. 어깨에는 진홍빛 끈이 있고, 끈 밑으로 하얀 옷이 진홍빛 겉감 아래 드리워져 있다. 어깨와 가슴의 맨살은 반쯤 드러나 있다. 치마의 배 부분에는 흰 바탕에 꽃무늬가 붉은 갈색으로 그려져 있다. 그녀 뒤쪽으로 저 멀리 마을이 펼쳐져 있고, 그 가운데 한두 집의 지붕이 언덕 위로 보이며, 오른쪽에는 굵은 나무 한 그루가 반쯤 그려져 있다. 그녀는 무엇을 생각하는 것일까? 그녀는 무엇인가 응시하면서 어떤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하다. 눈가의 그늘은 수심(愁心)의 깊이일까?

코로 인물화 속 사람들은 결코 밝다고 말하기 어렵다. 경쾌하거나 희열에 차 있다기보다는 조용하고 내성적이며 더 나아가 관조적이고 회고적이다. 어떤 일을 하다가, 이를테면 책을 읽거나 외출 준비하다가, 혹은 만돌린을 켜거나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문득 일을 멈추고 잠시 돌아보는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한 듯하다. 이때의 동작은 능동적이기보다는 수동적이고, 시선은 외향적이기보다는 내향적으로 보인다. 어떤 분위기는 여기에서 생겨난다.

외부에서 부과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에서 나오고, 억지로 짜낸 것이 아니라 쌓이고 쌓여 자연스럽게 배어 나온 것이 주는 어떤 감정의 파장과 메아리, 이 메아리에 마음은 흔들린다. 마음에 파문이 일 때, 그래서 물결무늬가 그려질 때, 감정의 이런 진동을 우리는 ‘감동’이라고 부른다. 어떤 무엇으로부터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고, 이 흔들림이 그 어떤 강제나 인위적 조작 없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영혼에까지 파장을 일으킬 때, 그것은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것들은 꽃이나 나무 같은 사물이나, 산과 숲 혹은 평원 같은 자연의 풍경에도 있지만, 자연 속에서 이 자연의 일부로 사는 인간에게도, 인간의 몸짓과 행동 혹은 말과 생각의 자취에도 배어 있다. 고개를 숙이거나 응시하거나 생각하거나 돌아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어떤 정취와 여운을 일으킨다. 그래서 아름답다.


▲  코로의 풍경화 ‘작은 새 둥지’에서 필자 문광훈 교수는 수면을 바라보는 염소에 주목한다. 우리의 시선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더 넓은 세계로 열리는 까닭이다. 자료사진

# 내면의 여운

‘만돌린을 든 집시 여자’(1874)를 보자. 그녀는 베이지색 연한 바탕에 나무색 줄이 넓은 띠처럼 그어진 이국적인 옷차림을 하고 있다. 망토처럼 늘어진 누런 외투의 붉은색은 머리에 덮어쓴 붉은 수건과 색채적으로 어우러지면서 강조된다. 만돌린을 연주하면서 그녀는 고개를 약간 돌린 채, 앞쪽을 바라보고 있다. 무엇을 응시하는 것일까?

그녀의 표정은 밝지 않다. 조용한 시선은 알 수 없는 그리움-부지불식간 마음속에 일어나는 파문에 응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파문일까? 그것은 말할 수 없는 슬픔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실과 만돌린, 나날의 생활과 음악 사이의 틈에서 오는, 이 틈을 의식하는 데서 생겨나는 비애 같은 것은 아닐까? 코로는 왜 작품에 자신만의 감정과 이해와 회한을 담았을까? 말년에 이르러 그는 신화적 주제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그는 인물을 더 자주 다뤘고, 풍경화에 더 몰두했다. 그는 파리에서도 화가들과 친교를 나누기보다는 홀로 작업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동시대 화가들 가운데 그가 유보 없이 평가한 화가는 쿠르베 정도가 유일했다고 한다. 그 마음의 내면 풍경은 어떠했을까?

이렇듯 코로의 인물화는 사람의 외양에 대한 사실적 묘사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삶에 깃들기 마련인 애환과 우수를 담고 있다. 이 애환은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표현하기도, 설명하기도 어렵다. 그것은 긴 여운을 남긴다. 마치 코로의 풍경화가 자연의 가시적·물리적 풍경뿐만 아니라, 이 풍경에 화응하는 화가의 기억과 이 기억에 밴 슬픔을 담고 있듯이 그의 인물화도 각자에게 깃든 사적이고 내밀한 사연을 담고 있는 듯하다. 이 내밀한 기억의 프리즘 덕분에 그의 인물화는, 마치 그의 풍경화에 나오는 장소가 그러하듯이, 오래된 고향처럼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코로의 그림에는 풍경화든 인물화든, 예외 없이 기억과 회한, 슬픔과 비애가 깃들어 있다. 거기에는 감정의 한두 종류가 아니라 여러 갈래가 배어 있다. 그 갈래는 확연히 구분되기보다는 미묘하게 뒤섞여 있다. 그래서 분명히 규정하기 어렵다. 이를테면 ‘기뻐한다’ 혹은 ‘슬퍼한다’기보다는 ‘흐뭇해하면서 애수에 차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인다. 감정의 실상은 무슨 분류표 아래 뚜렷하게 나눠 있기보다는 한 덩어리로 뭉쳐 있다가 어떤 계기로 부챗살처럼 다양하게 퍼져 간다. 감정의 마디마디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뉘앙스가 깃들어 있다.

