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점화’가 태어나기까지… 거장의 예술魂을 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연작, 10-Ⅷ-70 #185, Oil on Cotton, 1970 환기미술관 제공

환기미술관 특별展서 만나는 ‘1960년대의 김환기’

뉴욕서 작업하던 때 작품 소개
구상성 강한 그림들 유독 많아

신문지에 작업한 20점도 선봬
유화로‘수묵화 번짐효과’발견

뉴욕은 섬이 돼서 그런지 바람이 세요.

/역시 붓을 써야겠어. 칼로 완성했던 것 다시 붓으로 고쳐요.

/동양사람의 체질은 역시 모필(毛筆)이 맞고 거기서 미묘감이 오는 것 같아.

/어제는 우연히 레이먼드(Raymond)라는 화가를 만났어.

/내 스케치북을 보이며 “너무 동양적인가?” 물었더니 그렇지 않대. 대단히 오리지널하대.

/쪼그만 작품이 우주감을 준대. 묘한 색깔이래.

(김환기, 1963년 12월 11일)

한국 근현대 미술 최고의 작가로 일컬어지는 수화 김환기(1913~1974)가 1960년대 뉴욕에서 작업하던 시절, 작가 노트에 남긴 내용이다. 1960년대는 김환기가 이국땅 뉴욕에서 치열하게 예술혼을 불태울 때였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환기미술관은 김환기 화백의 전면점화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김환기 특별 기획전’을 별관 및 달관-수향산방에서 열고 있다.

별관에서는 1970년대 전면점화 탄생에 앞서 1960년대 뉴욕에서 시도된 다양한 조형적 실험의 결과물들을 보여주는 ‘Whanki’s Works on Paper’ 전을 7월 8일까지, 달관-수향산방에서는 작가의 초기에서 말년에 걸쳐 다양한 매체로 구현한 유화와 드로잉, 과슈, 수채화 등의 작품을 전시하는 동시에 생동감 넘치는 그의 어문(語文)을 공개해 그의 예술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1960년대 김환기는 뉴욕에서 부인 김향안(1916∼2004)여사와 함께 밥 먹고 잠자는 시간도 아낄 정도로 오로지 작업에 몰두했다. “낮에는 태양이 아까워 그림을 안 그릴 수 없고, 밤에는 전깃불이 아까워 붓을 들지 않을 수 없다”고 그는 주변에 말했다.

그는 어떤 결과물에도 만족할 수 없었다. 완성도 높은 작품을 찾기 위한 노력을 멈출 수 없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환기미술관 별관에 전시된 1960년대 뉴욕 시절 작품들. 전면점화 탄생에 앞서 시도된 다양한 조형적 실험의 결과물들이다.

전시 작품 중에는 유난히 신문지에 그린 그림이 많다. 신문지는 인쇄 과정에서 기름을 한번 먹은 종이인 만큼 발산하는 느낌이 좋기 때문이었다. 신문지 작업 작품만 20점이 걸려 있다. 그는 또 종이를 오려 붙이고 모시천을 그 위에 또 붙이는 등 콜라주를 통해 입체적인 작품들을 계속해서 실험하고, 한지 유화 작업을 통해 먹이 한지에 스며 번지는 효과를 찾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전시회를 찾으면 당시 그의 그 같은 시도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김환기의 추상화인 전면점화에만 익숙한 미술애호가들은 다분히 구상성이 강한 이번 작품들을 보고 “어 김환기에게 이런 작품들도 있었네”라며 감탄사를 유발한다.

당시 김환기는 서양화가지만 한국의 미감을 그림 속에 반영하는 동시에 이를 완전한 추상으로 만들어 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유화로도 수묵화의 먹처럼 번짐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광목천을 끊어 와 아교칠을 했고, 물감으로는 유화 물감을 테라핀 유에 묽게 섞어 썼다. 그리고 그 물감을 캔버스에 찍어 한지 위의 먹과 같은 번짐 효과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번짐 효과를 활용해 캔버스 위에 점을 하나씩 찍어나갔다. 그의 이름을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로 자리매김해주는 전면점화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의 전면점화는 우리 화단의 레전드다. 한국 근현대미술품 경매 낙찰가에서 1위부터 5위는 모두 그의 전면점화다.

김 화백의 작품은 지난해 4월 케이옥션에서 ‘고요’가 65억5000만 원에 낙찰되며 한국 미술경매 역사를 새로 쓰기까지 모두 4차례나 스스로의 기록을 경신해 왔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뉴욕에서 작업에만 매진할 때 오늘날과 같은 날이 있으리라고 예견했을까.

환기미술관의 박정은 학예사는 “선생님은 다채로운 점을 한 점, 한 점 찍어나가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그리워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다 담아냈다”며 “한 점, 한 점마다 달항아리, 한국의 산천, 고국의 지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겼다”고 설명했다.

그의 전면점화 연작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그 같은 당시의 김환기 심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그림이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