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기식 사태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文정권의 이중성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10일 취임사에서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겸손한 권력, 낮은 대통령을 강조하며 “잘못된 관행과 완전히 결별하겠다”고도 했다. 그런데 9일 청와대 발표는 뜻밖이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을 둘러싸고 제기된 부적절한 행태들에 대해 김의겸 대변인은 “국민 기대와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지만 해임에 이를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다”고 밝혔다. 취임 초심은 뒤로 밀려났고, 겸손한 권력과도 거리가 멀다. 다른 편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선 전직 대통령을 사법처리까지 하면서, 내 편의 그것은 옹호하고 나선 셈이다. 이른바 ‘내로남불’도 넘어선 이중 잣대와 오만이 먼저 보인다.

문 대통령이 김기식 전 의원을 금융감독원장에 앉혔지만, 애초에 전문성을 크게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시민단체 출신이라고 하니 상대적 도덕성을 기반으로 ‘우간다 수준’이라는 한국 금융산업의 개혁에 새바람이라도 불어넣을지 모른다는 ‘억지 기대’라도 해보려 했다. 그런데 김 원장의 부적절한 과거 행태를 보면 개혁은 고사하고 도덕성이나 독립성이란 말을 입에 올리기도 민망하다. 김 원장이 의원 시절 피감기관 및 은행의 돈을 받아 외유에 나섰던 상황들만 봐도 금융기관 ‘감독’ 임무를 맡을 자격이 없다. 뒤에서 온갖 부적절한 짓을 했던 사람이 심판관이 된다면 정의에 어긋나고, 다음 세대 교육 차원에서도 아주 나쁘다.

청와대의 비호(庇護)는 더 심각한 문제다. 청와대는 9일 “조국 민정수석이 확인한 결과, 해외 출장들은 공적인 목적으로 이뤄진 것이며 적법하다”고 밝혔다. 피감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비용으로 외국을 방문했고, 심지어 여성 인턴도 동행했다고 한다. 일부 지역에선 KIEP가 렌터카와 가이드 비용도 결제했다고 한다. 관광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김 원장과 참여연대에서 함께 활동했던 조 수석이 제대로 검증했는지도 의문이다. 여당이 금융 개혁을 좌초시키기 위한 음모론을 제기하는 것은 더 가관이다.

문 대통령이 야당 시절의 잣대를 잊지 말고 현 권력에 더 엄정해야 한다. 상대 진영에만 가혹하면 ‘정치 보복’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그렇게 되면 정치 발전도 기약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