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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時評 게재 일자 : 2018년 04월 24일(火)
적폐는 권력의 오만 위에 번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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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중 前 연세대 교수·정치학

박근혜 重刑엔 법치 넘는 의미
靑 “잊지 않겠다” 다짐 바람직
그러나 적폐 되풀이 우려 증폭

脫원전, 공영방송, 개헌 발의
人事 검은손까지 거리낌 없어
촛불 독점과 超法 不辭는 위험


지난 6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징역 25년과 추징금 189억 원형이 선고된 후 청와대는 ‘오늘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표명했다. 물론 상급심 선고를 기다려 봐야겠으나 여러 정황에 비춰 상당한 중형(重刑)으로 이 재판은 마무리될 듯하다. 민주사회에서 대통령이라고 범법행위 처벌을 피해 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대통령이 범법자로 낙인 찍히는 사태가 지니는 의미는 유별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비참한 몰락은 그 사회가 후진국에 머물러 있음을 만방에 공표하는 것과 다름없다. 대통령 추대를 위한 정치 의례에 참여했던 국민은 심한 분노와 허탈감을 경험한다. 이런 면에서 선고공판 직후 청와대가 “기억하지 않은 역사는 되풀이된다”며 “오늘을 잊지 않겠다”로 마무리되는 입장을 밝힌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비극의 역사를 이것으로 끝내겠다는 다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최후의 비극이 되기 위해서는 의례적 다짐만으론 어림도 없다.

무엇보다 후에 권력지형이 바뀌고 기준이 새롭게 적용될 경우 권력의 ‘직권남용 혹은 강요’에 의한 적폐로 규정될 수 있는 사례가 현 정부에서도 이미 적잖게 축적됐다는 사실에 대해 뼈를 깎는 성찰이 있어야 한다.

현 정부는 출범 후 ‘적폐청산’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표방하고 35개의 적폐청산위원회를 가동시킨다. 입법 절차를 밟는 대신 단순 훈령과 규정에 의해 설치된 자문위원회 성격의 이 조직들이 정치보복 논쟁을 야기한 적폐청산을 주도함에 따라 위원회의 적법성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다. 이런 분란(紛亂)에도 불구하고 적폐청산 작업이 강행될 수 있었던 것은 애초부터 이 조직의 역할에 대한 큰 그림이 청와대에 의해 주어졌기 때문이라는 의혹을 낳고 있다. KBS와 MBC 등 공영방송의 경영진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8개월 만에 모두 현 정부에 호의적인 인사들로 교체된다. 이는 언론노조와 감사원 및 고용노동부가 구 여권 이사진 교체를 위한 다양한 압력을 수행한 결과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마치 배후로부터 주어진 역할을 효율적으로 분담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얼마 전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한 외국인 학자의 추가 계약이 해지되고, 정부 정책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몇몇 인사의 활동에 제약이 가해지는 일이 잇달아 발생했다. 이 역시 전 정권의 블랙리스트에 해당하는 검은 힘이 작용한 결과라는 의심을 야기한다. 이 밖에도 청와대가 앞장선 원전(原電) 중단 조치 등은 절차적 문제로 인해 후에 현 정부의 적폐로 거론될 소지가 다분하다.

이런 사례들이 축적되는 배경에는 현 정부가 스스로를 이른바 ‘촛불혁명’의 독점적 실천자로 자부하는 데서 비롯된 ‘오만함’이 작용하는 듯하다. 혁명의 실천자는 절대 선을 대변하기에 초법적(超法的) 조치도 마다할 필요가 없게 된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현 정부는 최근에도 오만한 모습이 짙게 묻어나는 조치를 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은 제대로 된 단 한 번의 공청회도 거치지 않고 급히 작성된 것으로, 해를 두고 논의해도 합의점을 찾기 힘든 진보적 어젠다로 가득 찬 것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한두 달 안에 이 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국회와 야당을 압박한다. 오만한 권력의 민낯을 보여준다

결국,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의 사임으로 귀결된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청와대의 담당 부서는 그에 대해 빗발치는 의혹을 2차례나 조사했으나 2번 모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힌 바 있다. 청와대의 작동 기제에, 모두가 말(馬)이라고 하는 것을 소(牛)라고 우겨댈 만큼의 오만함이 스며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권력의 오만함이 짙게 묻어나는 사례가 계속 발생하는 것은 정권의 미래에 대한 심각한 적신호다. 적폐는 오만함을 자양분으로 번식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의 사례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이는 다시 말해 ‘오늘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보여주기식 정치적 수사로 끝나지 않기 위해선 획기적 자기 성찰이 뒤따라야 함을 의미한다.

끝으로, 공당(公黨)의 문건으로 지나친 면도 있지만, 박 전 대통령 1심 선고 재판 날 나온 ‘오늘 이 순간을 가장 간담 서늘하게 봐야 할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다’라는 자유한국당의 입장문은 불행의 예방을 위해 경청할 소지가 있음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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