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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박민 부국장 겸 정치부장 게재 일자 : 2018년 04월 11일(水)
카네이션과 ‘황제 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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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민 부국장 겸 정치부장

김영란법 입법 주도 2달만에
피감기관 지원받아 해외출장
귀국 4일 만에 美·유럽 출장

文정부 개혁 상징 ‘김기식’
청산대상 특혜출장 대비 땐
배신감과 반동의 명분 자초


고교 재학 중이던 1980년대 초. 무더위가 시작되면 무뚝뚝한 남학생들도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드실 찬 음료수를 교탁에 놓아두곤 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당시의 15배를 넘어선 2016년(2만7561달러) 9월 29일 대학생이 교수님께 1000원짜리 캔커피를 드렸다는 내용의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반 첫 신고였다. ‘사안이 경미하다’는 이유로 처벌은 면했다. 그러나 국민권익위원회는 법 위반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이듬해 스승의 날에는 카네이션 금지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1000원 정도의 ‘보은(報恩)’조차 금지당한 학생들은 공연히 민망했고 졸지에 잠재적 범죄자가 된 선생님들은 자괴감에 빠졌다.

이 서슬 퍼런 김영란법 입법의 주역이 김기식 신임 금융감독원장이다. 당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이었던 그는 2015년 1월 15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만연한 접대, 로비 문화를 정비하자는 이 법의 취지를 놓고 보면 고위공직자로 (대상자를) 제한할 경우 김영란법 제정 자체의 의미가 없어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사립학교 직원이나 언론인 포함 문제는 이미 지난해 임시국회에서 합의된 사항이라며 “사립학교의 경우에도 교원 급여의 90%는 세금에서 충당된다” “비리문제로 얘기하면 사립학교가 공립학교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캔커피와 카네이션이 위법이 된 배경이다.

그로부터 40여 일이 지난 그해 3월 3일 김영란법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리고 법안의 잉크가 채 마르기 전인 5월 19일, 그는 피감기관이자 금감원 관할인 우리은행의 지원을 받아 중국과 인도에 2박 3일 일정으로 출장을 갔다. 그는 출장 기간 중 우리은행이 제공한 차량을 이용해 중국 충칭(重慶) 시내 관광을 했고 현지 기사와 직원이 그를 수행했다. 출장에서 돌아온 그는 불과 4일 만인 25일 다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지원을 받아 9박 10일 일정으로 미국·유럽으로 출장을 떠났다. 사무실 여성 인턴의 출장 경비도 지원받다 보니 경비가 3000만 원을 넘어섰다. 더구나 그는 이 출장에서도 KIEP의 경비로 로마 시내 관광을 했다. 그는 KIEP의 동의하에 현장 조사를 했다고 주장하지만, KIEP의 출장보고서에는 ‘김 의원을 위한 의전 성격의 출장’이라고 기재돼 있다. 업계 표현을 빌리자면 정무위 저승사자인 그에 대해 ‘보험’을 든 셈이다.

김영란법이 캔커피와 카네이션의 직무 관련성까지 인정한 점을 감안하면, 피감기관의 지원을 받은 김 의원의 해외출장은 김영란법 위반일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김 의원과 인턴에게 지원된 출장 및 관광 경비는 ‘사안의 경미함’을 인정받기도 힘든 수준이다. 전국 현직 교수 2명당 1명꼴로 캔커피를 드리거나, 전국 중학교 교사 2명당 1명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릴 정도의 돈이다. 그러나, 김영란법은 시행이 2016년 9월 28일로 유보돼 김 원장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김영란법이 아니더라도 김 원장을 사법처리 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피감기관으로부터 출장 경비를 지원받고 출장 기간 중 개인 관광 등 사적 일정에 편의를 제공받은 것은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을 뒷받침하는 정황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청와대는 출장 이후 특혜를 준 적이 없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특혜와 상관없이 출장 지원 자체가 ‘포괄적으로 잘 봐달라’는 취지였다면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할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특혜와 편법이 없는 ‘나라다운 나라’를 약속했다. 사회 전 영역에서 무차별적으로 진행된 적폐청산 작업이나 비핵화-평화체제 일괄타결을 추구하는 대북정책,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및 근로시간 단축 등을 골자로 하는 경제정책 등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70%대에 육박하는 것은 문 대통령의 약속을 믿기 때문이다. 문제는 김 원장의 출장이 그 믿음에 균열을 가져올 치명적 위험 요인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의 상징적 인물이지만, 그의 출장은 문재인 정부가 청산을 약속한 적폐이자 특혜이자 편법이다. 그 극렬한 대비가 지속되면 지지 세력에게는 배신감을 가져다주고 적폐 세력에게는 반동의 명분을 제공한다. 문 대통령이든 김 원장이든 더 늦기 전에 결단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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