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ifty+ >‘비혼’ 지지하는 부모들… “결혼 후 내 의지대로 산 적 없어”

“너 만큼은 하고 싶은대로 살아”

“결혼 꼭 안 해도 되니까, 너 하고 싶은 일 하며 살아.”

서울 강남구에서 실내 디자이너로 일하는 김모(28) 씨는 최근 어머니에게 조심스레 ‘비혼(非婚)’ 선언을 했다가 깜짝 놀랐다. 김 씨가 대학을 입학하고 나서부터 ‘서른셋 전에는 결혼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던 어머니였다. 그런데 갑자기 김 씨의 비혼주의에 동의한다는 뜻을 밝힌 것. 김 씨는 “혹시 나를 이제 포기하는 마음으로 말씀하시는 거냐”고 물었고, 어머니는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다. “생각해보니 난 결혼 이후 단 한 번도 내 의지대로 살아본 적이 없어. 너만큼은 하고 싶은 일 맘껏 즐기며 살았으면 좋겠다.”

결혼을 ‘꼭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확산하며 자녀의 비혼을 지지하는 부모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서울시의 ‘서울 가구·가족의 모습’ 통계 자료에 따르면 ‘결혼은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2006년 28.9%에서 2014년 41.0%로 늘었다. 반면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응답은 13.5%로 2006년(23.5%)보다 10%포인트 감소했다. 서울 종로구에 거주하는 박모(여·56) 씨는 20일 “결혼은 오롯이 자녀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고 했다. 박 씨는 “남들은 공들여 키운 딸 시집 잘 보내야 하지 않겠느냐, 나중에 딸이 혼자 살 걱정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오히려 딸이 가정을 이뤘을 때 잃는 부분도 많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나라 문화상 결혼을 하면 ‘가족’을 얻는 대신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곤 한다. 부모 입장에서 남부럽지 않게 키운 딸이 본연의 모습을 잃고 가족 내 구성원으로서만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마음 아플 것 같다”고 했다.

과거 ‘결혼은 필수’라는 사회 통념 속에서 살아왔던 부모 세대가 ‘황혼 이혼’이 늘어나면서 결혼에 대한 인식이 깨졌고, 비혼·1인 가구 등 새로운 문화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통계청의 2017 혼인·이혼통계에 따르면 전체 이혼의 31.2%는 혼인 지속기간이 20년 이상 된 부부였다. 평균 이혼 연령 또한 남성 47.6세, 여성 44세로 전년보다 0.4세 상승했다. 인구 1000명 당 혼인 건수를 뜻하는 조혼인율은 5.2건으로, 2011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다가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를 찍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혼자 사는 것이 어색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1인 가구를 위한 문화가 늘었고 비혼자들 또한 여러 동호회 등을 통해 즐겁게 살 수 있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며 “결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환경 속에서 자란 부모세대도 이러한 문화에 계속 노출되며 생각을 달리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현아 기자 kimhah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