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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경일기자의 여행 게재 일자 : 2018년 04월 18일(水)
맑은 연두 짙은 초록 눈부시다… ‘신록 세상’ 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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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불회(春佛會) 추내장(秋內藏).’ 봄에는 나주의 불회사가, 가을에는 정읍의 내장사가 가장 아름답다는 말이다. 이 말대로 전남 나주의 불회사는 연두색 신록으로 포위되는 이즈음이 가장 아름답다. 봄의 불회사가 가을의 내장사보다 더 나은 건 이렇듯 신록이 아름답게 물들 때도 고즈넉하다는 것이다.

봄이 가장 어울리는 곳. 여기는 전남 나주입니다. 올봄은 꽃이 이른 탓인지 나주 세지면의 구릉을 온통 뒤덮었던 배꽃은 이미 절정을 넘기고 말았습니다. 이르게 핀 배꽃이 속절없이 하나둘 지는 게 그리 아쉽지 않았던 건, 꽃이 아니어도 곳곳에 스며든 봄기운으로 나주 땅 전체가 화려하게 물들어가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영산강 변에는 진노란 유채꽃이 융단처럼 피어났으며 전라남도 산림자원연구소의 메타세쿼이아 숲길은 초록이 더해졌습니다. 절집 불회사와 운흥사가 깃든 덕룡산 자락은 신록으로 물들었습니다. 바로 이런 경관을 두고 ‘눈부시다’고 하는 것이겠지요.

여행지 중에는 어느 때나 찾아가도 좋은 곳이 있는가 하면, 딱 맞는 계절에 찾아가야 하는 곳도 있습니다. 늘 똑같이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곳이 있고, 별 볼 일 없는 곳이었다가 특별한 시간에만 빛나는 곳이 있다면 둘 중 어느 곳이 더 나은 곳일까요. 망설임 없이 ‘후자’의 손을 들어줍니다.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따로 가진 풍경이야말로 귀하고 각별합니다. 짧고 아쉽게 주어지는 것들은 왜 모두 다 소중할까요. 아니, 반대로 소중한 건 모두 짧고 아쉽게 주어지는 것일까요. 아름다운 시간이 짧고 아쉬울수록 그 감동은 더합니다. 오래 두고 볼 수 없고, 다시 보려면 오래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짧게 지나가는 봄날에 가야 할 곳은 나주입니다. 나주가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시간이 바로 봄이기 때문입니다. 절정을 넘긴 벚꽃과 배꽃이 분홍과 순백의 꽃 비로 내리는 봄날에 나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봄날의 강과 봄날의 숲이 보여주는 가장 화려한 경관과 만났습니다. 뜨겁게 지나간 역사를 짚어보기도 하고, 도시가 쌓아 올린 시간 속을 걷기도 했으며 고즈넉한 산사에 들어 마음을 다한 불심이 깎아낸 것들을 만져보기도 했습니다. 이 땅을 딛고서 야망을 이룬 이가 있었고, 이 땅으로 유배 와서 은거했던 이가 있었습니다. 또 호방하게 살았으되 시대와 불화했던 이의 삶도 있었습니다. 지금부터는, 접힌 시간과 묻힌 이야기를 뒤져가며 봄날의 나주를 만나고 돌아온 이야기입니다.

아, 참 빼놓을 뻔했습니다. 나주를 대표하는 영산포 홍어, 그리고 구진포 민물장어의 제철이 모두 다 봄인 것도 이 봄날, 나주에 꼭 가야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말입니다.

▲  영산강의 물길을 따라 자그마치 923개의 정자가 있다. 영산강 변의 정자를 행정구역으로 나눠 헤아려 보면 나주가 165개로 가장 많다. 그중에서 최고가 바로 여기 벽류정이다. 가운데 방을 두고 사방에 마루를 놓았는데, 벽류정 마루는 봄을 바라보기에 가장 좋은 자리다.

