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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효정의 에로틱 시네마 게재 일자 : 2018년 03월 27일(火)
사관후보생, 시골처녀와 사랑· 이별 그리고 재회의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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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관과 신사’

소년이 남자가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수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기록하듯이 처음으로 여자를 경험하는 순간, 그는 마법처럼 남자로 진화하는 것일까. 테일러 핵퍼드 감독의 1982년 작 ‘사관과 신사’(사진)는 기구한 팔자를 타고난 청년 잭(리처드 기어)이 사관에서 신사로 거듭나는 과정을 통해 한 남자의 성장을 관조한다.

자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엄마 때문에 군인 아버지가 살고 있던 필리핀으로 ‘강제 이민’을 가게 된 잭의 유년기는 불행했다. 어딜 가나 백인 소년은 눈엣가시였고 동네 양아치들의 표적이 되거나 창녀들의 호구가 되는 것이 그의 일상이었다. 군인 아버지 때문에 유년의 하루하루를 지옥처럼 보냈다고 생각했던 잭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미국으로 돌아와 해군에 자원 입대한다. 아버지를 향한 분노와 운명의 멍에, 그 모호한 경계에서 그는 한 치의 미련도 없이 속세를 떠난다.

훈련소 생활은 여태껏 살아왔던 지옥보다 훨씬 더 끔찍한 지옥이다. 매 순간 체력의 한계와 싸워내야 할 뿐 아니라 탈락자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하루 종일 사관 후보생들을 괴롭히는 폴리(루이스 고셋 주니어) 하사까지 잭은 인내에 인내를 보태 자신을 지탱한다.

생지옥의 한 달이 지나고 생도들을 위해 열린 지역 댄스 파티에서 잭은 훈련소 인근에 사는 동네 처녀 폴라(데브라 윙거)를 만난다. 출중한 외모를 지닌 서로에게 이미 반해버렸지만 가난한 처녀들이 사관 후보생들을 유혹해 일부러 임신한 후 결혼한다는 소문을 들은 잭은 폴라도 그들 중 한 명일 거라고 치부한다. 폴라도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잭에게 “난 직업도, 꿈도 있다”며 쏘아붙인다.

엇갈린 첫 단추도 눈이 뒤집힌(?) 선남선녀의 앞길을 막지는 못한다. 일찍 여읜 어머니의 부재를 섹스 중독 아버지의 방탕한 위로로 채워왔던 잭과 가난과 권태로부터 탈출할 날만을 기다렸던 폴라의 만남은 호르몬적 욕구를 넘어서는, 반쪽 영혼들의 결합이다. 잭이 훈련소를 나올 때마다 이들은 폴라의 공간에서 사랑을 나눈다. 초라한 트레일러 안은 이들이 서로를 감고 있을 때, 웃음과 환희가 번지는 둥지가 된다. 1인치도 떨어지고 싶지 않은 남녀는 주말마다 서로의 숨을 더 들이마시지 못해 안달이다.

그럼에도 잭은 안착하기 힘든 남자다. 평생을 외톨이로 살아온 잭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과의 결혼과 아이를 꿈꾸는 폴라가 부담스럽다. 그의 마음 곳곳을 병들게 했던 외로움이 결국은 운명처럼 찾아온 사랑까지도 밀어내는 것이다. 잭은 잠적해 버리고, 폴라는 그렇게도 증오하는 공장 일에 전념하며 이별의 그림자를 애써 지운다.

동네에서 때때로 마주치지만 이들의 관계는 예전 같지 않다. 잭은 여전히 사랑과 익숙해진 외로움 사이를 저울질하며 고뇌하고 폴라는 그런 잭이 답답하기만 하다. 12주의 훈련이 끝나면서 잭은 꿈꾸던 파일럿이 된다. 졸업생들이 던진 모자가 하늘을 가르고 사관이 된 생도들과 부모들의 눈물이 유니폼을 적시지만 잭은 여전히 혼자다. 그 순간 잭은 오직 한 사람만을 떠올린다. 누구보다 잭이 꿈을 이루길 바랐던 한 사람. 눈부시게 하얀 사관복을 입은 잭은 폴라가 일하는 제지공장으로 한숨에 달려가 폴라의 뒷덜미에 입을 맞춘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폴라가 잭의 목에 매달려 키스 세례를 퍼붓자, 공장에 있던 여자 동료들은 질투 어린 박수를 보낸다.

상투적이기로 보면 손가락에 꼽을 만한 엔딩을 펼친 영화지만 남녀 주인공의 멋진 퇴장을 장식하는 조 카커와 제니퍼 원스가 부른 명곡 ‘업 웨어 위 빌롱(Up where we belong)’은 그 어떤 구태의연한 것도 눈을 감아주고 싶게끔 한다.

흰 제복이 피부처럼 잘 어울렸던 리처드 기어의 마지막 퇴장 장면도 찡하지만 그보다 더 아련한 것은 1980년대를 풍미했던 여배우 데브라 윙거의 환한 미소다. 잭의 품에 안겨 그의 모자를 얹어 쓰는 윙거의 모습은 사관의 가슴도, 신사의 마음도 요동치게 한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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