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남을녀’의 抗日흔적, 문화재로 되살리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충남 당진시 소난지도 의병총. 소난지도 일대 뱃길을 근거지로 항일 투쟁을 벌였던 의병들이 묻혀 있는 곳이다. 문화재청 제공

- 3·1운동 100주년 앞두고 독립운동 유산 발굴 ‘한창’

충남 당진의 소난지도 ‘의병총’
민초 100여명 전사·자결한 곳
지난해 10월 등록문화재 지정

전남 완도 남단의 당사도 등대
입으로 전하던 항일 기록 찾아
재현 행사 열고 문화재委 심의

“민초들의 처절했던 항일독립운동 기록을 복원한다.”

전남 완도군의 당사도 등대와 충남 당진시의 소난지도 의병총 등 민초들의 항일독립운동 활동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정부는 3·1만세 운동 100주년(2019년)을 앞두고 그동안 잊어진 항일독립유산을 발굴 및 보존하려는 노력을 펼쳐 왔다. 지금까지의 항일독립유산은 대부분 명망가나 의거(義擧) 중심으로 관리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따라서 항일독립운동에 참여한 대부분이 이름 없는 민초들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수많은 갑남을녀의 처절했던 기록들을 발굴·복원하는 것은 뒤늦게나마 다행한 일이다. 소난지도 의병총은 지난해 10월 23일 문화재로 등록(등록문화재 692호)됐고, 당사도 등대는 지역민들이 문화재 등록을 신청해 문화재위원회의 조사와 심의를 앞두고 있다.

전남 완도군 소안도 남단의 당사도는 면적 4.38㎢에 주민 수가 100명이 되지 않는 작은 섬이다. 그러나 제주·부산과 서해를 이어주는 항로에 위치해 지정학적으로 큰 가치를 지녔다. 일제는 일찍이 이를 인지하고, 1909년 1월에 각지에서 수탈한 농산물 등을 일본으로 운반하는 배의 항해를 위해 등대를 건립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제가 식민지 수탈을 위해 세웠다는 전남 완도군 당사도 등대. 당사도 등대 의거를 계기로 완도 일대 항일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기 시작했다. 완도군청 제공

등대가 수탈에 이용된다는 소식을 접한 소안도의 이준화를 비롯, 5명의 의병은 1909년 2월 24일 등대를 습격해 일본인 등대 간수 등 4명을 살해하고, 통신장비 등 주요 시설물을 파괴했다. 이후 일제가 벌인 토벌에서 의병 중 3명이 죽었고, 일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등대 앞에 ‘조난기념비’를 세웠다.

해방 후 인근 주민들이 기념비를 파괴하려 했지만 쉽게 부서지지 않자, 등대 인근에 뒤집어 놓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등대를 둘러싼 항일의병운동 내용은 풍문으로만 떠돌았다.

그러던 중 1990년대 초 등대 인근에서 조난기념비가 발견돼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던 이야기가 사실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1997년에는 조난기념비 인근에 항일전적비를 건립했으며 매년 7월에는 의병들을 기리기 위한 재현행사도 열고 있다.

충남 당진시의 소난지도 역시 5.08㎢의 면적에 주민 수가 200명이 조금 넘는, 작은 섬이다. 여기에는 1905년 을사늑약과 1907년 군대 강제해산 이후 충청 해안과 인근 도서지역을 무대로 활동한 의병의 흔적을 보여주는 의병총이 있다. 의병총은 소난지도를 근거지로 뱃길을 오가며 항일투쟁을 벌였던 의병 100여 명이 일제의 추격대에 항전하다 전사하거나 자결한 곳이다.

의병들의 시신 일부는 바닷물에 떠내려갔고 나머지는 소난지도 주민들이 수습해 둠바벌에 묻고 봉분을 조성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소난지도 의병항쟁활동 역시 구전으로 전해올 뿐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어져 가던 중 1970년 이 지역 석문중학교 관계자들에 의해 의병총의 존재가 다시 알려지게 됐다. 1973년 의병총을 보수 정비했으며 1982년 의병총비를 건립한 후 1987년부터 추모제를 거행해 오고 있다.

한편 민초들의 항일독립유산이 문화재로 등록된 사례는 소난지도 의병총과 담살이(머슴) 의병장이었던 안규홍과 그의 주인이자 군량관을 역임한 박제현이 함께 거주한 가옥(전남 보성·등록문화재 699호)이 전부다. 문화재청(청장 김종진) 관계자는 “정부 차원의 발굴도 중요하지만 지방자치단체와 그 가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지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요하다”며 “문화재 등록을 중앙정부(문화재청)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의 항일문화재들을 시·도에서도 문화재로 등록할 수 있도록 법이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