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 class='emp_01'>[단독]</em>‘빵빵한 매출’… 대전 빵집 성심당, 파리바게뜨·뚜레쥬르도 눌렀다](http://image.munhwa.com/gen_thumb/202404/2024041801072407205001_300.jpg?v=20240418174326)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 시판과 비둘기 조형물이 조성돼 있는 ‘비둘기 쉼터’.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한용운의 ‘심우장’에서 좁은 골목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나온다. 처음엔 ‘비둘기 공원’으로 불리다가 2009년 지금의 모습으로 새 단장됐다. 아래 사진은 성북동 전경.
김광섭 詩 ‘성북동 비둘기’의 배경… 서울 성북구 성북동
60세에 뇌출혈로 쓰러진 詩人
투병중 ‘성북동…’ 시집 출간
자연파괴 인한 인간상실 노래
현대 詩史에 뚜렷이 자리매김
1960년대 급속도로 개발 진행
성북천·채석장 등 흔적만 남아
이태준 고택·심우장·길상사 등
근현대 문인 교류 자취는 보존
골목길 올라가면 ‘비둘기쉼터’
시 전문 새긴 시판 3개 나란히
서울 마지막 달동네 북정마을
그시절 성북동의 모습과 유사
서울의 성북구 성북동을 생각하면 시인 김광섭과 그의 시 ‘성북동 비둘기’가 단박에 떠오른다. 성북동은 1960년대 초반에 삼청터널과 북악산길이 개통된 뒤, 서울 도심과의 교통이 원활하게 이뤄지면서 급속도로 개발이 진행됐다. 김광섭의 대표 시라고 할 수 있는 ‘성북동 비둘기’는 당시 이곳에 몰아닥친 개발의 광풍을 비판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인 자신이 성북동에 살면서, 당대의 변화 과정을 직접 목격하고 시로 써내려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시인의 성북동 집을 찾아가 본다.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했다는 예전 집은 아무런 흔적도 없이 그저 번지만 남아 있다(성북동 168-34번지). 삼선교에서 성북로를 따라 걷다가 성북동 주민센터를 막 지나 오른쪽 골목길(성북로10길)로 접어든다. 150여m쯤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면 작은 삼거리가 나오고 정면에 5층짜리 빌라 건물이 앞을 가로막는다. 시인이 1961년부터 1966년까지 살았던 집터에 새로 지은 건물이다. 시인의 집터를 등지고 앞을 바라보면, 저 멀리 맞은편 언덕배기에 혜화동도 보이고, 비탈을 따라 지어진 집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복개(覆蓋)해 차가 다니는 성북로를 따라 과거에는 성북천이 흘렀다. 지금도 성북 구립미술관 근처에서는 옛 하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내친김에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이 메아리치던 “산 1번지 채석장”도 찾아가 본다. 성북공원과 동구여중 우측에 있는, 돈암동의 아파트 단지가 바로 그곳이다. 그리로 가는 언덕길에서 자주 보이는, 이제는 주택의 주춧돌로 사용되는 커다란 바위에는 어김없이 폭약을 재어 넣기 위한 발파구멍이 뚫려 있는 것도, 아파트 주차장의 축대가 유독 산비탈의 벼랑처럼 깎여 있는 것도 과거 채석장의 흔적이다. “아침마다 정원에 앉아 명상하다가도 전쟁 같은 포성에 깜짝 놀라면서 물질문명에 쫓기는 비둘기의 비애를 가슴에 느끼곤 했다. 그것의 시화(詩化)이다.” (‘시와 인생에 대하여’)
김광섭은 1965년 4월 22일 뇌출혈로 쓰러졌고, 1주일 만에 의식은 회복했지만 이어지는 중풍 증세로 반신불수가 됐다. 그의 남은 생애는 마지막 순간까지 곧 투병 생활이었다. 1969년 출간한 네 번째 시집 ‘성북동 비둘기’는 시인이 병상에서 썼던 35편 시를 정리해 엮은 것이며, 그의 대표 시집이다. 와병(臥病) 이후 처음으로 발표한 시 ‘봄’을 비롯해 ‘생(生)의 감각(感覺)’ ‘병’과 같은 일련의 시들은 그의 초기 시들을 지배했던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성향으로부터의 탈피를 뚜렷이 보여준다.
