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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His Story 게재 일자 : 2018년 04월 18일(水)
“가난보다 무서운 건 허무… 집까지 팔아 문학박물관 지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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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만 잔아문학박물관장이 벽면에 전시된 한국문학 관련 자료를 가리키며 박물관 설립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인생의 전환점마다 문학에의 열정을 굽히지 않았다. 비록 49세라는 늦은 나이에 등단했으나 자신의 굴곡진 삶을 소재로 사실적이고 공감 가는 작품을 펴냈다. 김선규 기자 ufokim@

소설가 겸 잔아문학박물관장 김용만

지독한 가난에 대학 꿈 좌절
9년 경찰하다 전업작가 선택
17년만인 49세 늦깎이 등단
60대 나이엔 국문학과 졸업

첫 소설집 ‘늰 내 각시더’등
굴곡진 삶 고스란히 녹여내
중학교 시절부터 일기 습관
그 덕에 ‘토속적 문체’ 인기

백수작가때 아내가 생계 책임
음식점 ‘춘천옥’으로 큰 성공
아내 “빈털터리 경찰로 첫만남
일기장서 미래 본 뒤 결혼결심”

“살만하니 문학 나누고 싶더라
돈 바랐다면 결코 못했을 결정
건강 허락하는 한 작품 쓸 것
차기작 제목 ‘아내찾아 3만리’”


며칠간의 매서운 꽃샘추위 후 짙은 새벽 안개를 걷어내고 파란 얼굴을 내민 하늘과 투명한 햇살이 반가웠던 지난 9일.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의 화려한 자태보다 그윽하게 피어나는 신록을 따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의 잔아문학박물관을 찾았다. 이 박물관은 소설가인 김용만(78) 관장이 자신의 사비를 들여 지난 26년간 부인 여순희 씨와 가꿔온 문학의 전당이자 삶의 터전.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에서 차로 불과 15분 거리의 물 맑고 산 깊은 이곳에 충청도 사람인 김 관장이 정착하게 된 사연을 들어봤다.

김 관장은 1940년 충남 부여에서 3녀 1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6·25전쟁을 전후한 세대가 그러하듯 그도 유년시절 지독한 가난을 겪었다. 초등학교 때 부친이 남사당패를 좇아 유랑생활을 하는 통에 그와 가족들은 끝날 것 같지 않은 배고픔과 싸워야 했다. 급기야 부산으로 가출했던 김 관장은 서울 용산고를 졸업한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입대를 선택했다. 제대 후에는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생계를 위한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부산에서 화장품을 판매하는 등 일의 귀천을 가리지 않았지만 형편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괴감에 빠진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결심을 하고 태종대 자살 바위에 올랐을 정도다.

그러다가 우연히 경찰 모집 공고를 접했다. 이게 살아갈 길임을 직감한 김 관장은 그 길로 상경해 경찰 시험을 보고 합격 후 서울과 강릉 등지를 오가며 9년간 경찰에 몸담았다. 강릉에서는 해안을 경비하고 유치장을 관리하는 업무를 수행했고, 서울에서는 서울대 등 학원가를 관리하는 정보 형사를 맡았다.

성실한 생활로 조금씩 가난에서 벗어나게 됐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허전했다. 어려서부터 꿈꿔오던 문학에의 열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형편이 안정될수록 글에 대한 갈증은 더 커졌다. 김 관장은 끝내 유신헌법이 발표되던 1972년 사표를 내고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말이 좋아 전업작가지 백수나 다름없었다. 대학 졸업장은커녕 정식으로 문학 공부도 해보지 않은 김 관장에게 문단 데뷔는 호사스러운 남의 이야기였다. 그가 글을 끄적일 때 가족의 생계는 오롯이 부인 여 씨의 몫이 됐다. 여 씨는 타고난 손재주로 길거리 포장마차를 거쳐 옛 구로공단 인근에 ‘춘천옥’이라는 점포를 열었다. 음식점은 맛집으로 소문이 나 한때 종업원이 40명에 이를 정도로 크게 번창했다. 여기저기서 프랜차이즈 점포를 내게 해달라는 요청이 빗발쳤다.

▲  박물관을 찾은 박완서(왼쪽 두 번째) 작가와 김윤식(〃 세 번째) 평론가.

하지만 이런 달콤한 성공도 문학에 대한 김 관장의 오랜 꿈을 막을 수는 없었다. 틈틈이 습작하던 김 관장은 1989년 드디어 등단의 꿈을 이뤘다. 문예지 ‘현대문학’을 통해 데뷔했다. 그때가 그의 나이 49세였다. 그리고 1992년 첫 소설집 ‘늰 내 각시더’를 출간해 평단의 이목을 끌었다. 동시에 춘천옥은 더욱 규모가 커졌다.

꿈도 사업도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무렵, 김 관장은 또 한 번 큰 결심을 했다. 춘천옥의 운영을 지인에게 넘기고 그때까지 살던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집까지 처분해 지금의 잔아문학박물관 터로 이사했다. “자연과 벗하며 문학을 논하고 박물관을 지어 여러 사람과 공유하고 싶었다. 돈을 바랐다면 결코 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1996년 ‘새뜸문학관’으로 시작해 잔아문학박물관으로 키워나갔다. 그사이 김 관장은 또 하나의 소원이었던 대학에 진학했다. 60대의 나이에 광주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내친김에 서울 경희대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수료했다. 부인이 역시 큰 힘이 됐다. “광주대에 다닐 때는 아내가 양평에서 광주까지 일주일에 2∼3차례씩 손수 운전해서 나를 데려다줬다. 음식점도 대학 공부도 아내가 아니었다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도전과 열정으로 일관된 김 관장의 굴곡진 삶은 그 자체로 소설의 주요 모티프가 됐다. 가출 소년이 결혼 후 요식업에 뛰어들어 춘천옥으로 성공하는 과정은 소설 ‘능수 엄마’(2009)로 탄생됐다. ‘능수 엄마’는 2011년 KBS 라디오 일일연속극으로 극화됐다.

