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밟은 한국땅 기다리는 건 기다림뿐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표명희 신작 ‘어느 날 난민’

‘오프로드 다이어리’ ‘하우스 메이트’ 등을 통해 도시의 소외된 이들을 그려 온 표명희 작가가 먼 곳에서 온 낯선 이웃 난민들의 이야기 ‘어느 날 난민’(창비·사진)을 펴냈다.

공항 근처 섬에 위치한 신도시, 새 아파트만 즐비하고 입주자는 보이지 않아 ‘유령 도시’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이곳에 ‘해나’와 어린아이 ‘민’이 떠돈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한국으로 왔지만 입국하지 못한 캄보디아인 뚜앙은 인천공항 내 송환 대기실에서 기약 없는 기다림의 나날을 이어가고 있다. 작가는 실제 난민들을 만나고 취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의 난민 문제를 파고들며 난민이라는 사회적 주제를 토대로 인권과 존중의 문제를 풀어낸다.

한편 개소 준비를 마친 공항 근처 난민 캠프에는 각자의 사연을 지닌 난민들이 입소하기 시작한다. 인도 카슈미르 출신의 찬드라는 가문이 정해준 남자와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할 뻔했다. 송환 대기실에서 긴 기다림을 끝내고 난민 캠프로 옮겨 온 뚜앙은 캄보디아 톤레사프 호수 위에서 나고 자란 무국적자, 보트 피플로 베트남 파병 군인이던 아버지 나라의 국적을 얻기 위해 한국행을 택했다. 샤샤네 가족은 중국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쫓겨 왔고, 아프리카 어느 부족장의 딸인 웅가는 백인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가 살해 위협 속에 도망친 처지다. 이들의 유일한 희망은 난민으로 인정받아 한국에 정착하는 것이다. 소설은 이 땅에서 태어나 살고 있지만 정작 머물 곳이 없는 해나와 민, 그리고 집을 찾아 한국에 왔지만 기다리는 일밖에 할 수 없는 난민들의 처지를 절묘하게 교차해 나간다.

작가는 난민 캠프에 모인, 자기만의 사연을 지닌 이들이 서로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고 이해해 나가는 구조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아픈 현실 속에서도 희망의 가능성을 품는다. 저자는 등장 인물을 통해 “이 지구별 위에서 인간은 이래저래 난민일 수밖에 없다”고, “난민 유전자를 나눈 사람들의 미세한 연대로 이루어진 게 인류”라고 말하며 사람들간의 이해와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