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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이용식 논설주간 게재 일자 : 2018년 04월 02일(月)
차라리 내각제가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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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 논설주간

대통령 퇴임이 곧 정치적 死藏
개인 불행과 별도로 국가 손실
與野 대책은 모두 개악성 땜질

논외로 했던 내각제 재론 필요
改憲 졸속으로 추진해선 안 돼
주고받기式은 모두 망치는 길


노인 한 사람이 스러지는 것은 오래된 도서관 하나가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 그만큼 개인 경험과 경륜의 사장(死藏)은 사회적·국가적 손실이다. 대통령 퇴임이 곧 ‘정치적 식물인간’이나 감옥행을 의미하는 사태는 바람직하지 않다. 범죄에 상응한 처벌은 불가피하지만, 이와 별개로 ‘국가적 축적’이 사라지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축적이 없으면 국가도 개인도 미래가 없다.

이런 비극 시리즈가 제왕적 대통령제 탓이라는 문제의식이 개헌 동력을 높였다. 차제에 문재인 대통령은 헌법을 ‘진보적 색채’로 덧칠하는 개헌안을 발의했다. 대통령 안이 6·13 선거와 함께 국민투표에 부쳐질 가능성은 없지만, 현 정권의 이념적 의도와 선거 전략, 야당 자포자기가 겹쳐 졸속으로 중요 합의가 덜컥 이뤄져서도 안 된다.

원점에서 차분하게 다시 생각할 때다. 권력구조 ‘원 포인트 개헌’에 국한해도 현재의 여야 대안은 문제가 많다. 대통령 안은, 대통령 권한을 다소 이양하지만 4년 연임이라는 권한 강화 요인을 담고 있다. 야당 안은 더 심각하다. 국회에서 선출된 ‘정치실세 총리’와, 국민 직접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의 헌법적·정치적 대충돌이 불가피하다. 개악 우려가 큰 땜질일 뿐이다. 정권 교체에 따른 인적·정책적 청산의 진폭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통령들의 불행을 넘어 국가는 퇴행할 수밖에 없다. 국가 시스템 혁신을 위한 진정성이 있다면, 이제라도 내각제까지 포함해 솔직하고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 뒷북치는 식의 무의미한 일이 아니다.

첫째, 내각제는 많은 전문가와 국회의원들이 지지함에도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국회의원들에 대한 국민 불신이 극심한 데다 ‘제2공화국 실패’의 기억, 1987년 민주화 시기 ‘직선제〓절대 선’ 인식 때문이다. 보수 진영은 북한 위협에 맞서고, 국가 효율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대통령제를 선호했다. 이제 정치 불신만 제외하면 대통령제에 집착할 이유가 없어졌다. 사법부와 검찰·경찰 등 법 집행기관이 정치권력 일탈을 감시할 장치만 제대로 갖추면 된다. 정치인 자질을 걱정하지만, 역으로 내각제는 ‘정치지도자를 키우는 학교’다. 선진국 중 순수 대통령제 국가는 사실상 미국뿐이고, 다른 나라에서 악용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래서 미국의 최악 수출품으로 불린다.

둘째, 헌정사적으로 보더라도 내각제가 우선이었다. 제헌 헌법은 원래 내각제로 설계됐다. 당시 헌법기초위원회는 내각제를 만장일치로 채택했으나(유진오 안), 이승만 제헌 국회의장 반대로 몇 조항만 고쳐 대통령을 옥상옥으로 얹었다(김준연 안). 그러다 보니, 대통령도 국회에서 선출하고, 국무총리 역시 국회 승인을 받아야 했으며, 국정의 최고 기구는 대통령과 국무위원이 참여하는 합의체 기구인 ‘국무원’이었다. 이런 밑그림이 훗날 권력자 의도에 따라 거듭 왜곡되면서 기형(奇形)이 되고 말았다. 4·19 뒤 민주당 정권이 ‘제왕적 이승만 대통령’ 폐해를 척결하기 위해 내각제를 채택했지만 정착도 되기 전에 5·16으로 좌절됐다. 그 민주당을 계승한다는 현 정권이 이승만·박정희 헌법관을 더 존중하니, 아이러니다.

셋째, 여야 논의대로 개헌이 이뤄지면 제왕적 대통령의 단점은 남고, 국정의 상대적 안정이라는 장점은 사라지게 된다. 내각제가 불안하긴 하지만 모든 대통령이 실패하고 국정 축적도 부정되는 현 체제보다 더 나쁠 순 없다. 독일처럼 후임 총리 선출을 선행하는 방식 등을 도입하면 정정 불안도 막을 수 있다. 대통령제를 하려면 미국처럼 ‘책임대통령-책임장관’의 정통 시스템이 낫다. 넷째, 통일 대비 차원에서도 내각제와 양원제를 검토할 때가 됐다. 서독 기본법이 그대로 통일헌법이 된 비결을 배워야 한다.

법률 개정에도 몇 년씩 걸리는 경우가 허다한데, 개헌을 이런 식으로 밀어붙여선 안 된다. 절대로 피해야 할 것이 ‘주고받기’ 협상이다. 헌법 조항은 하나하나가 절대 조항이다. 여기서 빼는 대신 저기에 보태는 식이 되면 모두 망가진다. 더 근본적으로, 개헌보다 운용이 더 중요하다. 일본은 미국 점령기에 만들어진 헌법을 한 자도 고치지 않고 다시 대국으로 일어섰다. 지금은 개헌 적기(適期)도 아니다. 압도적 공감대와 절박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오해가 있다면 설득해야 하고, 오류는 바로잡아야 한다. 그것이 정치지도자와 전문가들의 존재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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