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의 동네 집 이야기>높은 담·교문 없앤 캠퍼스… 시민과 함께 호흡하는 공간으로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화여대의 랜드마크인 ECC(Ewha Campus Complex) 건물. 학생들에게 필요한 공간 외에도 전시실, 영화관, 식당, 서점 등 일반인도 이용할 수 있는 시설로 채워져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이화여대 ‘ECC’

정문 대신 ‘방문자센터’만나고
캠퍼스 안쪽으로 오르다 보면
유리·스테인리스 구조물 ‘반짝’
갈라진 바닷길 들어서는 느낌
극장·식당·서점 등 시설 가득

매력적 건물·녹지 등 어우러져
도시와 경계 없는 공간 재탄생

이화여대 정문, 정문이 바라보이는 빵집 앞에는 손에 꽃을 든 남학생 몇 명이 학교 정문을 응시하며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다. 몇몇 남학생은 정문 가까이 다가가 하교하는 여학생들을 꼼꼼히 살펴보려 하지만 서슬 퍼런 경비아저씨의 눈총에 슬금슬금 뒷걸음이다. 이런 남학생들의 마음을 아는지 학교 앞 다리 밑으로 긴 울음소리를 내며 기차가 지나간다.

사실 요즘의 이야기는 아니다. 지금은 상상이 안 되겠지만 내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 초의 이화여대 앞 풍경은 이랬다. 굳게 닫힌 철문과 높은 담장은 짓궂은 남학생들을 포함해 학교에 특별한 볼일이 없는 사람들의 출입을 엄격하게 막았다. 여대라서 조금 더 엄격한 면은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모든 대학이 높은 담과 정문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다녔던 건축과는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과제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교문을 닫는 시간을 놓치면 경비아저씨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학교에서 몰래 밤을 새우는 일도 있었다.

교문은 사람뿐만 아니라 자동차를 통제하는 데 더 효과적이었다. 교문에서 차단봉만 내려놓으면 오가는 차량을 쉽게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동차 사용이 급격히 많아지면서 주차공간 부족으로 인해 교내의 무질서와 보행자의 안전이 문제가 되면서 대학들은 한정된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우선 주차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교운동장이나 학교 내 도로를 재정비해 지하에 대규모 주차장을 건설했고 주차장과 도로가 있던 자리에 보행로와 광장, 녹지공간이 조성됐다. 녹지가 늘어나고 보행자를 위한 시설이 많아지자 대학 캠퍼스는 친환경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자동차를 지하로 옮기고 보행자를 위한 친환경시설의 확장과 함께 학교와 학교 밖을 구분하던 교문도 변화를 맞게 됐다. 육중한 철문을 없애고 지역사회와 소통이 가능한 변화를 시작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화여대의 웰컴센터. 글로벌 종합 방문자센터로 2013년 문을 열었다.

그 변화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곳은 이화여대다. 이 대학의 정문은 문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유리로 만든 방문자센터가 방문객을 맞는다. ‘이화웰컴센터’라고 불리는 방문자센터는 전시실을 갖추고 학교의 역사와 캠퍼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캠퍼스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다.

배꽃이 조각된 벽화를 뒤로하고 조금 더 캠퍼스 내부로 오르다 보면 땅을 갈라놓은 듯 지하로 이어진 커다란 길을 만나게 된다. 길이라기보다는 광장에 더 가까운 크기로 길 좌우의 맑은 유리와 스테인리스 구조물에 반짝이는 햇빛으로 인해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착각이 든다.

바닷물을 가른 모세의 기적이 이런 모습이었을까? 캠퍼스 입구에서 본관 건물까지 계곡처럼 이어진 이 반짝이는 지하건물은 ECC(Ewha Campus Complex)라고 부르는 복합기능의 건물이다. 이 건물에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공간 외에도 전시실, 영화관, 식당, 서점 등 일반인도 이용할 수 있는 시설로 채워져 있다.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전시실과 예술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영화관 앞에는 많은 사람으로 붐비고 있다. 여기저기서 보이는 남학생들로 인해 이곳이 여자대학임을 잠시 잊게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오르니 예쁘게 조성된 산책로가 반겨준다. 산책로 주변으로 오래된 학교 건물들이 파노라마로 다가온다. 가까운 곳에 있는 박물관과 작은 카페도 일반인들의 이용도가 높은 곳이다.

이화여대는 지하캠퍼스 ECC를 조성하면서 교문을 헐고 캠퍼스 일부를 일반인이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이화여대의 캠퍼스 개방은 반가운 일이다. 학구적인 분위기와 매력적인 건축물, 잘 가꾸어진 녹지는 누구에게나 매력적인 공간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이화여대의 ECC를 찾는 일반인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캠퍼스를 찾아오면서 크고 작은 문제도 생겼다. 학생들의 전용공간에 일반인이 들어와 면학 분위기를 해치거나 상업적인 시설의 설치로 불편을 느끼는 학생들도 생겨났다. 그런 점에서 대학 캠퍼스를 방문하는 일반 이용자들의 책임 있는 행동이 요구된다.

이화여대뿐만 아니라 많은 대학에서 담장을 헐고 캠퍼스를 개방해 지역사회와 함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대학이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에 기여하고 있지만 대학 캠퍼스 개방이 제공하는 공간의 기여 역시 가벼운 것은 아니다. 서울처럼 밀도가 높은 대도시에서 잘 가꾸어진 대학 캠퍼스는 시민들에게 활력소가 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많은 유럽의 대학은 캠퍼스의 경계가 없다. 마을 안에 대학이 있다. 대학도시라는 말이 생겨난 이유이기도 하다. 대학이 경계를 허물고 지역 속에서 함께 성장하는 우리나라 대학의 미래를 그려본다.

건축가·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