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용 기자의 엔터 톡>멜로에 울고 공포에 웃은 충무로의 봄

“틈새시장을 공략하라.”

세상을 살면서 참 많이 듣는 말이죠. 표현 그대로 치열한 경쟁을 피해 ‘틈새’처럼 비어 있는 시장을 파고들라는 의미입니다.

표현을 살짝 바꿔 보자면 마이너(minor) 시장으로 뛰어들라는 거죠. 하지만 돈이 돌고 있는 메이저(major) 시장을 뒤로하고 돈이 마른 마이너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경쟁이 덜하기는 하지만 이미 대중의 관심 역시 덜한 영역이기 때문에 시장성이 크지 않으니까요.

충무로에서는 멜로와 공포가 이런 마이너 장르입니다. 유명 배우들이 다수 출연하는 ‘멀티 캐스팅’이나 다양한 이야기가 결합된 ‘복합장르’가 인기를 끄는 시장 분위기 속에서 순수 멜로와 공포가 설 자리는 좁죠. 멜로 영화 최고 흥행 기록은 2013년 작인 ‘내 아내의 모든 것’이 기록한 459만 명입니다. ‘건축학개론’(411만 명), ‘어린 신부’(314만 명), ‘너는 내 운명’(305만 명) 등 300만 명 이상 동원한 영화도 5편이 넘지 않죠.

공포 영화의 성적표는 더 소박합니다. 역대 흥행 1위는 2003년 작인 ‘장화 홍련’(314만 명)이고, ‘폰’(220만 명), ‘여고괴담’(200만 명) 등 200만 고지를 밟기도 버겁죠. 그러니 제작 시도조차 줄고, 매년 봄·여름만 되면 ‘멜로의 실종’ ‘공포의 실종’이라는 기사가 나오는 겁니다.

하지만 올해 봄은 틈새시장에 볕이 쨍했습니다. 멜로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254만 관객(10일 기준)을 모아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어섰고, 스타 1명 출연하지 않는 공포 영화 ‘곤지암’은 비수기인 3∼4월 상영돼 233만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공포 영화 흥행 순위 2위를 갈아치웠죠.

그 배경에는 멜로와 공포를 사랑하는 이들의 진정성이 있었죠.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주인공인 손예진은 시류에 편승하기보다는 ‘클래식’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오싹한 연애’ 등 우직하게 멜로 장르를 소개했습니다. 소지섭 역시 영화 ‘오직 그대만’과 다양한 드라마를 통해 ‘멜로 장인’이라는 별명을 얻었죠. 그는 “왜 멜로를 고집하냐”는 질문에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멜로는 빠질 수 없는 얘기”라고, “흥행을 점쳐 달라”는 물음에는 “또 멜로가 제작될 수 있도록 손해만 보지 않으면 좋겠다”고 답했습니다. 우문에 현답이었죠. 그리고 ‘곤지암’을 찍은 정범식 감독은 그동안 ‘기담’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 등을 통해 한국형 공포물의 명맥을 이어온 몇 안 되는 감독입니다.

틈새시장을 뚫은 두 영화를 보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그들의 고집과 뚝심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손익분기점을 넘겼으니, 관객으로서 또 다른 괜찮은 멜로나 공포 영화를 만날 기회를 얻은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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