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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현모의 세종이 펼친 ‘진짜 정치’ 게재 일자 : 2018년 04월 18일(水)
“잘 모른다” “부끄럽다” 몸에 밴 겸손…‘오만의 城’에 갇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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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궁에서 나고 자랐으므로, 백성의 어렵고 힘든 것을 잘 모른다.”

왕위에 오른 지 4개월이 지난 1418년 12월, ‘임금 노릇 하기 어렵다’는 ‘대학연의’의 한 대목을 세종이 경연에서 읽다가 한 말이다. 왕의 아들로 태어나 운 좋게 왕이 됐지만, 정작 임금 노릇의 목표인 민생 개선의 방법을 모르겠다는 말이었다.

“내가 잘 모른다.” 세종이 입버릇처럼 자주 하는 말이다. 즉위한 지 사흘 만에 그는 “내가 인물을 잘 알지 못하니, 좌우의 신하들과 함께 의논해 벼슬을 제수하려고 한다”고 했다. 재위 중반부에도 “요즘의 심한 가뭄은 내가 정치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말년에는 “내가 즉위 초반에는 젊어서 능히 잘 다스릴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경솔했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재위 기간 내내 그는 ‘나는 잘 모른다’ ‘부끄럽다’ ‘두렵다’를 거듭했다. 이런 평범한 겸사(謙辭)가 결코 평범하지 않게 보이는 것은 일차적으로 그의 지위 때문이다. 사람은 보통 높은 자리에 앉으면 아랫사람을 낮게 본다.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하대하는 임금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기 쉽다.

겸손했던 사람도 시간이 흐르면 스스로를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인 양 착각한다. 잘못을 숨기고 비판을 꺼린다. “조정에 가득 찬 아첨꾼들”이 그 착각을 부추긴다. 고대 로마사를 연구한 마키아벨리의 말처럼 권력자가 ‘오만의 성(城)’에 갇히지 않기란 대단히 어렵다.

따라서 현명한 군주에게는 조언과 아첨을 구분해 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마키아벨리는 “아첨이라는 피하기 어려운 역병(疫病)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현명한 각료를 선택해 그들에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면책특권(licence)을 주라고 말했다.

세종 내각에서 진실 면책특권을 가진 인물은 허조다. ‘말라깽이 송골매 재상’이라는 별명을 가진 허조는 ‘일 만들기 좋아하는’ 신하들이 여러 가지 정책 제안을 내놓으면 그 제안이 잘못될 소지를 지적해 내곤 했다. 언성 높여 국왕의 뜻을 거스르는 그의 모습을 실록에서 찾기란 어렵지 않다. 그런 허조에 대해 화내지 않고, 계속 회의에 참여시켜 말하게 하는 세종의 포용력은 실로 감탄스럽기까지 하다.

▲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세종의 겸손함은 말로 그치지 않았다. 직접 현장에 나가 백성을 만나보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1425년에 그는 도성의 서문 밖에 나가 영서역(迎曙驛: 지금의 서울 은평구)과 홍제원(洪濟院) 주변을 두루 살폈다. “이날 행차에는 그날 근무하는 호위군관 한 명만 거느리고, 임금이 쓰는 홍양산과 큰 부채를 쓰지 않았다. 벼가 잘되지 못한 곳을 보면, 반드시 말을 멈추고 농부에게 까닭을 물었다”고 한다.

국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장치를 모두 제거하고 최소한의 경호 요원만 데리고, 그야말로 단기필마로 백성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인상적인 것은 벼가 잘 자라지 못한 곳을 보면 반드시 “말을 멈추고 농부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問於農夫)”는 말이다. 들판의 농부에게 다가가 제일 고통스러운 게 무엇이며, 어떤 것을 먼저 도와주면 좋겠는지 묻고 경청한 것이다. 세종이 이처럼 백성을 찾아가 만난 이유는 그의 말 그대로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근본을 근본답게 대우하는 것은 그들의 생각을 듣는 일이다. 나라의 근본인 백성을 찾아가 그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묻는 것. 바로 그것이 ‘오만의 성’에 갇히지 않는 세종식 비법이었다.

“스스로 덜어내면 남들이 더 해주고, 스스로 더하면 남들이 덜어낸다. 설사 뭔가 있더라도 없는 듯 하라.” 세종이 애독했던 ‘대학연의’에 나오는 세상인심이다. 재벌 2세들의 무절제한 언행이 끊이지 않는 요즘, ‘조선 국왕 3세’ 세종의 자기 낮춤 리더십이 더욱 돋보인다.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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