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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Her Story 게재 일자 : 2018년 03월 21일(水)
“미투 운동, 性대결 프레임으로 가면 혐오문화만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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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금숙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이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인터뷰 도중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최금숙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

일부 페미니즘의 남성비난 위험
여성운동 핵심은 ‘함께 잘 살기’

미투엔 ‘갑을관계’ 권력이 개입
‘인권 문제’ 라는 점도 인식해야

그동안‘인식 못한 性폭력’많아
모두 자기 행동 돌아본 계기 돼

단기적인‘폭로’에 그치면 안돼
‘양성평등’ 문화 확산 교육 필요


최금숙(68)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은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불도저 같은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한번 마음먹은 일은 어떤 것도 겁내지 않고 밀고 나간다는 의미다. 작은 체구와 온화한 인상에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단어였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렇게 말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최 회장은 1970년대에 대학교를 다니면서 총학생회장에 선출됐고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당시 경찰서에 수도 없이 끌려가며 두려움과 공포심이 컸지만 계속해서 싸웠던 이유는 사회 활동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최근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미투(Me Too)’ 운동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설명했다.

“지금은 과거처럼 신변의 위협을 느끼지는 않지만 사회 활동이라는 게 때로는 자신이 가진 지위를 모두 포기해야 하는 순간을 경험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미투 운동도 자신이 직장과 사회에서 겪게 될 피해를 감수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사무실에서 만난 최 회장의 평가다. 최 회장은 지금도 여성을 위한 정책과 인식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한국가정폭력상담소에서 간사로 활동하며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최 회장은 이후 한국가족법학회 회장,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을 거쳐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까지 연임했다.

최 회장은 미투 운동이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 사건을 바라봤던 태도를 반영하는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2차 피해 때문에 일을 당하고도 피해 사실을 감출 수밖에 없었다면, 지난 1월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를 계기로 사회적인 분위기가 반전되자 참아왔던 피해사례들이 봇물 쏟아지듯 터져 나오고 있다는 해석이다. 사실 그동안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여성이 부주의했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한 것 아니냐며 피해자를 오히려 비난하는 분위기가 있었고, 직장에서의 인사 불이익이나 신상공개 등 2차 피해에 시달려야 했다.

최 회장은 “서 검사의 폭로가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심각한 사회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을 느끼고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그동안 성폭력 피해자들은 자신이 사회로부터 받게 될 비난과 인사 보복 등 직장 내에서 겪게 될 피해를 생각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쉽지 않았어요. 미투 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문제가 됐던 한 기업의 신입사원 성폭력 사건도 여성들이 용기를 내기 얼마나 어려웠던 환경인지를 알 수 있죠. 당시 피해 여성이 사실을 알렸으나 오히려 피해자에게 진술 번복 등의 이유로 감봉과 풍기문란 징계를 내렸던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미투 운동 이후에는 피해자들이 자신을 사회가 인정하고, 지원해 주며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도 이뤄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에 털어놓게 된 겁니다.”

미투 운동의 본질이 단순 성폭력 사건과 달리 “이른바 ‘갑을관계’라고 불리는 권력이 개입돼 있다”는 점이라고 최 회장은 강조했다. 대개 교수와 학생, 조직의 상사와 부하 직원 사이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피해자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여성문제로 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권력에 의한 범죄이므로 인권의 문제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최 회장은 설명했다.

“위계에 의한 간음 등은 권력을 이용해 성을 도구화한다는 점에서 죄질이 가장 나쁜 범죄 중 하나예요. 최근 직장 상사의 성관계 요구를 거절했다가 인사 보복과 왕따를 당해 하루하루가 고통이라는 상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식의 성폭력은 피해자의 일상을 망가뜨린다는 점에서 반드시 해결돼야 합니다.”

최 회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최 회장은 음지에서 더 심각한 피해로 번졌던 성폭력 문제들을 수면 위로 끄집어 올렸다는 점에서 미투 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덮고 넘어간다면 피해는 계속해서 반복되고, 더 큰 성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미투 운동은 피해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신의 행동과 사회 분위기, 성폭력 사건에 대한 인식들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점도 최 회장에게는 고무적인 지점이다. 그는 “직장 내 성폭력을 저지르는 사람 중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사회 분위기 때문에 잘못된 행동이라고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어떤 행동과 말이 잘못됐는지를 다시 한 번 알리고 인식을 변화시켜야만 성폭력 문제를 뿌리 뽑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미투 운동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부분은 피해자에 대한 보호라고 지적했다. 피해 사실을 알리는 과정에서 신상이 노출되는 문제를 최소화해야 하고, 가해자와의 분리가 이뤄져야 하며 선정적인 보도를 자제하는 등의 보호가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으면 피해자들은 다시 문제를 고발하지 못하고 음지로 숨을 수밖에 없다고 최 회장은 설명했다.

사회적으로는 피해자에 대한 법률적, 심리적 지원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나도 법학자이긴 하지만 가정폭력상담소에서 일하면서 법률적 자문으로는 피해자들의 무너진 삶을 회복하는 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다시 사회로 나가고 적응하기 위해서는 심리상담을 병행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미투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데 심리상담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죠.”