시인의 모교인 중동고 교정에는 ‘마음’ 시비가 있다. 1996년에 세운 이 아담한 비석은, 교문 바로 곁에 딱 버티고 있는 양주동의 ‘어머니 마음’ 시비와는 크기부터가 확연히 다르고, 그 위치도 교사(校舍) 한 귀퉁이에 숨어 있듯 서 있다. 하지만 역시 이 학교 출신인 서예가 김충현의 고운 한글 서체는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올 만큼 수려하고, 가만 지켜볼수록 멋스럽다. 김광섭이 모교에서 영어 교사를 했던 시절에 이 시를 썼고(‘문장’ 5호·1939년 6월), 나중에 교과서에도 실렸다. 이 시는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이라는 비유로 시작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마음의 관조’가 외부 자극에, 즉 바람과 구름 같은 자연 현상에도 이런저런 사람들에 의해서도 쉽게 깨어짐을 의미한다.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행여 백조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러울까/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죽음’을 경험하고 다시 깨어난 시인은 더는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임종의 그날까지 시(詩)를 생각하며 시를 쓰련다.”(‘시와 인생에 대하여’) 유서를 쓰듯 써내려간 시와 시인의 새로 얻은 삶은 이제 하나가 됐고, 이때부터 그의 작품은 단순한 관조를 넘어 보다 원숙한 달관의 세계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시인의 언어가 확실히 변했다. 시의 제재(題材)로 일상의 삶을 취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이제는 여유와 달관의 세계를 함께 보여준다. 예전 시들에서 빈번히 나타났던 지적이고 난해한 시어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성북동 비둘기’는 김광섭을 한국 현대시사에 뚜렷이 자리 잡게 한 작품이다. 이 시는 무분별한 개발의 소용돌이 속에 평화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던 근원적인 터전을 잃고 차츰 소외돼 가는 삶의 모습을 그린다. 또한 자연의 파괴가 곧이어 공동체의 붕괴를 야기하며, 결국에는 인간 상실로 이어지고 말 것이라는 예언자적 시각도 숨어 있다. 이 시를 한국 생태주의 시 또는 환경 시의 효시(嚆矢)라고 보는 가치 평가도 이 점에서는 마땅하다.
시인은 막상 이 성북동 집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며, 사실 ‘성북동 비둘기’를 이곳에서 완성한 것도 아니다. “나는 성북동 집이 싫어졌다. 뜰에 나와 먼 산을 바라보면 이 집에 오던 날부터 있었던 불행한 기억만 되살아났다. 불치병인 중풍을 이 집에서 당했고 설상가상이라더니 어머님마저 잃고 집에 대한 애착이 식어만 갔다.”(‘시와 인생에 대하여’) 결국, 시인은 “아픈 다리를 끌고” 근처의 동소문으로, 다시 낯선 미아리로 이사했다. 시인은 ‘겨울날’과 ‘산’, ‘성북동 비둘기’ 등의 시는 이곳 성북동 집에서 구상해 결국 미아리 집에서 완성했다고 밝혔다.(‘시에의 등정’)
한국 근현대 문인들의 삶과 교류의 흔적이 성북동에는 많이 남아 있다. 1930년대 초반에 김기진과 김일엽 등 많은 문인이 모여 살아 이미 ‘문인촌’이라 불렸다. 이어 이태준과 박태원의 집에는 순수문학을 지향하던 문학 단체였던 구인회(九人會) 회원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문학적 교류를 나눴다. 청록파의 세 시인도 조지훈의 성북동 집에서 ‘청록집’의 발간을 논의하며 숱한 밤을 지새웠다. 김일엽의 ‘성북동 양옥집’처럼 그 흔적도 번지 수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지만, 조지훈의 집 ‘방우산장(放牛山莊)’은 근처 대로변에 조형물로 남아 있다. 이태준의 고택 ‘수연산방(壽硯山房)’과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尋牛莊)’은 잘 보존돼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여기에 시인 백석의 슬픈 인연이 깃든 길상사(吉祥寺), 최순우의 옛집과 전형필의 간송미술관까지, 성북로 주변의 이름난 장소들을 골라 겉핥기로 대충만 둘러봐도 봄날 하루는 너무 짧다. 성북동에서는 그저 부지런히 다리 품만 팔면 정신은 넉넉히 보상받는다.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에 일단 도착하면, ‘비둘기 쉼터’(성북동 224-14번지)를 찾는 것은 일도 아니다. 심우장까지 힘들게 올라왔던 좁은 골목길(성북로29길)을 다시 그만큼 더 따라 올라가면 ‘비둘기 쉼터’가 있다. ‘성북동 가로쉼터’라는 본래 명칭에도 불구하고 흔히 ‘비둘기 공원’으로 불리다가, 2009년 새롭게 단장한 이후에는 아예 앞의 두 이름을 섞은 듯한 ‘비둘기 쉼터’라는 정식 이름을 얻었다. 사실, 이 작고 좁은 공간은 공원보다는 쉼터라고 불리는 편이 더 낫지 싶다.
