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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His Story 게재 일자 : 2018년 04월 11일(水)
검법 수련·관광상품 연구·무예史 박사까지…무예에 빠져 산 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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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형국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이 10일 경기 수원시 화성행궁 내 중양문(中陽門) 앞에서 검을 들고 자세를 잡고 있다. 이 자세는 조선의 병서 ‘무예도보통지’에서 칼 수련법을 설명한 ‘예도보(銳刀譜)’에 등장하는 은망세(銀망勢)를 표현한 것이다. 김동훈 기자 dhk@

- 최형국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

수원대학 경영학과 입학후
임동규 선생의 경당서 수련
3년만에 수석으로 사범 지위

전통무예 관광마케팅 석사
정조 근위대 장용영 무예24
수원화성 상설시범단 만들어

국내 최초 무예사 박사학위
“中의 소림사처럼 무예24도
세계적 문화콘텐츠 잠재력”


지난 10일 오전 11시 경기 수원시 화성행궁 신풍루(新豊樓) 앞. 우렁찬 북소리와 함께 철릭 위에 갑주를 떨쳐입은 이들이 보무도 당당히 등장했다. 손에는 창과 칼, 삼지창 등 조선 군대에서 사용했던 병장기가 들려 있었다. 병사들은 무대에 들어서자마자, 전광석화같이 진을 펼치며 전통 무예 시범을 선보였다. 궁수가 등장해 활을 쏘더니 장창수가 허공을 찔렀고, 예도와 등패로 무장한 이들이 칼을 휘두르며 진을 형성했다. 월도와 검을 이용한 베기 시범이 이어지자 관람객 입에선 탄성이 터져 나왔다. 관람객들은 스마트폰으로 현란한 움직임을 담느라 분주했고, 파란 눈의 외국인들도 “코리안 마셜아츠, 원더풀(Korean martial arts, wonderful)!”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수원시립공연단 소속 무예24기 시범단이 상연하는 시범공연의 한 장면이다. 무예24기는 조선 후기의 병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수록된 장창·예도·쌍검·월도·마상재 등 24가지의 무예로, 조선 정조시대에 왕권 강화를 위해 구성된 국왕 친위대인 장용영 무사들이 수련한 것으로 전해진다.

시범공연이 끝난 후 행궁 안 집사청(執事廳)에서 시범단의 상임 연출을 맡는 최형국(42)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을 만났다. 그는 국내 최초로 무예사(武藝史)로 박사학위를 받은 전문가이자, 전통 무예를 수련하는 검객이다. 조선 군대의 초관급(현재 중위∼대위 계급) 지휘관 의복을 갖춘 최 소장은 200여 년 전 화성행궁 앞에서 조선 시대 군사들이 훈련하던 모습을 고증하는 데 힘쓰고 있다.

최 소장이 전통 무예에 천착하게 된 시기는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전남 곡성군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자연을 벗 삼아 노는 게 익숙했다. 고교 시절 광주시 유학생활을 거쳐 1994년 수원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그는 무예24기 수련 도장인 경당에서 무예를 접했다.

“경당은 임동규 선생님이 만든 무예 수련을 위한 도장이에요. 과거 인혁당 사건에 연루돼 두 번의 무기징역 선고를 받은 임 선생님은 감옥에서 ‘무예도보통지’를 접하고 무예 복원 작업을 하셨어요. 옥중에서 봉(棒) 대신 빗자루를 들고 수련한 탓에 ‘빗자루 도사’라는 별명이 생겼다고 해요. 20여 년을 복역한 뒤에는 이 땅의 청년이 민족의 무예를 배워야 한다는 취지로 광주에 ‘민족도장 경당’을 열었어요.”

대학 3학년이었던 1997년, 그는 임 선생과 여러 사범이 심사를 보는 앞에서 사범의 지위를 얻었다. 경당에서 수련생의 품계는 연사와 수사·범사 등 세 가지로 나뉘고, 범사가 되면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사범의 지위를 얻게 되는데, 함께 심사를 받았던 12명 중 당당히 장원을 거머쥐었다.

“주위에서 절 도깨비 같은 놈이라고 불렀어요. 강의실과 동아리방, 도장 등에 신출귀몰한다는 얘기죠. 무예 수련 외에도 탈춤과 택견을 했어요. 젊은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생각 탓에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어요.”


1997년은 수원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시기다. 그 당시만 해도 정조의 근위대인 장용영이 이곳에서 수련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무예24기의 존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1999년 열린 ‘정조시대 전통 무예전’에서 전국의 경당 소속 대학생과 지방 수련생 등 총 120명을 모아 처음으로 무예 시범을 연출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에는 수원월드컵경기장의 무예24기와 군사진법을 응용한 시범으로 개막공연을 하기도 했다. 월도를 이용한 진법과 등패를 이용한 방어진을 선보이자 객석은 환호했다.

