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기업 원가 공개는 反시장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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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바른사회 공동대표

노무현 정부 시절 ‘아파트 원가 공개’ 유령이 또다시 한국을 배회하고 있다. 지난 12일 대법원은 2014년의 이동통신비 원가 공개 항소심 판단이 적법했다고 최종 선고했다. 이로써 참여연대는 2011년 통신사를 상대로 통신요금 원가 자료를 공개하라고 소송을 낸 지 7년 만에 승소했다. 공개 대상 정보의 범위는, 항소심에서 공개하라고 했던 2005년부터 2011년까지의 원가 산정을 위한 사업 비용과 투자 보수 산정 근거 자료 가운데 영업 보고서의 대차대조표 및 손익계산서 그리고 영업통계 명세서 등이다. 영업통계 명세서에는 분기별 가입자 수, 회선 수, 통화량 등의 정보가 담겨 있다.

민간기업의 영업 비밀을 공개하라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반(反)시장주의적 판결이다. 대법원의 논리는, 이동통신 서비스가 전파 및 주파수라는 공적 자원을 이용해 제공되는 만큼 국가의 감독 및 규제가 적절하게 행사됐는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파 자원을 이용하기 때문에 규제해야 한다는 논리는, 국가가 구축한 기반시설에 기초해 생산한 재화는 모두 그 원가를 공개해야 한다는 논리로 확대될 수 있어 우려된다.

또한, 법원은 정보를 공개하더라도 수익 및 비용의 구체적인 현황과 구조가 확인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정보가 공개된다 할지라도 정당한 이익을 해치는 영업 비밀에는 이르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보가 공개되면 어떤 형식으로든 퍼즐 끼워 맞추기 식의 접근이 이뤄질 것이다. 그리고 기업 고유 전략인 마케팅 활동의 결과물인 영업비용은 그 적정성 여부가 법적 판단 대상일 수 없다.

높은 통신 요금은 원가를 공개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원가 공개와 요금 인하는 별개다. 원가가 공개돼도 의도한 요금 인하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최근 10년간 오르지 않은 생활물가가 2개 있다. 목욕탕에서의 세신(洗身) 요금과 대리운전 요금이다. 가격이 안정된 것은 세신사들과 대리운전 희망자가 끊임없이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가격이 낮아진 것은 원가 공개와는 상관없다. 같은 논리로 통신 요금을 낮추려면 제4의 이동통신사가 진입해야 한다. 3개 이통사로 분할된 과점 시장에서의 초과이윤이 진입 유인으로 작용하도록 진입 장벽을 제거하는 것이 정책 순리다.

통신 3사가 당국에 제출하는 원가보상률을 근거로 정부와 시민단체 등이 요금 인하 압박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원가보상률은 공기업의 서비스 요금 관리에 활용되는 개념으로, 수익을 추구하는 민간 기업의 요금 적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아니다. 만약 원가보상률을 근거로 현재 2G, 3G 요금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면 거꾸로 서비스 상용화 초기 막대한 투자비가 투입돼 원가가 높을 수밖에 없는 5G 서비스 요금은 높게 책정될 수밖에 없다. 결국, 복합단가에 기초해 가격을 결정하도록 기업에 재량을 줘야 한다.

시민단체가 공익 소송을 내는 건 자연스럽지만, 정치 지망생이 공익 소송을 내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이다. 통신 원가 공개로 통신료 인하를 꾀한다면 포퓰리즘에 기댄 가격 통제와 다를 바 없다. 인위적 통신 요금 인하로 이익이 줄고 주가가 떨어진다면, 이는 시장 자체를 교란시키는 것이다. 가격은 ‘가치>가격>생산비’의 생존 부등식에 따라 결정되고, 가격 인하는 경쟁 촉진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정보 공개로 통신 요금은 내리지 못하면서 국내 이동통신사들의 영업비밀만 글로벌 시장에 노출시키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