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화학무기 근절은 문명국 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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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교 국제부장

국제사회가 시리아 화학무기 시설 공습 후폭풍으로 시끄럽다. 러시아는 23일에도 서방국가들이 명확한 증거도 없이 시리아의 주권을 침해했다고 비난했다. 14일 미사일을 퍼부었던 미국과 영국, 프랑스는 용납할 수 없는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응징이라고 맞서고 있다. 내전 8년째인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신냉전 구도, 구질서로의 회귀다. 인류 4대 문명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잉태한 강, 아랍어로 ‘알푸라트’, 유프라테스 강에 흐르는 비극이기도 하다.

인터넷 세계에서도 논란의 불길은 뜨겁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의 중동탐사보도 전문기자 로버트 피스크가 기름을 부었다. 그는 정부군이 지난 7일 화학무기 공격을 가했다는 두마를 지난주 찾아 20여 명을 인터뷰했다. 결론은 ‘아무도 독가스 희생자를 보지 못했다’였다. 화학무기 노출 증세 피해자를 치료했다는 세계보건기구(WHO) 발표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다. 피스크는 “주민들이 당시 보였던 증세는 산소 부족 때문”이라고 규정했다. 정부군의 집중 포격으로 먼지 폭풍이 일자 호흡 곤란을 겪었고,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던 영상이 화학무기 공격으로 오인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였다. 국내 한 인터넷 매체는 기사를 소개하면서 “미국은 시리아의 평화를 원치 않는다”는 인용을 곁들였다. 근저에는 국제정치 음모론이 깔려 있다.

1915년 4월 22일은 인류역사에서 최고 잔학한 전쟁 행위가 처음 시작된 날로 기록된다. 벨기에 서부 이프레 전선에서 독일군은 168t 5730개의 금속통 뚜껑을 열었고, 노란 연기가 프랑스군 참호로 흘러들어 갔다. 영국의 해외파견군 존 프렌치 현장 사령관은 “눈앞에 있던 수백 명의 병사가 쓰러졌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묘사했다. 거센 비판에 독일은 사흘 뒤 “질식가스를 제조 보관하고 있는 나라는 프랑스”라고 맞받아쳤다. 연합군은 화학무기 반격에 나섰고 1차 세계대전 기간 중 9만 명이 화학무기로 사망했다.

두마에서 2018년 4월 7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직접 눈과 귀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짚고 넘어갈 부분들이 있다. 첫째, 미사일 공습이 화학무기 연구생산 및 보관 의심지에 국한된 만큼 이번 공습은 전쟁의 양태를 바꾸기 위한 새로운 전쟁이 아니다. 둘째, 시리아 정부군은 화학무기금지기구(OPCW) 조사단의 현장 접근을 2주간이나 막았다. 21일에야 조사단이 현장에 도착해 화학무기 사용 흔적이 남아 있을지는 의문이다. 셋째, 시리아 정부군은 지난 2013년 이후 알레포, 칸 세이쿤 등지에서 4번의 독가스 공격 전력이 있다.

국내 언론매체들은 지난 7일부터 무려 4000건이 넘는 시리아 화학무기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이제 시리아의 진실이 무엇이고, 왜 미사일 공습이 있었는지에 대해 답할 필요가 있다. 개연성 있는 충분한 의심 사유가 있고 추정 가해자가 현장 접근을 차단한다면, 국제사회의 비인명살상을 전제로 하는 물리적 개입은 정당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시리아와 북한처럼 공포와 억압을 통치 기반으로 하는 독재국가에서 질식하는 인간 존엄을 보호하기 위한 절차적 방어 행위다. 이성 국가가 비 이성 국가에 던지는 경고다.
jk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