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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오피니언] 시론-박민 부국장 겸 정치부장 게재 일자 : 2018년 03월 23일(金)
문재인 ‘일괄 타결’ 구상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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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 정치부장

30년 비핵화회담 실패 반복
반대급부-비핵화 맞바꾸는
전략적 오류에서 비롯된 것

대화나 협상 서두르지 말고
핵폐기 이행 시한 명시하고
사찰 등 핵심부터 합의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북핵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의 중재자를 넘어 해결사를 자임하고 나섰다. 평창동계올림픽과 남북한 특사 교환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과 미·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여세를 몰아 남·북·미 3국 정상이 한자리에 모여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미·북 관계 정상화와 남북관계 발전, 경제협력 등을 일괄 매듭짓겠다는 것이다.

과거 북핵 협상에서 북한이 단계별 반대급부만 취하고 핵심적 비핵화 조치의 이행은 거부한 것을 감안하면 형식상 전례 없고 담대한 구상이다. 그러나 여전히 김정은 정권과 북핵 문제의 본질, 새로운 상황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1989년 북핵 문제가 불거진 이후 30년간 국제사회의 비핵화 시도는 실패를 거듭했다. 그 과정에서 확인된 교훈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전략적 결단을 내릴 가능성은 거의 없고 따라서 반대급부 제공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추구하는 잘못된 사고와 전략적 오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김 씨 정권은 권력 세습과 폐쇄체제 유지를 위해 핵·경제 병진 노선을 선택했다. 체제 안전 보장이나 경제협력을 위해 핵무장을 포기하는 것은 스스로 존립 근거를 허무는 것이다. 결국, 강력하고 촘촘한 제재를 통해 핵무장을 추구·유지하는 것 자체가 곧 체제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을 내리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구상은 일괄 타결이란 형식적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평화협정, 미·북 관계 정상화, 3국 간 경제협력 등의 반대급부와 북한의 비핵화를 맞바꾸는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핵무장 완성을 주장한 김정은이 갑자기 비핵화 대화에 나선 것에 대해서도 보다 냉철한 분석이 필요하다. 김정은은 권력 승계 이후 6년여 동안 4차례의 핵실험을 강행했고 최소 65차례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2014년에는 개헌을 통해 전문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하기도 했다. 전대에 비해 핵무장에 더욱 열중하던 김정은의 변화 원인은 세 가지로 추정할 수 있다. 첫째는 핵무장 완성에 따른 자신감을 바탕으로 ‘핵 있는 평화공세’ 전략을 구사함으로써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대북 제재를 해소하려는 경우고, 둘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와 미국의 독자제재로 체제 유지에 심각한 위협을 느낀 경우고, 셋째는 핵이나 미사일 개발이 기술적 한계에 부딪혀 시간이 필요하거나 핵무장 노선의 근본적인 수정이 필요한 경우다. 첫 번째 경우는 북한이 굳이 한국을 중재자로 내세워 미국과 대화를 시도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가능성이 낮다. 두 번째, 세 번째는 북한이 궁지에 몰린 경우로 현 상황을 유지만 하더라도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하는 전략적 선택을 할 수 있다. 결국, 지금 이 시점에서 섣불리 일괄타결 등을 통해 상황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어렵게 찾아온 북핵 문제 해결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 것일 수 있다.

정상회담을 통한 문제 해결은 그 속성상 선언적 합의를 통해 틀을 만든 뒤 실무적 작업이 뒤따르는 방식이 된다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비핵화의 핵심은 ‘합의’가 아니라 비핵화 조치의 ‘이행’에 있다. 특히 반대급부로 제시될 수 있는 대북 제재 해제나 평화협정 체결, 미·북 관계 정상화 등은 합의와 동시에 이행이 가능하지만 비핵화는 동결, 신고, 검증, 해체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만큼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특히 비핵화의 불가역적 단계로 진입하는 핵심 단계지만 북한이 한 번도 수용하지 않았던 불시사찰이나 본격적 불가역 단계인 해체에는 더욱 오랜 시간과 사후 관리가 요구된다. 이 같은 타임렉(시차)으로 인해 문 대통령의 구상은 ‘일괄타결’을 지향하지만 결국 비핵화 조치의 이행 문제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은 향후 정상회담과 실무협의 과정에서 세 가지를 유념해야 한다. 첫째, 시간은 북한 편이 아닌 만큼 대화나 협상을 서둘러서는 안 된다. 둘째, 비핵화 협상의 시차를 감안해 핵 폐기의 시간을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반대급부는 이행을 확인한 뒤 지급하는 합의안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초기에 성과를 내기 위해 동결과 같이 상대적으로 쉬운 조치부터 합의하는 단계적 협상 유혹에서 벗어나 불시사찰, 핵 폐기와 같은 핵심 단계로 바로 진입해야 한다. 핵 폐기는 북한의 의지 문제인 만큼 초기 단계에서 핵 폐기 합의가 불가능하면 후속 단계도 담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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