# 가장 아름다운 신록이 여기 있다…불회사

나주에서 봄날의 신록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면 바로 다도면 일대다. 나주 다도면으로 들어서면 산줄기가 굵어지고, 깊이도 깊어진다. 조선 시대 이쪽의 산자락으로 스님들이 모여들었다. 나주 불회사로 가는 길과 화순 운주사로 가는 길, 그리고 장흥 유치면 방향의 길이 만나는 삼거리를 일러 지금도 ‘중장터’라고 부른다. ‘중을 상대로 한 시장이 섰던 자리’라는 뜻이니 일대에 스님이 얼마나 많이 모여 살았던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중장터에서 불회사는 지척이다. 나주 사람들이 불회사를 말할 때, 늘 앞세우는 얘기가 있다. ‘춘불회(春佛會) 추내장(秋內藏)’이다. 봄날의 최고 경치는 나주의 불회사에, 가을날 최고의 경관은 정읍의 내장사에 있다는 말이다. 불회사의 봄 신록이, 내장사 가을 단풍에 버금간다는 뜻이다. 하지만 단풍 명소 내장사에서는 이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고개가 갸웃거려질밖에…. 하지만 불회사 산문에 들어 오솔길을 걸으면 왜 ‘춘불회’를 말하는지 금세 알게 된다. 불회사 주변에 넘실거리는 신록이 꽃보다, 단풍보다도 화려해서 입이 딱 벌어지니 말이다.

봄의 기운으로 충만한 이즈음 산중에 들어선 절집 어디든 그러지 않을까만, 불회사 신록은 다른 곳보다 유독 화려하고 감격스럽다. 그건 바로 ‘옅은 연두’와 ‘짙은 초록’ 사이에서 다채롭게 펼지는 색감 때문이다. 새잎의 맑은 연두색을 돋보이게 하는 건 짙은 초록이다. 진한 초록을 만들어내는 건 불회사 인근에서 자라는 늘 푸른 비자나무와 동백나무다. 절집 바로 뒤로는 여태 붉은 꽃잎을 떨구고 있는 반짝이는 잎의 동백이 에워싸고 있고, 절집 주변에는 늙어 신령스러운 느낌을 주는 비자나무 노목이 감싸고 있다. 그 밖의 숲은 모두 새잎이 그리는 연두색이다. 불회사 숲의 연두와 초록 사이에는 과연 몇 가지의 색이 있는 것일까.

천년고찰이라지만 불회사에는 고색창연한 당간지주도, 오래된 탑도, 잘 생긴 석등도 없다. 절집은 작지 않지만 그렇다고 크지도 않다. 하지만 봄만큼은 사정이 다르다. 늦은 동백과 절정의 산 벚꽃, 비자나무, 그리고 신록이 어우러질 때 불회사는 그야말로 명품이다. 절집 들머리에서 서로 마주 보고 선 투박한 할아버지 할머니 석장승부터, 법당 곁에서 V자로 가지를 뻗어 자라는 단풍나무 노거수까지 어느 것 하나 마음을 붙잡지 않는 것이 없다. 대웅전 보수 공사 중이어서 번잡스럽다는 흠에도 말이다.

▲  전라남도 산림자원연구소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하늘을 찌를 듯 도열한 나무에 연두색 여린 새잎이 돋았다.

# 자연과의 경계가 흐린 절집…운흥사

불회사와 같은 산자락에 있는 운흥사는 구획도 정렬도 없이 대웅전과 관음전, 산신각이 제마다 편안하게 앉아있다. 우거진 풀숲으로 담을 삼았으니 자연 전체를 마당으로 삼은 느낌이다. 본래 절집 이름은 웅치사였다. 불이 자주 나는 것이 이름으로 쓴 ‘곰 웅(熊)’자 아래 불을 상징하는 점 4개 때문이라고 해서 운흥사로 이름을 바꾸었단다.

▲  불회사 들머리에 서 있는 여장승인 ‘주장군’이다. 남장승인 ‘하원당장군’과 마주 보고 있다. 이웃한 절집 운흥사에도 비슷한 석장승이 한 쌍 있다.
운흥사에서 가장 이름났던 건 차(茶)였다. 한국의 다성(茶聖)이라고 불리는 초의선사가 이 절집에서 머리를 깎고 출가했다. 초의선사가 차에 심취했던 것도 이곳에서 처음 차와 인연을 맺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운흥사와 불회사가 있는 다도면(茶道面)이란 지명도 운흥사의 차와 무관하지 않다. 운흥사 주변에는 아직도 차나무들이 성성하게 남아있다. 제멋대로 자란 야생의 것들이다. 거칠게 스스로 자란 차나무 찻잎의 향기가 몇 배나 더 짙을 것이란 건, 맛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덕룡산에서 자라는 차나무의 잎으로 만든 차가 ‘비로약차’다. 불회사에서 해마다 그 차를 덖는다. 비로약차는 첫 찻잎만을 선별해서 익히고, 비비고, 털고 나서 아홉 번을 덖어 만든 차다.

