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學순례 60년… 긴 여정 담은 종합보고서 같은 책”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는 “틸리히는 비판적 지성뿐 아니라 영성과 생명을 중시한 신학자로, 그의 사상은 21세기의 메마른 삶과 생태계 위기에도 여전히 의미가 크다”고 말한다. 여해와함께 제공

- ‘틸리히 신학 되새김’ 낸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獨 신학자 틸리히 3년간 정리
동아시아 정서 토대로 재조명

한국교회는 비판적 지성 결여
열광적 광신상태 빠져선 안돼

“나의 60년 신학(神學) 여정의 종합보고서 같은 결실로서 이번 책을 냈습니다.” 팔순을 앞둔 신학자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550쪽이 넘는 ‘틸리히 신학 되새김’을 펴냈다. 저술 활동에 일찍 뒷짐을 지는 우리 학계의 경향에서 드문 일이다. 김 명예교수는 18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내년이면 내 나이가 여든인데, 신학교 시절부터 치면 60년 동안 신학을 순례한 셈”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최종적으로 정리하는 작품을 하나 남기고 싶었고 일종의 책임감도 느꼈다”면서 “나의 정신적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현재 한국 교회와 신자들에게 절실한 영감을 줄 수 있는 틸리히를 3년간 정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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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틸리히(1886∼1965)는 독일 출신으로 라이프치히대 교수로 재직 중에 히틀러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 등에서 강의한 20세기 대표적 신학자다. ‘철학자의 신학자, 신학자의 철학자’로 불릴 만큼 신학은 물론 인문학 전반에 영향을 미쳤고, 국내에도 그의 저서와 연구서 수십 권이 나와 있다. 김 명예교수는 “틸리히가 이성과 합리적 비판정신에 무게를 두는 철학적 신학자 또는 변증적 신학자로 알려져 있고 맞는 평가지만, 이번에 책을 쓰면서 그것은 초기의 사상이고 후반부에는 성령의 현존과 생명으로서의 성령 등 성령 중심의 신학자임을 깨닫게 된 것이 개인적으로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이번 책은 틸리히 신학론의 결정판인 ‘조직신학’(전 3권)에서 50개 핵심 소주제를 간추려 그에 대한 ‘되새김’을 한다. 김 명예교수는 “틸리히 자신이 기독교의 진리를 매 시대, 새 시대의 인간의 질문과 관련시켜 새롭게 재해석하는 임무를 신학의 책임으로 생각했다”며 “한국인으로 동아시아의 정신적 문화 토양에 기대어 대화하고 서로를 재조명하는 방식으로 되새김했다”고 말했다. 책에는 동양철학과 불교, 인문학이 기독교 진리와 충돌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융합해 걸림 없이 펼쳐진다. 단순한 주석서가 아니고, 쉽지 않은 틸리히 사상을 피부에 와닿듯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책은 틸리히의 가장 유명한 개념인 ‘궁극적 관심’으로 1장을 시작해, 마지막 50장은 ‘영원한 생명’을 다룬다. 김 명예교수는 50개의 소주제 중 특히 한국 교회에 필요한 주제로 먼저 ‘이성과 계시’를 꼽았다.

그는 “한국 교회는 전통적으로 계시나 성령, 은혜를 위해 이성이나 지성을 포기해야 하는 걸로 통하고, 그러다 보니 비판적 지성이 결여돼 열광적 광신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며 “틸리히는 계시체험이 이성과 ‘주·객’의 이분법으로 나뉜 게 아니라 초극되는 경험이며, 그 속에서 지성, 감성, 의지가 또렷하고 숭고하게 고양되는 것으로 보았다”고 말한다. 이와 연관해 김 명예교수는 ‘신비주의’를 다룬 소주제도 일독을 권했다. 그는 “신비주의는 한국 교회가 크게 오해하는 부분이다. 그 본질은 겉으로 나타난 초자연적 기적들에 있기보다는 인간의 내적 자아가 ‘궁극적 실재’인 하나님의 현존에 참여하고 진리에 의해 붙잡히는 경험상태로, 틸리히는 신비(the mistical)는 종교의 핵심이라고 보았다”며 “신학이나 목회가 신비주의를 경원시하면 신앙을 도덕적으로 왜곡하거나 사회운동처럼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틸리히가 유대-기독교 전통의 인격적, 일신론적 신관(神觀)을 부정하고 스피노자나 힌두-불교 전통의 비인격적, 무신론적 신관에 경도돼 있다는 일부 신학자들의 비판에 대해 김 명예교수는 “보수적인 신학자들이 틸리히에 대해 흔히 곡해하는 내용”이라며 “틸리히는 철저하게 기독교는 기독교다워야 한다고 했으며, 그러면서도 이웃 종교의 진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말한다.

김 명예교수는 “틸리히가 국내에서 진보적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읽히는 건 불행한 일”이라며 “교회 강단의 설교자들이나 복음이 간직한 자유와 희열, 영감을 좀 더 맛보고 싶어하는 신자들이 틸리히를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이번 책을 출판한 (재)여해와함께는 오는 5월 17일부터 ‘2018 김경재와 함께하는 상징신학 거장 파울 틸리히 읽기’라는 주제로 주 1회 총 4회의 공개강연을 기획 중이다. 문의 02-395-0781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