최 회장이 인터뷰를 하는 동안 수차례 강조한 내용이다. 여성단체협의회는 ‘전국미투본부’를 설립하고 17개 시도의 여성단체와 협의해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다. 전국미투지원본부에는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 한국여성변호사회 등이 참여해 피해자들이 고소·고발 절차를 진행하는 데 필요한 법률적 자문을 하고 있다. 한국심리학회의 지원으로 심리 상담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줄 예정이다.

최 회장은 미투 운동이 단기적인 폭로에 그치는 데 대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미투 운동에서 제기하는 권력형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식의 변화와 양성평등 문화확산이 필요한데, 이는 단기적으로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적인 캠페인을 진행하는 동시에 기업이나 학교를 대상으로 회사 내 성폭력 문제 발생 시 철저한 조사와 처벌이 필요하다는 교육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기업이나 학교가 성문제를 덮고 넘어가려는 행동들이 피해자들의 고발을 어렵게 하는 주된 요인인 만큼 그들의 인식 변화를 위한 교육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성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도 강력하게 주장했다.

“국내 판례에서 형법상 강간죄 구성 요건인 폭행과 협박을 ‘피해자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반항이 현저히 곤란한 정도’로 판단하는 경향이 크고, 강제성을 피해자가 입증해야 합니다. 캐나다의 경우 성폭력 구성 요소를 ‘합의의 부재’로 판단하고 있어요. 또 영국은 당사자 간 명백한 동의를 우선적으로 고려해 협박이나 폭행이 없더라도 강간죄 처벌이 가능하게 돼 있습니다.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는 성관계는 성폭행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투 운동도 피해자의 폭로에 그치는 게 아니라 현재 제기되고 있는 문제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처벌이 뒤따라야만 합니다. 피해 사실을 폭로했음에도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는 무력감만 남을 뿐입니다.”

최 회장은 미투 운동으로 성폭력 문제에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다른 부분에서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여성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유리천장 문제와 노동현장에서의 여성 차별을 대표적 과제로 꼽았다. 실제 2016년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민간을 포함한 여성관리직 비율’에 의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여성관리직 비율은 37.1%였는데 한국은 10.5%에 불과했다. 또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컸다. 이를 시간으로 환산하면 우리나라 여성은 8시간 근무 중 오후 3시 4분까지만 임금을 받고 일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최 회장은 “민간기업의 경우 10대 그룹 여성임원 비율이 2.4%로 선진국의 10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해 공공기관보다 심각한 수준”이라며 “임금격차 문제 역시 여성의 고용 불안정, 경력단절, 유리천장 등 모든 문제를 함축시키고 있는 만큼 해결이 시급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다양한 여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사회적 활동이 극단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설명한다. 일부 페미니즘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남자를 비난하며 성(性) 대결로 프레임을 잡을 경우 오히려 혐오문화만 부추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여성들만 잘사는 사회가 아니라 함께 잘사는 사회를 이뤄야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일부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남자보다 여자가 우월하다거나 남자는 필요 없는 존재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생각들은 오히려 여성 운동을 방해할 뿐이에요. 여성 문제 해결은 여성이 남성과 공존하며 어떻게 잘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움직임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최 회장은 연장선상에서 “페미니즘 운동의 궁극적인 목적은 여성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페미니즘 운동은 정의하기가 매우 어려운 부분이지만 결국 여성 정책의 방향성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며 “페미니즘 운동이 여성 차별적인 현실을 환기하고 사람들을 자성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지만 거기서 그치지 말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도 함께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민법을 전공한 최 회장은 40여 년 동안 여성을 위한 활동을 해오면서 법 제도의 변화를 이끌어 냈을 때마다 큰 보람을 느꼈다고 전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자문위원으로 활동할 당시에는 윤락행위 방지법을 성매매 특별법으로 개정하는 데 앞장섰다. 윤락행위라는 단어가 이미 여성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는 개념을 내포하고 있어 객관적인 단어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호주제 폐지, 상속에서의 남녀 차별 금지 등 여러 가지 법률을 만들어내는 데도 힘을 보탰다. 최 회장은 “과거에 비해 여성의 인권이 신장됐다고 느끼는 가장 큰 부분이 법률에서 여성의 위상이 변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며 “법률상 여성의 위치가 문제 해결을 위한 뼈대라고 본다면 거기에 살을 붙여나가는 활동들을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앞으로도 여성을 위한 정책과 사회 활동에 앞장서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현실에서 여전히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차별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목표의식 때문이다. 그는 “가정폭력상담소에서 일할 때 여성들이 겪는 아픔과 현실을 개선해야겠다는 생각에서 관심을 갖게 됐고, 그 다짐을 실천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며 “당분간 미투 운동 확산과 피해자 지원에 몰두하겠지만, 운동이 정착된 후에도 무슨 일이든 여성을 위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윤명진 기자 jinieyo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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