適者생존? 協者생존!…인류는 ‘협력하는 창의력’으로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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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에이티브 / 아구스틴 푸엔테스 지음, 박혜원 옮김 / 추수밭

천재·위대한 사상가가 내놓은
고독한 노력의 결과물이 아닌
시공을 초월한 많은 사람들의
협력 결과로 ‘인류 생존’ 가능

돌칼 통한 조직적 사냥이 기원
공동양육·의사소통 등을 통해
하나의 種으로 지속가능케 돼

차세대 위한 창의적 혁신 위해
많은 다양성·실패 경험이 중요

인간은 지구 상에서 어떻게 예외적이고 특별한 존재가 되었는가. 인류 존재의 근원과 출발에 대한 이 물음을 둘러싸고 많은 학자들이 뛰어들었다. 직립 보행이나 도구 사용 혹은 언어의 발명이 거론되기도 했고, 인지·농업혁명을 필두로 인류사의 혁명들이 논의되기도 했다. 인간이 자연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 인간은 그저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 기계에 불과하다는 ‘이기적 유전자’론이 제기되는 한편 인간의 이타심, 생명에 대한 공감이야말로 인류 역사를 가능하게 한 강력한 동인이었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 숱한 설명의 교차로에서 인류학자 아구스틴 푸엔테스 노트르담대 인류학과 교수는 인간이 위대해질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이유로 ‘창의력’을 꼽았다. 흔히 이야기하는 뇌의 크기나 지능이 아니라 무수한 개인들이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능력 덕분에 인류는 하나의 종으로 살아남아 생명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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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이란 생각과 경험, 상상력이 서로 맞닿아 연결된 지점에서 자란다는 저자는 인간의 생각, 경험, 상상력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창의력이 존재한다고 했다. 창의력 하면 떠오르는 예술가의 작업실, 물리학자의 실험실은 기본이고 자동차 정비공의 머릿속, 심지어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월말까지 어떻게 버틸까 궁리하는 직장인의 애달픈 마음에도 창의력이 작동한다. 다만 저자가 말하는 창의력은 한 명의 천재나 특출하고 위대한 사상가의 작업에서 볼 수 있는 ‘고독한 노력’과는 다르다. 인류의 생존을 가능케 한 기적 같은 창의력은 개인이 혼자 만들지도, 또 만들 수도 없는 것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수백, 수천 명, 때론 셀 수 없이 무수히 많은 사람이 협력한 결과를 통해서만 가능한 ‘협력하는 창의력’이라고 했다.

인류학에서는 흔히 인간 창의력의 기원을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벽화를 그렸던 3만 년 전 즈음으로 잡고 있지만 저자는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400만 년 전, 인류의 기원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까지 찾아간다. 현생 인류 몸집의 반도 안 되고 두뇌 용량은 3분의 1이 채 되지 않았던 이 초기 인류가 어떻게 위대한 창의력을 발휘했을까. 저자는 몸이 아닌 외부의 도구, 돌칼에서 창의성 발현의 기원을 봤다. 인류의 조상은 거대한 포식자의 위협에 대비해 재빠르게 먹이를 구하고 지키는 과정에서 돌과 막대기를 크게 고쳐 공동의 무기를 만들어냄으로써 큰 턱과 이빨이 발달된 다른 종족을 앞지를 수 있었다고 했다. 저자는 돌덩이를 들고 완성품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이를 다듬어 예리한 칼날로 바꾸는 행위는, 큰 대리석을 앞에 두고 조금씩 모양을 만들어 가는 조각가의 예술 행위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봤다.

이 같은 도구의 창조에 이어 공동체의 창조, 길들이기의 창조가 일어난다. 조직적으로 사냥하고, 늘어나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공동 양육 체계를 만들면서 협력하고 소통하는 특유의 능력을 키웠고 복잡한 의사소통 방식을 배우며 뇌를 발달시켰다. 또 밀이나 쌀의 씨 크기를 키우고, 늑대를 개로 길들이듯 식물과 동물을 인간에게 이롭게 변형하는 일종의 초기 형태의 유전자 조작인 길들이기에도 나섰다. 이와 함께 종교를 통해 우리 삶과 존재에 의미를 더해 존재적 허무를 넘어서고 동굴 벽화부터 음악, 그림, 춤, 스토리텔링으로 이어진 예술적 창의력 그리고 상상력과 호기심을 바탕으로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학적 창의력의 단계로 나아갔다.

푸엔테스의 이 같은 인류사는 완전히 새로운 해석은 아니다. 하지만 생물학, 고고학, 유전학, 인류학, 뇌과학, 철학 등 관련 학문을 총망라해 ‘협력하는 창의력’을 중심에 두고 포괄적인 인류 진화사를 써내려가는 통합적 작업은 기존에 낱낱이 흩어져 있던 지식과 정보들이 한 줄에 죽 꿰어지는 명쾌한 읽기의 경험을 제공한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살아남기 위한 경쟁과 폭력성이 인간의 본능이라는 통상적 주장, 먼 수렵 채집 시대부터 남성은 사냥, 여성은 육아를 맡았다는 남성과 여성의 고정된 성 역할론 관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선을 긋고 반대 의사를 표한다. 저자는 인간에게 폭력적 본성은 없다며 인간의 폭력성은 오히려 현대에 와서 더 극대화됐다고 말하고, 성역할 역시 인류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또 섹스를 단지 번식을 위한 것으로 이해하는 편협한 의견에 반대하며 우리의 욕구와 문화를 만들고 사회를 바꾸는 창의적 섹슈얼리티의 힘도 역설한다.

저자는 우리는 인류가 함께 이뤄낸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의 끝에 서 있다며, 우리 역시 다음 세대를 위해 창의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그 하나는 다양성이다. 인류 역사의 고비 고비마다 나타난 위대한 창의적 혁신은 더 많은 대안을 상상하고 실천하는 데에서 이뤄졌다며 인간 상상력은 다양한 정보가 입력되고 다양한 경험으로 채워질 때 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전 세계 어디서나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먹는 평평한 세계는 상상력의 최대 적일 수밖에 없다며 우리에게 다양성에 대한 도전에 나서라고 했다. 나머지 하나는 다름아닌 실패다. 뛰어난 과학자와 예술가 집단에 성공한 경험과 실패한 경험 중 어느 쪽이 더 많은지 물어보면 예외 없이 실패의 경험이 더 많다고 대답한다며 우리는 실패를 할 때마다 우울해지거나 좌절하긴 해도 교훈을 얻고 그 덕분에 다른 방식으로 더 나아갈 수 있다고 했다. 실패의 미덕을 통해 인류는 진보할 것이라는 직선적 낙관주의다. 488쪽, 1만85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