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느릅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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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규 논설위원

우리나라 전국의 산천을 지키고 있는 느릅나무는 팽나무, 시무나무, 느티나무와 더불어 느릅나뭇과의 낙엽수다. 생명력과 생태·지리·역사·문화적 측면에서 가장 한국적인 민족식물로 꼽힌다. 일본과 만주, 사할린에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느릅나무는 각별한 데가 있다. 민족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뿐 아니라, 역사의 굽이굽이 서린 얘기를 담고 있기도 하다. 고구려 제25대 평원왕의 사위이자 평강 공주의 남편인 온달 장군도 유백피(楡白皮), 곧 느릅나무 뿌리를 캐 먹고 살았다. 그러니 느릅나무는 소나무와 더불어 구황식물이었다.

소나무에선 솔내 나고, 제피나무에선 매운 내 나며, 느릅나무에선 구린내 난다는 말이 있다. 소나무와 제피나무에서는 상큼하고 맵싸한 향이 나지만, 느릅나무에선 맑지 않은 냄새가 난다. 그래도 느릅나무는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음지나 추위에도 강하고 수분을 좋아하며 기름진 땅에서 잘 자란다. 아름드리로 자라는데, 매미 날개처럼 생긴 얇은 꼬투리 가운데 들어 있는 씨앗은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 후손을 퍼뜨린다.

느릅나무는 빨리 자라는 편인데도 목질이 단단하다. 그래서 배를 만들거나 건물을 짓는 건축재로 쓰이기도 하고 각종 기구를 만드는 세공용 목재로도 사용된다. 느릅나무 목재가 얼마나 인기 좋았는지는 옛 기록이 말해준다. 신라 시대에 느릅나무로 집짓기가 유행이었을 때, 4두품 이하는 느릅나무 목재로 집을 짓지 못하도록 규제했을 정도다. 또, 조선 숙종 때에는 북방 오랑캐를 막기 위해, 정조 때에는 수해를 예방하기 위해 느릅나무를 심도록 권장했다 한다. 때로는 먹거리로, 또 때로는 보금자리가 돼 우리와 함께해준 나무가 느릅나무다.

지금 그 느릅나무가 엉뚱한 곳에서 오욕을 겪고 있다. 나라를 들끓게 하고 있는 누리꾼 드루킹의 ‘느릅나무출판사’라는 이름 때문이다. 책 만드는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하지 않았다니 양두구육보다 더 고약하다. 경기 파주의 출판단지에 사무실을 빌려 놓고 여럿이 모여 지난 대선을 전후해 책은 안 만들고 인터넷 댓글로 여론을 조작했다 한다. 그 죄는 사법 당국이 엄벌할 것이다. 하지만 건축·가구재로, 구황·약용식물로 우리 곁을 지켜온 느릅나무에 대한 모독죄는 남는다. 또, 출판 보국 일념으로 양서 만들기에 전념하는 선량한 출판업자들에 대한 모욕은 어떻게 씻어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