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곳 없는 기업들>商法 통과 땐 외국자본이 삼성전자·현대기아車 이사회 장악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黨政, 서민 주거안정 금융지원 논의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서민-실수요자 주거안정을 위한 금융지원 당정협의회에서 김태년(왼쪽)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과 최종구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이야기하고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中) 외국 기업사냥꾼에 날개 달아주는 정부

집중투표제로 사외이사 선임땐
국내기업경영에 막강한 영향력
KT&G도 방어에 2兆넘게 출혈

감사위원 1인이상 분리선출해도
외국계 자본에 자리 내줄수 있어

“세계 각국선 없애는 제도 부활
막대한 기회비용 가중시킬 것”

법무부 추진 방안대로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의 상법 일부 개정안이 시행되면 외국계 자본의 국내 기업 이사회 장악이 현실화할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외국계 자본이 작정만 하면 국내 10대(大·매출 기준) 기업 중 4곳의 이사회에 본인이 원하는 사외이사를 심고, 6곳의 감사위원 자리를 ‘싹쓸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24일 한국경제연구원이 10대 기업을 상대로 집중투표제·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를 가상 적용한 결과, 외국계 자본끼리 손을 잡으면 국내 간판 수출 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등의 이사회에 적어도 사외이사 1명을 선임할 수 있게 된다.

법무부 안은 자산(2조 원) 규모 이상(시행령 위임) 상장회사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고, 이를 청구할 수 있는 소수주주권 지분율을 100분의 1에서 1000분의 5 또는 1000분의 10 수준으로 완화하는 것이다.

이를 적용해 A 기업의 주식 10주를 보유한 대주주가 신규 이사 7명을 뽑는다고 가정하면, 모두 70표를 확보하게 된다. 문제는 해당 대주주는 7명을 모두 뽑기 위해 10표씩을 나눠 줘야 하지만, 2주만 확보해도 외국계 자본은 총 14표를 특정 이사 후보에게 몰아 줄 수 있다. 즉, 외국계 자본이 2주만 확보해도 10주를 보유한 대주주를 누르고 본인이 원하는 이사를 선임하고 이사회에 입성해 경영 현안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이 같은 우려는 2006년 외국계 투기 자본인 아이칸이 세력을 규합해 KT&G 지분 6.59%를 확보하면서 현실화한 바 있다. 당시 집중투표제를 적용하던 KT&G 이사회에 사외이사 1인을 집어넣는 데 성공했고, 부동산 매각, 자사주 소각, 회계장부 제출, 자회사인 한국인삼공사의 기업공개 등을 끈질기게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KT&G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총 2조8000억 원가량의 비용을 써야 했다. 아이칸은 총 1482억 원의 차익을 실현하고 떠났다.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고 있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러시아, 칠레, 멕시코밖에 없다. 일본은 1950년 도입했다가 주주 간 파벌싸움과 경영 효율성 저하의 폐해가 커지자 1974년 의무화 규정을 없앴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 도입 역시 외국계 투기 자본에 ‘날개’를 달아주는 방안이다. 국회에 발의된 법안대로 감사위원 전원을 분리 선출하도록 하고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면 외국계 자본이 세를 규합해 감사위원 자리를 독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경원 분석에 따르면 기업 총수와 임원 등 내부인, 전략적 투자자(주식 대량 보유 개인, 연합기업), 연기금을 포함한 국내 기관투자자가 힘을 합쳐도 삼성전자·현대차·LG전자·기아차·SK이노베이션·현대모비스 등의 감사위원 자리를 외국계 자본에 내주게 된다.

김윤경 한경연 기업연구실장은 “의결권을 3%로 제한하면 롯데쇼핑은 50%에 육박하는 지분의 의결권이, 한화의 경우에는 40%를 웃도는 지분의 의결권이 상실된다”면서 “반면 외국 자본의 경우에는 의결권에 거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법무부는 감사위원 전원 대신 1인 이상을 분리 선출하고, 나머지는 현행대로 주주총회에서 선출토록 하는 ‘절충안’에 동의한다는 의견을 밝혔으나 이 역시 집중투표제와 연계해 시행될 경우 외국 자본에 감사위원 자리를 내주기는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 역시 전 세계적으로 찾아볼 수 없다. 김 실장은 “최근 들어서는 대상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최소 지분만을 확보하고 자기 사람 1~2명만을 이사회에 진출시켜 이를 기반으로 회사의 주요 자산이나 사업을 매각하도록 해 주가를 끌어올리고 차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세계 추세에 역행하는 제도 도입으로, 국내 기업에 대한 해외 자본의 경영권 위협과 막대한 기회비용 발생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관범 기자 frog7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