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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김종호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8년 03월 21일(水)
권력형 性폭력과 ‘惡의 평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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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위원

유대인 대학살 지휘한 戰犯도
너무나 평범한 사람으로 비쳐
순진한 척에 속았다는 견해도

性폭력 혐의자들 類似 개연성
측은해 보이도록 리허설까지
‘二重 위선’ 속임수 직시해야


우월적 지위 등을 악용한 권력형 성(性)폭력을 ‘나도 당했다’고 폭로하는 ‘미투(Me Too)운동’이 거의 모든 분야로 확산하면서, 일각에선 가해자를 감싸는 해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성폭력의 구체적 행위·장소·시기 등을 밝힌 실명(實名) 폭로를 두고도 피해자를 가해자로 몰기까지 한다. 어느 교수가 지난 17일 스스로 목숨을 끊자, 일부 네티즌은 ‘용서를 구할 수 없도록 코너로 몰아서 죽이는 것이 미투라면, 피해자들 또한 살인자나 다름없다’ 운운하며 그의 성추행을 폭로한 여학생들을 공격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미투 현상을 발본색원하려면 여성을 군대에 보내야 한다’는 유(類)의 어이없는 주장이 적지 않았다.

탤런트 조민기가 지난 9일 자살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실명 폭로한 여자 탤런트의 페이스북에 ‘미투운동으로 배우를 죽인 살인자이니 죄책감을 가져라’ 등 악성 댓글이 줄을 이었다. 평소에 가해자가 자신이 파렴치한(破廉恥漢)으로 비치지 않도록, 건전하고 평범한 사람으로 위장해온 것도 주요 배경의 하나일 수 있다. 실제로 성폭력 가해자 상당수는 자신의 행위가 성폭력이라는 기본 인식부터 없는 것으로 보인다. 고소·고발된 혐의자들에 대해선 수사와 재판 결과에 따라 폭로 내용의 사실 여부와 유무죄가 가려지겠지만, 모든 권력형 성폭력은 해나 아렌트(1906∼1975)가 제기한 개념 ‘악(惡)의 평범성’과 함께 그에 대한 비판론도 떠올리게 한다. 독일 출신 유대인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철학자였던 그녀는 유대인 대학살을 지휘한 반인륜의 흉악한 나치 전범(戰犯) 아돌프 아이히만(1906∼1962)에 대한 세기적 재판이 열리자, 잡지 ‘뉴요커’ 기자 신분으로 전체 과정을 직접 참관했다. 그가 관찰하고 분석한 내용을 시리즈로 보도한 뒤에 일부 보완하고 이론화해 1963년 펴낸 책이 세계의 주목을 받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체포됐으나 탈출한 아이히만은 위조 여권으로 아르헨티나에 숨어들어, 가명 리카르도 클레멘트로 생활하다 오랜 기간에 걸쳐 끈질기게 추적한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1960년 5월 1일 붙잡혀 이스라엘로 압송됐다. 아렌트는 15가지 죄목으로 법정에 선 그가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되기까지 지켜봤다. 아렌트의 눈에 그는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이었다. 다만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 사람’이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은 악마가 아니라 진정한 사유(思惟)의 능력이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이렇게도 묘사한다. ‘그는 아주 근면한 인간이다. 이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다.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분석을 두고 ‘순진한 아렌트가 비열하면서도 순진한 척하는 아이히만에게 속았다’고 비판하는 학자도 적지 않다. 작금의 한국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논란도 이와 유사할 개연성이 없지 않다. 문화예술계나 공직 사회에서 깨끗하고 신선한 이미지로 지지와 기대를 크게 받거나, 교육계에서 제자들의 미래를 좌우하는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뒤로는 추악한 성폭력을 일삼은 것으로 폭로된 장본인들이 보이는 인식과 행태는 대체로 닮았다. “미안하다, 사과한다”면서도 성관계가 ‘강제 아닌 합의였다고 생각한다’거나, ‘지금 기준으로 잘못이라고 한다면 인정한다’는 식이다. 심지어 17명으로부터 고소당한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은 자신을 측은하게 보이도록 연출하는 기자회견 리허설까지 했다는 현장 목격자 증언이 나오자, “우리가 어떤 일을 당할 때는 최선을 다해 준비한다. 준비 과정을 ‘리허설’ ‘연습’ 등으로 (증언자가)왜곡되게 말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는 피해자가 몇 명인지 모르겠다며, 미소를 짓기도 했다.

물론 억울한 경우도 있을 순 있다. 하지만 무고죄(誣告罪) 처벌을 무릅쓰는 여성은 극히 드물 것이다. 피해자에게 성적 수치심과 모멸감을 안겨 씻기 어려운 상처를 주는 차원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 자체를 짓밟는 범죄인 성폭력은 누구도, 어떤 분야에서도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기 위해 ‘악의 평범성’과 함께, 이중 위선(僞善)의 속임수도 직시해야 할 때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고 여기는 건 예외 없이 헛된 기대임을 민관(民官) 모두 지속적으로 분명하게 보여줘야 하는 것도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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