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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효정의 에로틱 시네마 게재 일자 : 2018년 04월 10일(火)
누구나 꿈꾸지만… 위험하고 치명적인 ‘찰나의 엑스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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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즈 와이드 셧

에로티시즘을 예술의 영역에서 표현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다. 하룻밤 일탈도, 혹은 수년을 품어 왔던 상대와의 기다리던 의식도, 찰나의 엑스터시는 몸과 체액을 섞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전적으로 본능의 실천으로 맺어지는 과실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에 엑스터시는 거부하기 힘든, 금단의 열매 같은 것이다. 원칙과 체면을 걷어낸 알몸으로만 얻어 낼 수 있는 것이기에 신비롭고 매혹적이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유작인 ‘아이즈 와이드 셧’(1999년·사진)에서는 아무도 그런 것 같지 않지만 누구나 갈망하는 금단의 행위들이 거장의 예술적 사유를 담은 아름답고 철학적인 장면으로 전시된다.

영화는 뉴욕에 사는 호화로운 커플인 의사 빌 하퍼드(톰 크루즈)와 갤러리 오너였던 그의 아내 앨리스 하퍼드(니콜 키드먼)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사회적 지위로도, 수려한 외모로도 선망의 대상이지만 이들은 누군가를 욕망하고 싶은 욕구를 애써 감추고 사는 허울뿐인 커플이다. 서로에 대한 욕망도 질투도 없는 부부는 함께 있는 순간에도 각자 식당에서 보게 된 이에게, 파티에서 마주친 타인에게 의미 없이 흔들리고 흥분한다. 누군가를 욕망하는 것이 아닌 욕망하는 행위, 즉 엿보고 만지고 싶은 행위가 필요한 것이다.

▲  김효정 영화평론가
모처럼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내던 빌에게 앨리스는 “가정을 다 버리고 싶을 정도로 강렬한 유혹의 순간이 있었다”며 뜬금없는 고백을 한다. 식당에서 우연히 옆에 앉게 된 해군 병사 때문에 몇 날 며칠을 성적 환상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앨리스의 이야기를 듣고 빌은 충격을 받는다.

빌의 충격은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싶을 정도로 크게 작용한다. 혼란스러운 그는 대학 동창인 닉이 “비밀스럽고 위험한 성에서 피아노 연주를 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잠입을 감행한다. 아내의 배신에 마음을 둘 곳이 없어 어쩌다 흘러들게 된 이 공간에서 빌이 목도한 것은 난교의식이다. 지도자로 보이는 한 인물이 지팡이를 내리치는 순간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무리의 사람은 거대한 성의 곳곳에서 두 명씩, 세 명씩 무리 지어 누군지도 모르는 이의 몸을 탐하고 훔치는 것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집단적 엑스터시에 전율하지만 이 순간의 쾌락으로 결국 빌은 이름 모를 집단에 의해 응징당하고 가족을 위험에 처하게 한다.

이 영화는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소설 ‘꿈의 이야기’(1926년)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전작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았지만 이 영화는 큐브릭의 미학과 예술가적 입장을 분명히 전달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문제가 된 비밀의 성에서 이뤄지는 난교의 장은 영화적 미학이 발휘된 수려한 시퀀스다. 주인공인 빌의 시선 숏으로 먼발치에서 보이는 남녀의 집단 섹스는 빌이 방을 옮겨 갈 때마다 많은 인물이 관계하는 다양한 방법의 섹스로 보이지만 흥분하거나 오르가슴을 느끼는 특정 인물의 미세한 클로즈업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관념적이고 몽환적인 인덱스로만 기능하는 것이다.

자신이 하룻밤에 목도한 것, 그리고 그것을 탐욕했던 자신의 죄를 고한 빌에게 앨리스는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자”고 설교하듯 말하며 남편을 용서한다. 그리고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앨리스의 마지막 대사 “지금 당장 우리가 꼭 해야 하는 것이 있어…섹스”는 치명적이고 피상적인 엑스터시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고질적이고 공허한 것인지 다시금 성찰하게 한다.

개봉 당시 큐브릭 감독의 유작이라는 점과 실제 부부였던 톰 크루즈, 니콜 키드먼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이 영화는 인간의 집착과 위선에 대한 비판적 사유로 가득한 거장의 통렬한 우화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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