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김어준類 미투 음모론의 陰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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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동 사회부 부장

어느 사건을 전후해 사회문화상이 확 달라지는 역사적 결절점이 있는데, 훗날 2018년은 한국에서 ‘미투(Me Too)’ 운동이 시작된 해로 기억될 것이다. 서지현 검사가 지른 미투의 불길은 문학, 연극, 영화 등 문화예술계를 거쳐 종교계, 대학가, 정치계로 번져가면서 직장, 학교, 사회에서의 권력관계에 의한 일상화된 성폭력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들불처럼 번져가던 미투 운동 와중에 배우 조민기와 한국외국어대 교수가 자살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이에 자신이 당한 일을 폭로한 피해자를 ‘가해자’로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성폭력 정도가 심하거나 정치하지 않은 미투는 자제돼야 한다는 주장도 일부 제기되고 있다. 물론 피해의식이 많이 작용한 주관적이고 과장된 폭로도 있을 수 있으나 대부분의 미투는 고소를 통한 사법적 처벌이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의 모든 것이 까발려지고, 인터넷상 린치를 당할 위험을 각오하고 이뤄진다. 따라서 피해자에 대한 악성 비난 댓글이나 신상털기 등 2차 가해는 심각한 인권침해에 더해 피해자들이 미투에 동참하는 걸 주저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대단히 악의적이다.

미투에 대한 백래시(backlash·반격) 중 최고로 질이 나쁜 건 단연 음모론이다. 공교롭게 음모론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이가 더불어민주당에 가깝고 ‘친노친문’ 인사로 분류되는 김어준 씨다. 개인 팟캐스트 운영은 물론 교통방송, SBS 등에도 출연하는 유명인인 그는 서지현 검사 폭로 이후 고은 시인, 이윤택 연극연출가 등으로 미투 불길이 번지자 공작설을 제기했다. 김 씨는 지난달 24일 팟캐스트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서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섹스는 주목도 높은 좋은 소재이고 진보적인 가치가 있다. 그러면 피해자들을 좀 준비해 진보 매체에 등장시키고, 문재인 정부의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로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문제적 발언에 대한 파문이 커지고 진보 진영 내에서도 비판이 제기되자 그는 실언을 사과하지 않고 ‘미투 폭로가 공작이라는 게 아니라 폭로된 미투를 이용하는 세력이 나올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일 뿐’이라는 취지로 변명했다. 민주당 전·현 의원은 ‘김어준 비판’을 ‘난독증’이라고 공격했지만, 그냥 읽어봐도 미투 폭로를 공작이라고 주장한 게 맞는다. 주춤하는 듯하던 그는 지난 9일 다시 “안희정에서 봉도사까지, 이명박 각하가 막 사라지고 있다”며 공작설을 이어갔다. 우파나 보수 진영의 누군가가 이명박 전 대통령 언론 보도를 지우기 위해 안희정 충남지사 여비서와 정봉주 전 의원에게 피해를 당했다는 여기자를 미리 찾아내고 설득해 JTBC, 프레시안과 인터뷰를 하게 했다는 이런 억지 주장을 김 씨 자신이 믿기는 할까. 같은 정파와 ‘절친’을 보호하기 위한 욕심이 이성을 가린 때문으로 보인다.

타깃에 딱 들어맞는 피해자를 찾아내 타이밍을 맞춰 폭로하도록 기획한다는 기상천외한 음모론은 아직은 한참 더 계속돼야 할 미투에 독극물을 타는 것과 다름없고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켜 두 번 죽이는 격이다. 김어준 씨가 여자의 아들, 여자의 남편, 여자의 아빠 중 어느 하나라도 해당한다면 음모론 주장을 이제라도 사과하는 게 맞지 싶다. 하지만 그가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sdg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