우리는 감정이 지닌 이 같은 다채로움을 대개 잊고 지낸다. 너무 바빠서, 혹은 너무 고단하고 힘들어서 그 내밀한 풍요로움을 외면한 채 지낸다. 매일 반복되는 구태의연한 감정이, 이 감정의 완고한 타성이 원래부터 그러하다는 듯이, 그래서 그것이 감정의 전부라고 믿으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코로의 작품은 이 같은 감정의 부챗살-우리에게 주어진, 그러나 우리가 오랫동안 잊어왔거나 외면해온 느낌의 프리즘을 다시 상기시켜준다. 아마도 ‘우아’를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런 대목에서일 것이다.



#우아 - 향유 - 윤리

코로의 풍경화를 보고 있으면, 나는 어떤 고귀함과 우아 그리고 품위까지 느낀다. 여기에서 고귀와 우아 그리고 품위에 대한 개념적 구분은 쉽지 않다. 그러나 한번 시도해보자. ‘우아’란 일단 차분하고 여성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행동적으로 거칠지 않고, 분위기적으로 조용하며, 가치적으로 비폭력적이다. 우아라는 가치가 서구에서 귀족적인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모든 그럴듯한 가치가 어느 정도 그러하듯이, 현실기만적 면모도 없지 않다. 귀족적 우아나 기품 아래 계급적 서열화나 사회정치적 불평등이 자주 은폐돼 왔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누적된 이 같은 과오를 우리는 외면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우아나 품위 같은 가치가 심미적 핵심 범주인 것도 사실이다. 만약 우아함을 ‘완화된 파토스로서의 평정심’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그래서 조용한 가운데 자연의 전체와 어울리며 평화롭게 삶을 영위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시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또 조용한 삶을 일정한 리듬에 따라 살아간다면, 그것은 음악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아와 음악과 시는 깊게 이어진다. 코로는 실제로 오페라를 무척 좋아했고, 파리에 있을 때면 자주 음악회에 갔다고 전해진다. 그의 풍경화가 지닌 시적 분위기는 결국 음악적 정취일지도 모른다.

‘작은 새 둥지’(1873~1874)를 보자. 이 그림의 중심은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서 있는 오른쪽의 울창한 나무다. 그 왼쪽에는 그보다 줄기가 굵지 않고 잎새도 성긴 작은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이 나무는 세 줄기로 나 있고, 그 가운데 하나 둘레로 세 아이가 서 있다. 밑에서 위를 쳐다보는 것은 여자아이이고,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것은 개구쟁이 사내아이로 보인다. 무슨 열매를 따는 것인지 오른쪽 아이는 앞치마를 들어 뭔가를 받으려 한다. 오른쪽에는 잔잔한 수면이 강인지 호수인지 알 수는 없지만 펼쳐져 있고, 언덕배기 위로는 성채 같은 집이 서 있다.

그림의 중앙에서부터 그 안쪽으로는 하얀 염소 세 마리가 있다. 한 마리는 수면을 바라보고 있고, 다른 한 마리는 풀을 뜯고 있으며, 또 다른 한 마리는 숲 쪽을 쳐다본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제각각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화가가 주목한 대상은 어떤 것일까? 아마도 그의 관심은 열매 따는 아이나 그 밑에서 바라보는 여자아이들, 아니면 먼 곳을 쳐다보는 염소나 풀을 뜯는 염소 모두에게 향해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가장 아끼는 것은 그림 정면에 있는 염소의 모습-수면을 바라보는 관조의 풍경일지도 모른다. 그 시선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더 넓은 세계로 열리는 까닭이다.

아마도 감성과 이성은 윤리에서 완성될 것이다. 그러나 삶을 이끄는 것은 윤리적 강령이 아니라 향유하는 즐거움이어야 한다. 어떤 것도 매일 매 순간의 즐김보다 앞설 순 없다. 그러나 이 즐김이 윤리적이라면, 그것은 아마 더 ‘오래갈’ 것이다. 그래서 향유의 윤리는 권장할 만하다.

