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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평 게재 일자 : 2018년 04월 05일(木)
‘核동결→불능화→폐기’ 단계론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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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

한반도 ‘그레이트 게임’개막
美, 핵·ICBM 위협 용납 못해
김정은, 韓·中 끌어들여 대항

트럼프 美·北 회담 의도 안갯속
단계별 보상 주는 이란式 반대
‘단기간에 核폐기’가 한반도式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지난달 25∼28일 중국을 전격 방문해 북·중 동맹 관계를 단숨에 복원시키고, 한반도를 둘러싼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에 중국을 다시 끌어들였다. 돌이켜보면, 최근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된 그레이트 게임은 김정은에 의해 촉발, 전개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6년 동안 한국이나 미국은 물론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엄중한 경고와 제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중적으로 핵과 미사일 개발에 총력을 경주, 2017년에는 6차 핵실험에 이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성공했다. 미국에 대한 북한의 핵 공격 위협이 더 이상 허풍이 아니고 아주 조만간(very soon) 현실화될 수 있는 위협이란 점을 입증했다. 이렇게 되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미국에 대한 실질적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제거하기 위한 ‘최대한도의 압박’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북한에 대해 전례 없이 강력한 제재와 함께 군사행동도 불사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처럼 한반도 위기가 최고조로 치닫게 되자 문재인 대통령은 ‘전쟁만은 안 된다’면서 대화와 협상을 통한 위기 해결을 주장했다. 특히,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의 개선과 한반도 비핵화, 그리고 평화 정착의 길을 찾아보자고 호소했다. 이런 문 대통령의 호소를 철저히 무시하던 김정은은 갑자기 올해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을 ‘민족적 대사’라고 치켜세우면서 “민족의 존엄과 기상을 내외에 떨치기 위해서도 동결상태인 북남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남북 고위급회담이 재개되고 남북한 특사단이 왕래하면서 4월 남북 정상회담에 전격 합의했다. 그뿐만 아니라, 김정은은 한국 정부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전하고, 핵·미사일 실험 자제도 확인해 5월 미·북 정상회담 약속까지 받아냈다. 북한 지도자로선 처음으로 미국 현직 대통령과 대등한 입장에서 협상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고, 북한과 미국이 주도하고 한·중이 보조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그레이트 게임 구도를 구축할 수 있었다.

김정은의 게임 구도에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의도로 응했는지 아직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정상회담에 합의하고서도 북한 핵에 대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불가역적 폐기(CVID)’ 원칙은 타협할 수 없는 것이고, 북한이 행동으로 먼저 핵 폐기를 실천하는 이른바 리비아식 해결 방식을 수용할 때까지 ‘최대한도의 압박’을 늦출 수 없다고 공언하면서 한국과 중국에 대해서도 북한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방침에 대응하기 위해 김정은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과 전격 정상회담에 나섰고, ‘평화를 위한 점진적-동시적 조치’를 제안했다. 중국이 주장해 온 쌍중단(雙中斷, 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군사훈련 중단)과 쌍궤병행(雙軌竝行, 한반도 비핵화와 미·북 평화협정 병행 협상) 및 문 정부가 언급한 ‘핵 동결-폐기’의 단계적 해법과 같은 궤도에서 한반도 비핵화에 합의할 가능성을 시사함으로써 미국을 고립시키고 압박하려 한다.

그런데 김정은이 말하는 점진적-동시적 비핵화 방안에는 ‘핵(核) 동결-불능화-폐기’로 이어지면서 단계마다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는 이란식 해법과 마찬가지의 위험성이 있다. 즉, 핵 동결에서 비핵화까지 전체 과정이 너무 길고, 그 과정에서 언제든지 보상만 챙기고 핵무장을 재개할 수 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이고 우리도 수용하기 힘든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리비아식 해법을 고집하는 미국과 이란식 해법을 선호하는 북한이 어떻게 대타협의 길을 찾아낼 것인지에 달려 있다. 미국과 북한이 서로 대립할 수밖에 없는 협상 과정에서 한·중의 역할은 외교적 창의력을 동원해 리비아식도, 이란식도 아닌 한반도식(式) 비핵화 방안을 찾아내는 데 있다. 그것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에 대한 포괄적 합의를 바탕으로 비핵화 과정을 단기간으로 설정하고, 구체적 행동 대 행동의 실천 방안을 적시한 북핵 폐기 로드맵을 마련해 남북한과 미·중의 4개국 정상회담에서 일괄 타결함으로써 한반도 비핵화의 새 시대를 열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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