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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8년 04월 17일(火)
“촬영 현장선 女王… 한국영화史 한 페이지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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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4년 2월 유엔군 위문 공연을 위해 한국에 온 메릴린 먼로(오른쪽)와 기념촬영을 한 최은희 씨. 자료 사진
▲  자녀들과 함께 단란한 한때를 보내며 기념촬영을 한 신상옥·최은희 부부. 신상옥기념사업회 제공
▲  최은희 씨가 1967년 귀순한 이수근(오른쪽) 환영식에서 꽃다발을 전하고 있다. 김천길 전 AP통신 기자 제공
▲  납북된 후 북한에서 영화를 만들며 김정일(가운데)과 기념촬영을 한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씨. 엣나인필름 제공
▲  17일 고 최은희 씨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모습. 영화 같은 삶을 살다 간 고인이 영정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원로배우 최은희 별세… 영화계 추모 물결

1942년 연극 ‘청춘극장’ 데뷔
1950년대 원조 트로이카 활약
1954년 신상옥 감독과 결혼해
1978년 납북 … 1986년 탈북
“김정일, 내 생일상 챙겨줬지만
강제로 잡아간 것은 인권유린”

아들 신정균 “든든한 후원자
자그마한 영화제 시작했으니
소원의 절반은 풀고 가셨다”

이장호 “어머니 같은 분이셨다”
안성기 “잊힌다는 게 안타까워”


한국 영화계의 큰 별인 배우 최은희 씨의 타계에 영화계가 추모의 물결에 휩싸였다.

최 씨의 남편이었던 신상옥 감독의 조감독으로 영화 일을 시작한 이장호 감독은 “한국 영화사의 한 페이지가 끝났다. 큰 별이 가셨다”며 “고인은 현장에서 여왕이었고, 어머니 같은 분이셨다”고 회고했다. 아역배우 시절 고인과 여러 편의 영화에 함께 출연했던 배우 안성기는 “고인의 빛나는 모습을 떠올리니 마음이 아프다”며 “훌륭한 선배님들이 힘겹게 지내시다 돌아가셔서 안타깝고, 삶도 영화도 금방 잊힌다는 게 안타깝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최 씨의 장남인 신정균 감독은 “지난해 11월 18일 제1회 신필름예술영화제에 참석하신 게 마지막 공식 외출이었다”며 “아버지 12주기 추모행사를 마친 다음 날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아들 일을 도와주려고 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어머니는 권위 있는 영화제와 신필름영화역사기념관을 만드는 걸 숙원 사업으로 진행하셨다”며 “영화제는 자그맣게라도 시작했으니 소원의 반은 풀고 가셨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내가 열심히 노력해 기념관을 건립해야 한다”며 “어머니는 내 든든한 조력자였고, 후원자였다. 이렇게 가시니…”라고 말끝을 흐렸다. 신 감독에 따르면, 최 씨는 16일 신장 투석을 마친 후 타계했다. 92세. 고인은 지난 2006년 남편인 신상옥 감독을 먼저 떠나보낸 뒤 허리 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악화 됐다.

1926년 경기 광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했다. 이후 1947년 ‘새로운 맹서’로 처음 스크린에 나섰고, ‘밤의 태양’(1948), ‘마음의 고향’(1949) 등을 찍으며 스타로 떠올랐다. 6·25전쟁 중인 1953년 부산으로 피란 가 만난 신상옥 감독과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에 출연하면서 사랑에 빠진 고인은 1954년 결혼한 뒤 부부가 함께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고인은 신 감독과 찍은 ‘꿈’(1955), ‘지옥화’(1958), ‘춘희’(1959), ‘로맨스 빠빠’(1960) , ‘백사부인’(1960), ‘성춘향’(19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로맨스 그레이’(1963) 등 130여 편에 출연했다.

고인은 생전에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출연한 모든 영화에 애정을 느낀다면서도 아시아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를 첫손에 꼽았다. 그는 “그 작품에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멀찍이 떨어져 걸어가고 그사이를 옥희가 오가는 장면은 내 아이디어”라며 “두 주인공이 서로 쑥스러워하며 감정을 숨길 때 순수한 아이가 사랑의 다리 역할을 한다. 그 장면에 긍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고인은 ‘민며느리’(1965) 등을 연출하며 국내 세 번째 여성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또 1966년 신 감독과 함께 안양영화예술학교를 설립해 교장으로 취임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하지만 남편 신 감독과 배우 오수미 씨의 스캔들로 인해 이혼의 아픔을 겪었고, 1978년 1월 홍콩에 갔다가 북한 공작원에 납치됐다. 신 감독도 갑자기 실종된 고인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던 중 그해 7월 홍콩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북으로 끌려갔다. 두 사람은 북한에서 신필름영화촬영소를 세우고 ‘돌아오지 않는 밀사’ ‘소금’ 등의 영화를 제작한 후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북한의 감시를 피해 미국대사관에 은신을 요청하며 탈출에 성공했다.

일각에서는 두 사람의 납북, 탈출 과정에 의심을 품고 ‘자진 월북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고인은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쪽에서 총살을 당했어야 하느냐”며 강력히 부인했다. 고인은 “김정일은 꼬박꼬박 내 생일상을 챙겨 줄 정도로 대접해줬으나, 강제로 잡아다가 영화를 만들게 한 것은 인권 유린”이라며 “생애의 절정기를 자유 없이 감시를 받으며 살았기 때문에 김정일을 원망하는 심정이 강하다”고 토로했다.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는 고인은 슬하에 네 자녀를 뒀다. 맏딸 신명희 씨와 신정균 감독은 입양했고, 상균·승리 씨는 오수미 씨가 낳았다. 고인은 신상옥 감독과 이혼과 재결합, 납북과 망명, 귀국의 와중에서도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신 감독은 이와 관련, 타계하기 직전에 영화상 시상식장에서 “아내에게 고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2호실에 마련됐다. 신정균 감독은 “영화인장으로 치러야 한다는 영화계 의견이 많았지만 어머니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전했다. 발인은 19일 오전이며 장지는 경기 안성 천주교공원묘지로 정해졌다. 02-2258-5940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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