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삼성 핵심機密 공개하겠다는 고용부, 누굴 위한 건가

고용노동부가 산재(産災) 피해 입증을 이유로 아산 탕정 삼성디스플레이 공장과 화성·기흥·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 측정보고서를 공개하기로 결정하면서 기밀(機密) 유출이 우려된다. 측정보고서는 고용부와 안전보건공단 등이 작성한 것으로, 작업장 구조·장비·공정 등도 담겼다.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가 공개를 막아달라며 행정 심판·소송을 제기한 것은 불가피한 대응이다.

보고서를 공개하라는 시민단체 등의 요구에 고용부는 그동안 기업 영업비밀이라며 반대해왔다. 그러나 지난 2월 대전고법이 백혈병 사망사고가 난 삼성전자 온양공장에 대한 정보 공개를 결정한 후 급선회했다. 고용부는 법원 판결과 무관한 공장들까지 자의적으로 포함시켜 문제를 키웠다. 온양공장은 생산된 반도체를 재가공·포장하는 후(後)공정 라인이다. 하지만 반도체를 직접 만드는 화성 공장 등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최적화한 생산기술 노하우가 집약된 곳이다. 반도체는 공정 자체가 기밀이다. 공정 흐름도, 생산설비 구성, 장비의 역할, 재료 투입량 등이 고스란히 담긴 측정보고서는 대외비로 관리돼 왔다. 디스플레이 역시 장비 배치와 재료 배합을 뜻하는 ‘레시피’가 승부를 가른다. 반도체 굴기를 천명한 중국이나 미국·일본의 경쟁사들엔 파편적 정보도 핵심기밀을 유추할 단서가 된다. 기업 영업기밀 보호는 시장경제의 기본이다. 산업스파이를 잡아야 할 정부가 기밀 공개를 주도하고 있으니 기막히다. 고용부의 주무 국장은 삼성전자 백혈병 소송에서 근로자 편에 섰던 변호사다.

반도체·디스플레이는 한국경제를 지탱해온 핵심 성장축이다. 중국 추격세도 무섭다. 이런 상황에서 핵심기밀을 까발리는 건 이적 행위에 가깝다. 고용부 결정이 혹여 문재인 정부 들어 전방위로 진행되는 ‘삼성 때리기’의 일환이라면 더 위험하다. 자본주의 원리, 법 집행 원칙, 국익 모두 외면한 무리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당장 철회하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