그러나 이 도덕이 일체의 강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이 벗어남에도 불구하고 삶을 거듭 쇄신시켜 간다면, 그 삶은 참으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종국적 지향은 윤리가 아니라 자유여야 한다. 관조적 시선은 고요와 평화를 넘어 자유로 나아간다. 이 자유가 일상의 평화를 깨선 안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 점에서 다시 도덕 윤리적 토대가 전제된다.

초연함이란 아마도 이 절제된 정열을 지칭할 것이다. 초연함에서 정열의 수동성과 능동성, 그 열도(熱度)와 냉정은 일정한 균형을 잡을 것이다. 차분함이란 균형 잡힌 마음에서 생겨나고, 평정심은 그런 마음의 이름일 것이다. 마음의 균형은 평정으로부터 온다. 균형은 감성과 이성 사이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이 균형에 이르는 데는 물론 오랜 훈련이 필요하다. 그 훈련은 파토스의 지나친 들고남을 깎아내는 이성적 수련과정이 될 것이다. 이 수련을 통해 삶은 비로소 조금씩 깊이를 더해갈지도 모른다. 행복은 아마도 그다음에 찾아들 것이다. 주어진 삶을 자연 속에서 살아가고, 이 자연의 풍경과 더불어 현존적 평온을 누리는 것은 변함없는 이상(理想)이 아닌가? 그래서 그것은 아름답게 느껴진다. 아름다움으로의 길은 이토록 에둘러 있다.



#세계의 시적 비전

사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나무든 바람이든, 풀이든 파도든, 이 자연에 반응하는 인간의 감정이든 몸짓이든, 어떤 비전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비전은, 그것이 ‘지향’이나 ‘목적’, ‘욕망’이나 ‘존재이유’ 혹은 그 어떤 다른 무엇으로 불려도 상관없다. 모든 것은 그 명칭이나 개념과는 별도로, 쉼 없이 움직이면서 동시에 멈춰지고, 부단히 만들어지면서 또한 사라져 간다. 그 가운데 우리가 쟁취해야 할 진실도 있고, 내가 복종해야 할 사실도 있다. 꿈꿀 수 있는 초월의 언저리가 있듯이, 추측으로밖에 감지하지 못하는 삶의 신비도 있을 것이다.

봄 나무의 가녀린 초록 잎새와 여름 소낙비의 세찬 줄기, 1주일 내내 작렬하던 매미 울음소리 끝에서 불현듯 찾아드는 어느 날 어느 순간의 정적, 그리고 가을바람의 서늘한 내음, 아침저녁의 신선한 기운이나 오후 서너 시 혹은 대여섯 시면 다가드는 잠시의 현기증.

우리의 언어는 매일 매 순간을 채우는 크고 작은 뉘앙스의 구체를 완전히 기술할 수 없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만 우리를 에워싼 세계와 가장 깊은 친교를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침묵 속에서 우리는 말할 수 있는 모든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의 전체와 어울리고, 그 충일을 잠시 향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명이 한없이 이어진다면, 이 지속은 오직 몰락과 쇠퇴를 관통하며 이뤄질 것이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지거나 사라질 수도 있는 현재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몸과 살, 시선과 숨결은 무엇을 위해 있는가? 별들은 움직이고, 하루는 저물며, 매 순간은 멀어져 간다. 내가 지금 하는 것은 과연 필연적인가? 나는 살고 표현하고 싶다. 시시각각 밀려오는 바람의 줄기와 파도의 물결, 그 무늬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싶다. 불어오는 바람에 매 순간 다른 모양으로 춤추는 잎새의 그 모든 몸짓을 표현해내고 싶다.

그러나 이 표현도 거짓이 아니기 어려울 것이다. 언어는 언어가 지칭하려는 삶이 아니라, 또 언어가 나타내려는 사물이 아니라, 그 자신만을, 언어 자신의 미숙과 결핍만 말해줄지도 모른다. 내가 사랑하는 이 삶을 나는 아직 잘 모른다. 언어의 무기력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 무기력에도 불구하고, 무기력 앞에서 말할 수 없는 것의 테두리는 말할 수 있는 가능성 속에서 다시 그어질 수도 있다.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하려는 표현적 시도 속에서 비로소 가늠된다. 이것은 마치 명암의 교차 속에서 세계의 풍경을 드러내고, 내밀한 표정 속에서 삶을 응시하는 코로의 그림에서도 확인된다.

보이는 것에 보이지 않는 것을 포함하고, 가시와 불가시의 이 영역을 넘어 우리는 지금보다 나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까? 아득하다. 사랑이 깊을수록 현기증도 심해진다. 조화로운 세계는 이 세계를 바라보는 화가의 조화감정이요, 상상력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세계를 시적 풍경으로 묘사할 수 있는 것은 예술가의 시적 능력이요, 세계관적 깊이에서 온다. 풍경의 시는 세계의 풍경을 시로 파악하려는 시적 열정의 표현이다. (문화일보 2월 27일자 24면 14 회 참조)

충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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