첫 소설집인 ‘늰 내 각시더’는 강릉경찰서에서 근무할 때의 경험담이 녹아 있는 작품이다. 당시 김 관장은 희대의 살인범을 서울 서대문형무소로 이송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용납될 수 없는 업무적 일탈을 저질렀다. 상경하는 데 이틀이 걸리던 시절, 밥을 먹느라 잠시 쉬어가던 강원 평창에서 살인범의 손목에 채워진 수갑을 풀어준 것이다. “유치장 근무 때 살인범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의 딱한 사정을 이해하게 됐다.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 먹고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해서 편안하게 하고 오라고 선심을 베풀었다. 지금 같으면 업무 태만으로 징계감이다. 그런데 살인범이 도망가지 않고 제 발로 돌아와 내 앞에 손목을 내밀더라. 아마 진심이 통했는지도 모르겠다.”

장편 ‘칼날과 햇살’(2003)은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1968)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당시 김 관장은 강원 고성군 거진항 지역의 해안 경비와 선박 입·출항을 관리하는 임검소의 반장이었는데 공비 침투사건이 터지면서 수사의 중심에 선 적이 있다. 이를 소재로 처음 쓴 게 단편 ‘은장도’이고, ‘칼날과 햇살’은 이를 다시 장편으로 개작한 것이다.

‘세계문학관기행’(2010)은 김 관장이 1980년대부터 방문했던 전 세계 문학관과 작가의 공간을 담은 에세이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 윌리엄 셰익스피어,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도스토옙스키, 프란츠 카프카, 어니스트 헤밍웨이, 찰스 디킨스,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등 인류의 정신사에 큰 영향을 끼친 문호들의 문학관과 생가 등을 답사하고 작가론과 작품론을 정리했다. 저서나 자료뿐만 아니라 문호들이 살아온 흔적이나 주변의 환경, 공간까지 담아내 문단의 호평을 받았다.

▲  테라코타 작업 중인 이문열(오른쪽) 작가와 김용만 관장 부부.

이 중 김 관장이 꼽은 가장 기억에 남는 문학 공간은 스페인 알칼라 데 에나레스에 있는 세르반테스 생가 박물관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이다. “세르반테스는 나처럼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는 작가였으나 영국의 셰익스피어에 비견되는 명작 ‘돈키호테’를 남겼다. 자유와 정의, 박애의 의지에 불타 자기 몸이 부서지는 것도 모르고 돌진한 돈키호테는 어쩌면 오늘날 꼭 필요한 개혁형 인물인지도 모른다. 도스토옙스키는 문학소년 때부터 좋아했고 나이 든 지금은 더 좋아한다. 그는 진실의 본질에 파고든 작가였다.”

수많은 인생의 고비와 전환점에서 김 관장은 왜 매번 문학 속으로 돌아갔을까. 춘천옥을 그대로 운영했다면 지금쯤 훨씬 더 부유한 삶을 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에 대해 “한(恨)과 같은 것이었다”고 했다.

“나는 가난 때문에 행복보다 고통에 익숙해졌다. 가난보다 더 무서운 건 차라리 허무였다. 따라서 내 고통은 현실적 고통이라기보다 존재론적 고통이었다. 종교가 없는 나는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 나름의 종교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게 글쓰기고 문학이었던 것 같다.”

늦깎이로 문단에 데뷔했는데도 김 관장이 ‘토속적 문체’로 극찬을 받았던 데에는 평소 일기를 쓰는 습관 덕분이었다. 그는 중학교 이후 지금까지도 일기를 쓰고 있다. 한동안 이야기를 듣다가 도중에 끼어든 부인은 “29세 때 강원 양구경찰서로 부임해온 남편을 처음 만났다. 그는 모아둔 돈 한 푼 없는 빈털터리였다. 하지만 그가 가슴 안에 소중히 들고 있던 라면 박스 안 일기장에서 그의 미래를 봤다”고 회고했다.

잔아(殘兒)는 김 관장의 필명이다. ‘마지막 아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그는 지난해 필명과 동명의 소설을 출간했다. 역시 그의 삶에 근거한 작품이다. 부제는 ‘악마의 원형을 찾아서’. 주인공이 삶의 의미를 잃고 자살하려는 순간 만난 10대 소녀 잔아를 통해 생의 의지를 되찾는다는 이야기다. 현실과 상상이 교차하는 가운데 허무주의를 극복하려는 자세가 엿보인다.

최근 김 관장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잔아문학박물관의 이전과 새로운 작품이다. 그는 이미 박물관 아래 도로변 부지에 신관을 지어놓고 재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인근의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과 함께 양평의 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시간이 된다면 또 하나의 작품을 쓰는 게 소망이다. 그는 경험에 근거한 기존의 작법에서 벗어나 인간의 의식 세계를 다룬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작품을 쓰고 싶다. 제목은 이미 정했다. ‘아내 찾아 3만리’. 아마도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처럼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작품이 될 것 같다. 이제 봄기운이 완연하다. 나들이하기에 좋은 때다. 문학관을 잘 정비해놓겠다. 문학을 나누고 싶은 분이라면 누구든지 방문을 환영한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mail 김인구 기자 / 문화부 / 차장 김인구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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