한쪽 벽에 ‘성북동 비둘기’의 전문을 나눠 새긴 시판(詩板) 3개를 나란히 붙여 놓았다. 그 위에는 비둘기 모양의 작은 조형물들이 여러 개 붙어 있다. 본래는 축대 역할을 하는 벽면에도 날아가는 비둘기의 형상을 연이어 벽화처럼 그렸다. 잘생긴 몇 그루 나무 사이로 쉬어갈 수 있는 의자와 운동기구 몇 개가 놓여 있다. 한쪽에는 몇 권의 책이 꽂힌 책 보관소가 있는데, 그 모습이 예전에는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빨간 우체통 또는 오래된 흑백영화 속에 나온 낡은 공중전화 박스 같기도 하다.
성북로 건너편 길상사 주변의 이른바 ‘부촌’과는 참 많이도 다르지만, 시인이 살던 시절의 성북동과 유사한 풍경을 애써 찾고자 한다면, 이곳 비둘기 쉼터에서 그저 계단 몇 개를 더 올라 북정마을을 둘러보는 것이 좋다. 서울 도성 자락 아래 위치한 북정마을은 이제 서울 도심의 마지막 남은 ‘달동네’다. 이 동네는 과거에 늘 ‘재개발’ 딱지를 문패처럼 붙이고 살았지만, 2011년부터 일반적인 재개발이 아닌 현재 주민들의 터전을 유지하며 발전시키는 마을공동체 복원 사업으로 바뀌면서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었다. 예전 추억을 찾아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이 최근에는 무척 늘었다.
서울 도성의 성곽에 올라 발아래 북정마을을 가만 내려다보면, 김환기의 그림 속 작은 사각 점들이 문득 떠오른다. 김광섭의 시 ‘저녁에’는 “뉴욕 김환기 화백의 화실에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표제의 대작이 되어 그의 사후에 큰 유작으로 남았다.”(‘시에의 등정’) 아직 해가 짧기도 하지만, 유독 좁은 골목길에는 석양 무렵부터 일찌감치 어둠이 내린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서 숨길 것도 없는 우리네 사람들, 그 집의 담은 낮고, 아예 그마저도 없는 곳도 많다. 그래서 사람의 정도 따뜻한 불빛도 골목길로 쉽게 새어 나온다. 구태여 묻지 않아도 담 너머로 풍겨 나오는 정겨운 냄새만으로 그 집의 오늘 저녁거리를 짐작할 수 있다.
짧은 석양에 이어 저녁이 곧바로 왔다. 지하철역까지 금방 데려다줄 마을버스가 다가오지만, 짐짓 모른 체하며 내친김에 좀 더 걷기로 한다. 봄 저녁 하늘빛이 김환기의 그림 속 그 곱고 짙은 푸른색에 더 가까워지기를 바라며, 일부러 걸음을 늦추며 늦장을 부린다. 한양도성 성벽 위로 겨우 떠오른 저녁별들은 북정마을 골목을 간신히 비추고는 저 아래 도시의 밝고 현란한 불빛에 이내 그 빛을 잃는다. 시인의 흔적을 찾던 한나절 내내 입가에 귓가에 끊임없이 맴돌던, 김광섭의 시 하나가 결국 콧노래가 돼 나온다. 그의 시에 곡을 붙여 유심초가 부른 노래이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저녁에’ 전문)
글·사진 = 박광수 불문학자
문화평론가
;){kind=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