운흥사로 드는 길과 불회사로 드는 길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지만, 어쩐지 닮은 것처럼 느껴지는 건 운흥사 들머리에도 불회사의 것과 비슷한 돌장승이 서 있기 때문이다. 운흥사 장승의 등 뒤에 새겨진 ‘강희 58년’이란 글씨가 선명하다. 강희 58년이면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인 1719년. 그 무렵의 운흥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기록을 뒤져보니 법당이 30여 동에 이르렀고, 거느린 암자만 20개가 넘었단다. 거기다 대면 지금의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세상과의 교유가 아니라, 수행의 공간으로 깊은 산중에 들어앉은 절집이라면, 맑은 정신 말고 더 무엇이 필요할까.


# 가장 아름다운 정자가 있다… 벽류정

봄날, 신록이 어우러지는 봄 풍경을 완성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정자다. 봄의 정취에 어찌 그 봄을 노래하는 풍류를 빼놓을 것인가. 나주에는 유독 정자가 많다. 오래전부터 영산강을 그윽하게 굽어보는 자리마다 정자들이 즐비했다.

그렇다면 나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자는 어디일까. 짐작은 쉽다. 나주 사람들이 투표한다면 나주 최고의 정자로 꼽힐 곳은 단연 벽류정이다. 영산강의 지류인 금천의 가는 물줄기를 끼고 있는 벽류정은 첫눈에도 자태가 범상찮다. 우선 간결하면서도 날렵한 느낌의 건축과 선이 그렇다. 기둥과 벽 등을 모두 나무로 지은 것도 특이하고 방을 가운데 앉히고 사방에 마루를 둔 것도 독특하다.

정자가 앉아있는 자리 또한 범상치 않다. 금성산을 병풍처럼 두른 자리에 세 개의 구릉이 있는데, 벽류정은 느티나무와 노송이 어우러진 가장 큰 구릉 숲 속에 자리 잡았다. 새싹의 초록으로 뒤덮인 구릉 위에 단아한 듯하면서도 멋을 낸 정자가 올라앉아 있는 모습이라니…. 거기에다 정자로 오르는 돌계단이 그리는 곡선은 또 얼마나 부드러운지.

나주에서 벽류정과 겨룰 만한 정자가 있다면 나주 다시면 회진길의 영모정이다. 벽류정이 날렵하다면 영모정은 두툼한 쪽에 가깝다. 주변의 풍경도, 정자가 거느린 나무들의 분위기도 사뭇 다르다. 벽류정과 영모정의 가장 큰 차이라면 벽류정에서는 정자의 단아한 건축미에 먼저 눈이 가지만, 영모정은 거기서 글을 배우고 시를 지으며 평생을 기인처럼 자유롭게 살았던 한 인물이 먼저 소환된다. 조선시대 문호 중의 한 명으로 꼽히는 명 문장가, 바로 백호 임제다.



# 꺼릴 것이 없었던 사내… 백호 임제

임제가 남긴 글은 놀랄 만큼 분방하고 현대적이다. 속박과 낡은 관습을 거부하고 법도나 통념에 얽매이지 않은 채 그는 자유로운 생각을 글에 실었다.

글로써 짐짓 진중하게 도리를 궁구해야 한다고 믿던 시절이었으니, 그의 글에 대한 평가가 좋을 리 없었다. 대국에 머리를 조아리는 조선의 현실을 거칠게 통박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고, 제 이익만을 취하려는 속물들의 비열한 모습을 그대로 문장에 담기도 했다. 어디 이뿐일까. 때로는 연애 시를 쓰며 로맨스에 얽히기도 했다.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그의 정신은 곧 정치나 권력에 대한 무관심으로 나타났다. 막 시작된 붕당정치에도 그는 가담하지 않았다. 붕당의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던 나주 땅에서 말이다. 그는 자유로운 행동과 글쓰기로 기인 취급을 받았던데다, 정치나 권력에 무관심했으니 벼슬도 높이 오르지 못했다.

