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와 나>한국 여자골프 돕다 美 LPGA까지 개최하는 ‘통 큰 스폰서’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권오섭 엘엔피 코스메틱㈜ 회장이 지난 16일 서울 강서구 염창동 사옥 내 체육관에서 드라이버를 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동훈 기자 dhk@

권오섭 엘엔피 코스메틱㈜ 회장

‘女골프 위기’ 기사 읽고 후원 결심
유소연 등 7명 영입 골프단 결성
‘메디 힐 챔피언십’ 스폰서 맡기로
상금 등 3년간 연 500만 달러 투입

입문때 잘못된 스윙 엘보 부상
구력 25년에 베스트 겨우 82타
겨울에 언 땅 쳐 허리 디스크 다쳐
라운드때 스윙 않고 퍼팅만 하기도

마스크팩 1위 기업을 일군 권오섭(59) 엘엔피 코스메틱㈜ 회장은 ‘판’을 키우는 데는 선수다. 처음엔 조그맣게 시작했지만 그의 손을 거치면서 눈덩이만큼이나 불어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물론 기업인으로서의 판단력 덕분이다.

지난 16일 서울 강서구 염창동 사옥 집무실에서 만난 권 회장은 미국 출장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권 회장은 오는 26일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LPGA 메디 힐 챔피언십을 처음 개최한다. 2020년까지 3년간 타이틀 스폰서 계약을 했다. 총상금 150만 달러를 포함해 대회 운영비와 프로암 경비 등 매년 500만 달러를 쏟아붓는다.

처음엔 여자골프선수를 돕기 위한 후원으로 시작해 이젠 미국에서 골프대회까지 개최할 만큼 커졌다. 권 회장은 우연히 ‘한국 여자골프 위기’라는 신문 기사를 보면서 여자골프 선수 후원을 결심했다. 시작은 2년 전 팬텀클래식 협찬이었다. LPGA에서 활동 중인 유소연 영입을 시작으로 최혜용, 김나리, 신인 이다은 등 국내 선수 5명과 덥석 계약했다. 그것도 모자라 중국 시장을 위해 중국 선수 2명까지 영입하며 7명으로 골프단을 꾸렸다. 국내에서 10억 원짜리 여자골프대회 창설도 검토하다가 여의치 않아 아예 미국에서 대회를 열기로 한 것. 앞으로 미국과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활용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메디 힐 마스크팩은 이미 지난 한 해에만 10억 장이 판매됐다. 시장 점유율 30%로 부동의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2위 업체와는 ‘더블 스코어’. 해외에서 가장 큰 중국 시장은 지난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여파로 수출이 17% 줄고도 점유율 14%로 2위다. 앞으로도 색조 화장품 등 새로운 아이템도 개발해 나갈 계획이다. 유소연이 회사로부터 받은 마스크팩을 우승 선물로 친한 선수들에게 나눠줬고, 이젠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 LPGA 선수들이 고정 고객이 됐다.

권 회장은 연간 회원권을 사 가족과 야구장을 찾는 프로야구 LG의 열혈팬이다. 어렸을 적 꿈이 프로야구단 구단주였지만 이제 골프구단주가 됐다. 권 회장은 골프구단, 대회 창설과 관련해 “돈을 벌면 사회에 환원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게 기업의 의무이기에 고민 없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메디 힐 장학재단도 운영 중이다.

권 회장은 ‘촉’이 남다른 편. 구단 운영 첫해이던 지난해 유소연이 LPGA투어 2승을 거뒀고 이다은이 팬텀클래식, 중국의 장웨이와 시유팽이 중국대회를 제패하는 등 ‘우승복’도 넘쳤다. 권 회장은 지난해 유소연이 ANA인스피레이션 우승 직전 ‘선수 인센티브 보험’을 재보험사에 서둘러 가입해 며칠 뒤 우승 상금(약 4억3000만 원)에 해당하는 보험료를 지급받기도 했다. 지난해 골프단 소속 선수에게 지급한 인센티브만 25억 원에 달했지만, 절반을 보험료로 충당했던 것.

권 회장의 베스트 스코어는 82타. “25년 구력에도 변변히 내세울 기록조차 없다”는 권 회장은 외환위기 직전 한창 골프에 물이 올랐을 무렵 작성했다고. 미국 유학을 마친 뒤 화장품업계에 1992년 입문했던 권 회장은 1994년 30대 중반에 골프를 접했고 그해 4월 첫 라운드를 했다. 화장품 회사에 근무하면서 골프장을 자주 들락거렸을 시기였다. 1996년 화장품 사업을 시작했지만 2년 만에 찾아온 외환위기로 문을 닫았다.

‘코스피클럽’이란 브랜드 화장품 매장을 프랜차이즈 형태로 운영하다가 당시에는 낯선 ‘포스(POS)시스템’ ‘바코드 결제’ 기능까지 도입했다. 너무 앞서간 투자였다.

사업이 망한 후 골프를 끊었다. 재기에 성공한 권 회장은 세 살 터울의 형을 골프를 통해 이겨보려고 무리하게 연습하면서 허리를 다쳤다. “어떻게 90대를 벗어나질 못하냐”는 형의 질타에 자존심도 상하고 이기려는 욕심에 3년 전 골프를 다 뜯어고치려다가 화를 당했던 것. 골프 시작 때부터 잘못된 스윙 탓에 늘 엘보 부상을 달고 살았던 그에게 하루 2∼3시간씩의 연습은 무리였다.

겨울에 언 땅을 치는 바람에 허리 디스크마저 상했다. 지금도 후유증으로 제대로 된 스윙을 하기조차 힘들다. 불가피하게 라운드하더라도 양해를 구해 스윙은 하지 않고, 그린에서 퍼팅만 한 적도 많았다.

권 회장이 사옥 지하에 마련한 임직원을 위한 1300㎡(약 400평) 규모의 체육관은 화제가 됐을 정도. 25년 된 호텔건물을 매입해 7개월 정도 리모델링한 뒤 지난해 4월 완공했다. 특급호텔 이상의 피트니스센터다. 운동기구만 34종류, 스크린 골프 4타석과 농구코트, 물리치료실, 사우나, 수면실까지 갖췄다. 골프 코치, 피트니스 코치, 요가 트레이너를 정규직으로 고용해 직원들에게 여가를 활용하도록 했다. 이 결과 회사에서 강요하지 않아도 직원 간 소통이 자연스러워졌다.

권 회장은 한 발 더 나아가 비즈니스용이 아닌 직원 여가용으로 수억 원대의 무기명 골프회원권을 여러 장 샀다. 직원들이 주중에도 눈치 보지 않고 직원끼리 3명 이상 팀을 구성, 저렴한 가격으로 골프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 월요 간부회의 때 ‘직원 골프 활성화’ 방안을 수시로 거론하며 골프를 독려하고 있다.

권 회장은 “회사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선 백 번의 말보단 마음껏 여가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며 “우리 같은 중견기업들도 이런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현재 이직률은 동종업계 최저다. 권 회장은 “다행히 1년 이상 골프 휴식기를 가진 덕분에 엘보와 허리 통증도 점차 사라지고 있어 올 가을쯤이면 생애 첫 ‘싱글 패’도 가능할 것 같다”면서 활짝 웃었다.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