최 소장은 이듬해 경당 수련자와 수원 지역 인사들을 규합해 무예24기 보존회란 단체를 출범했다. 무예24기 시범을 상설화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무예24기 시범은 준비과정부터 녹록지 않았다. 병장기와 갑옷 등 모든 것을 하나하나 스스로 제작해야 했다. 다행히 무예도보통지에는 병기의 재원이 잘 나타나 있었다. 이를 토대로 대장간과 목공소를 직접 찾아다니며 병기를 만들었다. 복식 역시 전통 방식을 고수하면서도 수련에 편하게 개량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갑옷은 외형을 유지하면서도 편하게 입고 벗을 수 있는 형태를 고안했다.

최 소장은 2003년 무예를 문화 콘텐츠화하기 위해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그의 석사학위 논문 주제는 ‘수원 화성의 전통무예를 활용한 관광마케팅 전략’이었다. 그는 석사 논문을 200권 찍어서 공무원과 화성연구회 회원을 직접 찾아다니며 “제발 한 번만 읽어달라”고 졸랐다.

“당시에 화성과 관련한 민간 조직으로 사단법인 화성연구회가 있었는데, 이 연구회에 가입해서 무예24기와 화성의 관계를 계속 설명했습니다. 상설 시범 공연이 이뤄지면 수원 화성이 유·무형의 문화유산이 결합한 문화 콘텐츠로 성장할 것이라고 끊임없이 설득했어요. 그 사이에 수원문화원에서 도움을 줘서 주말마다 시범공연을 진행했는데 관광객 반응이 너무 좋은 거예요. 이후로 상설이 확정됐습니다.”

무예에 대한 깊은 관심은 자연스레 역사 연구로 이어졌다. “석사 과정을 마치면서 경영학은 무예를 문화상품화 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무예가 콘텐츠로서 가치가 있다는 것은 입증했지만, ‘무예의 본질적 가치가 뭔가’ ‘무예는 어떻게 수련하고, 왜 수련하는가’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박사 과정을 밟기로 했는데, 무예와 관련한 연구 설계를 선뜻 받는 대학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역사학이 무예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틀이 될 것이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중앙대에서 시작한 박사과정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선배 역사학자들은 병서 연구에 시큰둥했다. 정치사 중심의 학계 풍토에서 무예사는 늘 변방이었다. 그러다 ‘조선 후기 기병의 마상무예 연구’란 주제의 논문이 학계의 심사를 통과하면서 그는 국내 최초로 무예사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의 무예는 문화 콘텐츠로서 기능하고 있습니다. 미래의 무예는 인간이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양생(養生)의 코드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봅니다. 무예는 상대를 이기기 위한 지극히 효과적이고 과학적인 기술입니다. 미래에는 인공지능처럼 인간을 대체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이 인간의 몸을 소외시키는 현상이 발생할 겁니다. 이때 인간이 진정으로 인간다워지기 위한 수단이 무예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최 소장은 한국 무예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중국·일본 등 이웃과 비교해도 무예에 대한 홍보가 거의 안 돼 있다는 판단에서다. 중국은 소림사를 중심으로 주변에 40∼50개 무술학교가 있고, 상주하는 수련생만 10만 명에 육박한다. 이 중 외국인은 3만∼4만 명이다.

“중국은 쿵후·소림사로 무예 마케팅을 엄청 잘하고 있습니다. 중국 하면 아침의 태극권을 하는 모습이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고, 일본 하면 사무라이, 닌자 등이 떠오르죠? 한국은 태권도가 알려져 있긴 하지만, 우리의 역사 속에서 존재해온 무예24기라는 소중한 유산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는 수원 화성 안에 시립 무예24기 전수관을 건설할 것을 시에 건의하고 있다. 전수관을 통해 사람들이 체험하고 배우고, 장기적으로 국내·외 수련자가 늘어나면 훨씬 더 강력한 한류를 이끌 새로운 자원이 될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무예 전수를 통해 북한과 문화 교류 활성화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지난해 북한 인민대학습당에서 보유한 무예도보통지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면서 국내 역사학계에 충격을 안긴 바 있다. 국내에서도 서울대와 고려대, 한국학중앙연구원, 육군박물관 등에서 무예도보통지를 보유하고 있지만, 유네스코 등재는 북한이 먼저 이뤄낸 것이다.

그는 “북한이 세계기록유산 등재에는 성공했어도 무예24기를 수련하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우리가 직접 유네스코 문화 교류 차원에서 무예를 전수하게 되면 남북의 문화교류 활성화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 = 박성훈 기자 psho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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