임제란 이름은 몰라도 이 시를 아는 이들은 많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느냐/홍안을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는고/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이를 슬퍼하노라.” 평안 도사로 부임해 가는 길에 황진이를 찾았던 임제가 황진이의 무덤 앞에서 그를 추모하며 남긴 글이다. 훗날 이 일이 조정에 알려지면서 그는 좌천되고 파직됐다. 사대부가 한낱 기생 따위에게 문장을 주었다는 이유였다.

임제의 글이 특별한 것은 문장 솜씨 덕도 있지만, 그보다 글이 싣고 있는 뜨거운 생각 때문이었다. 그의 글을 읽으며 탄복하게 되는 건 손끝에서 나오는 글솜씨가 아니라, 마음에서 자유롭게 터져 나오는 생각 때문이다. 영모정 곁의 백호 임제 기념관 앞에 세워진 비석 ‘물곡비(勿哭碑)’에 새겨놓은 그의 한시에서는 호방한 기질이 그대로 묻어난다. “사방팔방 오랑캐들이 다 스스로 황제라 일컫고 부르는데/유독 조선은 중국이 들어와서 주인 노릇을 하니/내가 살아서 무엇을 하며, 내가 죽어서 무엇을 하겠는가/(그러니 내가 죽어도) 곡하지 말라.” 무능한 조선의 지배계급에 대한 통렬한 야유는 지금 읽어봐도 새삼스럽다.



# 나주의 처음… 우물과 로맨스

지금이야 한낱 광주의 위성도시 취급을 받지만, 나주는 한때 전남 일대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읍성 크기만 비교해도 나주는 광주의 두 배가 넘었다.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위치는 더 차이가 컸다.

역사에 걸맞게 나주에는 걸출한 인물이 여럿 있다. 그 맨 앞에 고려 태조 왕건이 선다. 나주는 왕건의 처가다. 나주의 우물가에서 물을 청하는 왕건에게 바가지에 물을 담아 버드나무 잎을 띄워 건넨 이가 왕건의 두 번째 부인 장화왕후 오 씨다. 두 번째 부인이었지만 장화왕후가 낳은 아들이 고려 2대 왕에 오른 혜종이다.

물 한 잔이 맺어준 낭만적인 로맨스라지만, 둘의 결혼은 사실 정략결혼이란 혐의가 짙다. 장화왕후가 나주의 토호세력으로 일대의 권력을 손에 쥐었던 이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고려 건국 이전의 왕건은 나주를 기반으로 삼았다. 토호들의 배신을 막기 위해서 왕건은 그들의 딸을 줄줄이 후비로 맞았다. 왕건이 일대에서 얻은 후비만 자그마치 28명이었고, 이들 사이에서 아들 25명과 딸 9명을 낳았다.

왕을 배출한 도시라는 인연으로 고려 초기 나주는 일찌감치 ‘목(牧)’이 됐다. 목이란 지금으로 치면 광역시쯤 되는 행정구역이다. 고려 성종 2년에 나주목이 된 이래 조선 고종 때 전라남도 관찰부가 광주로 옮겨지기까지 900년 동안 나주는 전남에서 가장 큰 고을이었다. 전라도라는 이름이 전주와 나주를 합해 만들어진 것만 봐도 나주의 위세가 얼마나 당당했었는지를 알 수 있다.

나주에는 왕건과 장화왕후의 로맨스가 만들어진 우물, 완사천이 남아있다. 우물가에는 말을 탄 왕건과 물을 떠서 바치는 장화왕후의 동상이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마한시대와 반남고분군까지도 태엽을 감을 수 있지만, 나주의 역사가 실재의 느낌을 주는 건, 여기 완사천부터다. 여기가 나주의 시작이다. 봄날의 정취를 얘기하느라 시작의 얘기를 가장 나중으로 미뤘지만 말이다.

나주 = 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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