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정은 宥和(유화) 총공세와 성급한 文정부 ‘20개 對北 사업’

국가 체제는 쉽게 바뀌지 않고, 바뀔 수도 없다. 다만 필요에 따라 때로는 늑대의 얼굴, 때로는 양의 얼굴을 할 뿐이다. 독재자의 말 한마디로 움직일 수 있다면, 더욱 현란한 표변이 가능하다. 지금 북한 전술이 바로 이런 경우다. 한국과 미국을 향해 핵전쟁을 위협하던 태도는 온데간데없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지난 1일 평양 동평양대극장을 방문, 남측 예술단 공연을 관람한 뒤 걸 그룹 레드 벨벳 이름을 거명하는 등 여유를 보였다. 천안함 폭침 주범으로 지목된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은 김정은의 예고 없는 관람으로 인해 남측 취재진의 공연장 입장이 제한된 데 대해 사과까지 했다. 오는 27일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유화(宥和) 총공세로 문재인 정부를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노림수는 자명하다. 북핵 봉쇄망의 약한 고리인 문 정부를 흔들어 사실상 유엔 제재를 무력화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문 정부 내부에선 이를 경계하긴커녕 맞장구 치려는 조짐이 역력하다. 문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특보인 문정인 교수는 지난달 31일 일본에서 “2007년 남북정상선언에서 합의한 48개 사업 중 최소 20개는 유엔 결의와 상관없이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문 정부는 이미 내부적으로 법리적 검토를 거쳐 20개 사업은 이행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냈음이 여기저기서 확인되고 있다. 게다가 문 특보 발언이 대개 일정 시간 뒤 들어 맞았고, 대북 정책의 방향타로 자리 잡았다. 따라서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해 농업, 보건의료, 교육, 체육, 인도적 사업, 문화재 발굴, 재난에 대한 상부상조 등 유엔 제재를 우회하는 사업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더 심각한 문제는 중국도 제재 완화에 나서려는 조짐이 있다는 사실이다. 북·중 정상회담을 전후해 중국 기업들이 북한 근로자 송환을 중단했고, 북한을 오가는 중국 트럭도 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제재의 실효성은 한국과 중국에 달려 있는데, 양국 기류는 ‘북핵 최대 압박’을 위협한다. 김정은이 대화에 나선 것은, 제재 효과를 반증한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모든 것이 부족해 생존이 위협되는 상황”이라고 자인한 바 있다. 마크 내퍼 주한미대사대리는 2일 “우리 목표는 완벽한 북핵폐기”라면서 “CVID 원칙은 협상 불가”라고 재확인했다. 김정은의 감성적 접근에 휘둘려 이성의 줄을 놓아선 안 된다. 아직 어떤 실질적 변화도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